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을 스스로 선택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마지막으로 바꾼 지 2년이 훌쩍 넘어갔다. 바꾸지 않은 게 아니라, 바꾸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카카오톡에는 내 근황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연락은 필요하지만, 내 변화를 공유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남긴 이미지는 루피다.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내가 동경하는 ‘자유’의 상징이다. 루피를 프로필에 걸던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바꿀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그 이미지는 지금도 내 이상을 충분히 대변한다. 그래서 프로필 사진도, 상태 메시지도, 배경화면도 그대로 멈춰 있다.
이제 카카오톡은 나에게 연락만을 위한 도구다. 말 그대로 최소한의 연결만 유지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는 나를 갱신하지 않는다. 카카오톡은 멈췄지만, 표현의 욕구까지 멈춘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이미지를 남기며 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건 계획된 분리가 아니었다. 카카오톡이 먼저 멈췄고,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는 그 이후 자연스럽게 확장된 공간이었다. 카카오톡에서는 과거의 연결을 닫았고,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서는 현재의 나를 연 것이다. 전자는 관계의 최소화이고, 후자는 표현의 활성화다.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 그 차이는 내가 의도적으로 만든 구획이 아니라, 시간과 관계의 흐름이 만들어낸 결과다. 카카오톡은 오래된 관계들의 흔적이 남은 곳이고,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는 지금의 내가 선택한 관계들이 이어지는 곳이다.
결국 이 분리는 나를 보호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었다. 카카오톡에서 나는 정지된 상태로 남고,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서는 현재진행형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최소한의 연결만 유지하는 현실의 창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구성하고 확장하는 사유의 장이다.
나는 여전히 카카오톡을 사용하지만, 그곳에서 나를 업데이트하지 않는다. 그 공간은 의도적으로 멈춘 나의 기록이고, 동시에 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경계다. 반면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는 살아 있는 나의 영역이다. 멈춤과 활동, 두 축은 분리되어 있지만 서로를 보완한다.
이 균형 속에서 나는 내가 선택한 만큼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루피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고, 나는 여전히 나의 자유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