회사가 원하는 사람은?

회사가 원하는 사람은 회사를 원하지 않을수도,

by 우주사슴

내가 생각하는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은 크게 다섯가지 역량을 갖춘 사람이다.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사람,

촘촘한 일정 관리 능력을 갖춘 사람,

정해진 시간 내에 업무를 해내는사람,

업무를 맡으면 주도적으로 끝까지 해내는 진취적 태도를 가진 사람,

그리고 이해관계자들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사람.


이 다섯 가지 역량을 모두 갖춘 사람이라면 승승장구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느 조직에서든 빠르게 인정받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된며, 승진도 보장된다.


회사가 원하는 '완벽한 직원'의 표본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은 사업을 해도 될 것 같고, 뭐든 해도 될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다.


이 다섯 가지 역량은 회사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회사 밖에서, 더 큰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능력들이다.


역량의 역설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전략가의 능력이다. 사업 계획을 짜고,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목표를 구조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촘촘한 일정 관리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경영자의 능력이다. 데드라인을 지킨다는 것은 약속을 이행하는 신뢰의 기반이다. 주도적으로 일을 끝내는 태도는 창업가의 자질이다. 소통 능력은 리더십의 핵심이다.


이 모든 것이 회사에서 필요한 역량인 것은 맞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들은 회사 밖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이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회사라는 틀 안에서보다 밖에서 더 자유롭게, 더 크게 발휘할 수 있는 능력들이다.


여기에 회사의 딜레마가 있다. 회사는 이런 역량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 하지만 이런 역량을 갖춘 사람일수록 회사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회사는 결국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을 붙잡아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인다.


두 갈래 길

이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회사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역량으로 빠르게 성과를 내고, 인정받고, 승진한다.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팀을 이끌고, 조직 내에서 입지를 다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천장에 부딪힌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조직의 구조적 한계, 정치적 역학, 의사결정의 제약 속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내가 이 정도 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밖에 못 하게 하지?"라는 좌절을 경험한다.


두 번째는 이 역량으로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다. 자기 사업을 시작하거나, 프리랜서로 독립하거나, 창업을 한다. 그들은 회사에서 배운 역량을 자신의 무대에서 마음껏 펼친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보고 라인을 따를 필요도 없다. 실패의 위험은 있지만, 성공의 과실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가장 필요한 사람이 가장 먼저 떠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은 회사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사람은 회사에서만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다. 과거에는 회사가 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플랫폼이었다. 자본도, 네트워크도, 고객도 모두 회사를 통해야만 접근할 수 있었다. 개인은 회사라는 조직 없이는 사실상 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인이 플랫폼이 되는 시대다. 프리랜서 마켓플레이스, 크라우드펀딩, 소셜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개인도 고객을 찾고, 자본을 조달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회사는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왜 유능한 사람이 회사에 머물러야 하는가? 회사는 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역량 너머의 가치

회사가 제공해야 하는 것은 역량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가치다. 단순히 월급을 주고 업무를 배정하는 것만으로는 유능한 사람을 붙잡을 수 없다.


첫째, 학습과 성장의 기회다. 개인이 혼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대규모 프로젝트, 복잡한 조직 운영,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협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환경. 단순히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해야 한다.


둘째, 의미 있는 미션이다. 단순히 실적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이 더 큰 목적에 기여한다는 느낌. 회사의 비전이 개인의 가치관과 연결될 때, 사람들은 단순한 급여 이상의 이유로 머문다.


셋째, 좋은 동료와 문화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해내는 경험, 서로에게서 배우고 자극받는 관계,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을 격려하는 분위기. 이런 것들은 개인이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가치다.


넷째, 실패의 안전망이다. 창업이나 독립은 모든 위험을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회사는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도전적인 시도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안전하게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은 중요한 가치다.


만약 회사가 이런 것들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유능한 사람은 떠난다.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팍팍하지 않은 이유

"이런 사람만 있으면 세상은 매우 팍팍할 것이다."

라는 생각의 이면에는 이런 통찰이 있다.


역량만으로 가득 찬 조직은 효율적일지 몰라도 삭막하다. 모두가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관리하고, 데드라인을 지키고, 주도적으로 일하고, 소통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분명 성과는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여유는 없다. 예상치 못한 발견도, 우연한 영감도, 느긋한 대화도 없다. 실패를 허용하는 공간도, 방향을 재검토하는 시간도, 그냥 쉬는 순간도 없다. 모든 것이 목적과 효율로 재단된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환경에서는 진짜 혁신이 나오기 어렵다. 혁신은 여유에서, 실패에서, 예상치 못한 조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팍팍하지 않은 조직을 만드는 것, 그것도 회사가 제공해야 할 가치다.


진짜 필요한 것


결국 회사에 진짜 필요한 사람은 다섯 가지 역량을 가진 사람이 맞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회사는 그런 사람이 회사에 머물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역량은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회사가 제공하는 학습의 기회, 의미 있는 미션, 좋은 동료, 실패의 안전망, 그리고 여유가 있을 때, 유능한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을 회사 안에서 쓰기로 선택한다.


반대로 회사가 역량만 요구하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면,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난다. 그들은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조직의 공백은 클 것이다.


회사에 필요한 사람을 논하기 전에, 회사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곳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회사를 떠날 자격이 있다. 그들이 머무는 이유는 떠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여기에 있고 싶어서여야 한다.

사람은 회사에서만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회사는 더 많은 것을 제공해야 한다. 역량을 요구하는 것만큼, 의미를 제공하는 것도 회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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