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오징어게임, 베트남전쟁
폭력적이고 냉소적인 체제 속에서 개인이 맞닥뜨리는 죽음은 흔히 패배나 종말로 읽힌다.
그러나 히루루크, 성기훈, 틱광득의 이야기는 다르다.
이들은 죽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끝까지 직시하며 선택한다.
그 결과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해방을 선언하는 메시지로 전환된다.
먼저 주의할 점은 이들 인물 가운데 히루루크와 성기훈은 픽션, 즉 허구의 인물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틱광득은 실제 역사 인물로, 1960년대 남베트남의 불교 탄압에 항거한 실제 사건이다.
픽션과 현실이 혼재된 내러티브임을 인식하되, 각 인물이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와 인간 조건에 대한 성찰은 유효하다.
그러나 죽음 자체를 미화하거나 이상화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이들의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성찰과 저항의 의미를 해명하는 데에 초점이 있다.
히루루크는 『원피스』의 드럼왕국에서 병든 몸과 병든 체제 속에 놓여 있었다.
왕실의 무관심과 권력의 부패 속에서 의료 행위마저 좌절된 그는, 불치병을 안고도 환자들을 돌보려 애썼다.
그에게 죽음은 예정된 운명이었지만, 그는 체제의 냉소를 조롱하듯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폭발하는 길을 택했다.
“사람은 언제 죽는가? 잊혀질 때 죽는다”라는 선언은 생물학적 죽음을 넘어 삶의 의미를 묻는다.
그의 죽음은 왕국의 절망을 비웃고, 남겨진 이들에게 희망을 전염시키는 불씨가 된다.
이는 개인의 종말을 넘어 집단적 기억과 변화를 향한 해방의 서사다.
성기훈은 『오징어게임』이라는 극단적 자본주의의 폭력적 게임 세계에 내몰렸다.
빚더미에 몰린 그는 인간성을 상실하고 타인을 희생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시즌 1에서는 죄책감과 방황 속에 승리를 얻었지만, 그 승리는 인간성의 희생이었다.
시즌 3에서 그는 폭력적 게임의 규칙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우리는 말이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선언은 시스템이 강제한 경쟁과 폭력을 부정하는 윤리적 결단이다.
비록 생물학적 삶을 잃었지만, 그 결정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해방의 순간이다.
틱광득은 1960년대 남베트남 정부의 불교 탄압과 정치적 폭력 앞에서 극한의 비폭력 저항을 실천했다.
사회가 침묵과 폭력으로 얼룩졌을 때, 그는 자기 몸을 불태워 체제의 부조리와 폭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의 분신은 단순한 죽음이 아닌, 침묵을 깨는 외침이며 국제사회의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죽음이라는 극단적 행위를 통해 집단적 무관심을 흔들고, 개인의 고통이 집단적 의식의 해방을 촉발했다.
이 세 이야기는 죽음을 미화하거나 권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가피한 죽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죽음을 단순한 종말이 아닌 선택 가능한 언어로 바꾸었다.
체제를 비판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행위였다.
죽음이라는 경계에서도 인간다운 결정을 내리고, 타인을 위한 윤리를 실현했다.
비록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것이 인간적인 해방을 의미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죽음이 피해자의 침묵이 아니라 저항의 언어가 될 때,
죽음이 개인의 종말이 아니라 집단적 기억과 변화를 위한 불씨가 될 때,
그 선택은 인간성을 부정하는 현실을 넘어서는 선언이 된다.
결국 히루루크, 성기훈, 틱광득이 보여주는 것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인간적 존엄과 윤리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해방의 한 형태가 아닐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전복하려는 시도.
이들의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죽음조차도 인간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책임을 요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