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도시의 축소판인 이곳

by 우주사슴

아침의 지하철은 단순히 사람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속에서 나는 거대한 도시의 축소판을 경험한다. 특히 3호선과 신분당선은 서울의 심장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축으로, 강남에서 강북으로 이어지는 노선은 수많은 삶의 궤적을 한 곳에 모아놓는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군중은 대부분 강남이나 을지로로 향하는 직장인들이다.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이들, 서류가방이나 노트북 백을 들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표정에는 출근길의 무게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또렷하게 구분되는 또 다른 무리, 바로 20대의 젊은 세대가 섞여 있다. 대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일 그들은 패션과 표정에서 한층 더 가볍고 빠른 리듬을 풍긴다. 이처럼 직장인의 안정적 흐름과 젊은 세대의 생기 있는 리듬이 뒤섞이면서 지하철은 세대와 세대가 교차하는 압축된 공간이 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다. 외형은 오히려 얼굴 이외의 곳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의 실루엣, 신발의 종류, 가방과 작은 액세서리, 옷의 색감 같은 요소들은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신발만 보아도 그 사람의 하루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 읽힌다. 오래 신어 닳은 운동화는 현실적 무게와 실용성을, 반짝이는 구두는 치열한 경쟁의 최전선을, 화려한 스니커즈는 자기표현 욕망을 보여준다. 가방은 또 다른 신호다. 간결하고 얇은 서류 가방은 효율과 속도를, 큼직한 백팩은 이동성과 다용도를 중시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이처럼 외형적 요소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개별적 정체성의 발화이고, 동시에 사회적 집단이 공유하는 무언의 언어다.


휴대폰은 더욱 노골적인 단서다. 의도적으로 엿보려 하지 않아도, 빽빽한 인파 속에서는 누군가의 화면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어떤 이는 주식 차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어떤 이는 짧은 영상들을 연속으로 넘기며 잠깐의 웃음을 얻는다. 또 어떤 이는 뉴스 속보로 하루의 흐름을 가늠하고, 다른 이는 여전히 책을 펼쳐 든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은 도시의 빠른 호흡 속에서도 느린 리듬을 고수하려는 태도의 표현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작은 선택들이 모여, 이 공간은 무수한 생활의 단서로 가득 차게 된다.


여기서 얻는 정보는 표면적으로 보면 외형적이고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외형은 결코 무가치하지 않다. 패션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자기표현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기호와 가치관이 옷차림, 신발, 액세서리, 휴대폰의 활용 방식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더 나아가 세대와 성별에 따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 모이면, 그것은 개별성을 넘어 하나의 대표성을 형성한다.


나는 군중 속에서 그런 대표성을 감지한다. 이를테면 20대는 유행하는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드러내지만, 유행이 발현되는 집합체처럼 보일 때도 있고, 30~40대는 실용성과 단정함을 혹은 유행의 최전선에 중간에 위치해 본인의 철학을 보여주며, 중년층은 안정감과 무게감을 중시하며, 극히 일부는 굉장한 패션센스를 보여준다. 이런 차이들은 무심한 듯 쌓이면서 시대의 흐름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이러한 관찰은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학습이다. 사람들의 외형과 습관, 작은 행동들 속에 시대의 취향, 소비 패턴, 가치관이 응축되어 있다.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거기에 휩쓸리지는 않는다.


다만 그 흐름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나 역시 대한민국의 가장 중심부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사회의 최전선에서 하루를 보내는 한 사람으로서 이 리듬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선 속에서 최소한 ‘촌스런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결국 나의 외연을 관리하며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변덕스러운 유행 대신 변치 않는 클래식함을 택한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멋을 보장하고, 사회적 무대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균형을 지켜준다.


이 점에서 지하철은 내게 특별한 공간이 된다. 그곳은 사회 각 층위가 한데 뒤섞여 드러나는 장이자, 시대의 감각을 읽을 수 있는 현장이다. 직장인 다수와 젊은 세대의 교차, 세대별·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표현의 방식, 그리고 그것이 모여 형성하는 시대적 공기. 나는 매일 그 속에서 무심히 스쳐 가는 장면들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영감으로 바꾸어 내 사고의 재료로 쌓아둔다. 결국 지하철은 단순한 이동의 도구가 아니라, 나를 사회와 연결시키고, 나 자신이 어떤 태도로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점검하게 하는 학습과 성찰의 공간이다.


나는 매일 아침 그 압축된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발을 맞추어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리듬과 개인의 고유성이 어떻게 긴장하며 공존하는지를 실감한다.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나는 유행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시대와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은 방식으로 내 멋을 유지할 것이다. 지하철 안에서 관찰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무언의 자극이고, 그 자극 속에서 나는 나만의 균형과 태도를 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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