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소맨 그리고 레제
이 글은 체인소맨 레제편과 그전 이야기의 직간접적인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체인소맨은 겉으로 보기에 전형적인 배틀물의 형식을 따른다. 악마와 인간이 싸우고, 피와 파편이 흩날리며, 극단적인 연출로 긴박함을 만든다. 그러나 그 화려한 전투가 전부는 아니다. 전투의 기술이나 승리 자체보다, 인물들의 내면적 감정과 관계의 붕괴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기존 배틀물이 보여주는 성장 서사, 힘의 각성, 명확한 서사적 보상과 달리, 레제편은 인간성의 결핍과 사랑, 상실의 무게를 탐구한다. 단순한 액션의 쾌감 속에 숨어 있는 정서적 깊이가 작품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레제편의 중심은 단연 레제와 덴지의 관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일시적인 인간다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레제는 덴지에게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망’의 형상이며, 사랑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존재다. 도시를 떠나 함께 살자는 제안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덴지가 결코 얻을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상징은 현실화되지 않는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파괴해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되고, 전투는 이러한 관계의 붕괴와 감정적 실패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싸움은 승리보다, 사랑의 결말이자 인간성의 종말을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전투 장면은 시각적으로 극단적이다. 화면을 가르는 톱날의 속도, 파편처럼 쪼개지는 컷 구성, 정적과 폭발이 교차하는 연출은 독자를 강렬하게 몰입시키지만, 동시에 내면의 정서를 단절시킨다. 이러한 시각적 과잉은 폭력의 쾌감을 제공하면서도, 그 쾌감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덴지의 분노, 슬픔, 희망과 레제의 인간성을 향한 욕망은 화려한 전투 속에서도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전투 장면의 폭력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감정의 부재와 존재의 결핍을 보여주는 장치로 작동한다.
마키마는 감정을 알 수 없는 존재로 간단히 레제편에서는 언급된다. (레제편 이전에 TVA 에서는 그것이 확실하게 독자에게 전달된다.) 그녀의 냉정함과 예측 불가능성은 덴지와 레제 사이의 인간적 서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감정을 알 수 없는 존재와 공감 가능한 존재를 대비시키는 장치는, 인간적 감정의 존재와 결핍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키마의 불가사의함이 덴지와 레제의 감정을 부각시키는 배경이 되면서, 전투와 극단적 연출 속에서 인간적 울림이 드러난다.
덴지와 레제의 관계는 전형적 로맨스 구조와 달리, 인간성과 감정의 파괴를 시각화한다. 서로에게 잠시 인간다운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그 가능성은 끝내 실현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파괴해야 하는 위치에 서고, 전투는 단순한 힘의 대결이 아니라 관계와 내면의 붕괴를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전투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적 실패와 상실은, 기존 배틀물이 보여주는 승리나 성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서사적 의미를 갖는다.
체인소맨은 기존 배틀물의 전형적 틀을 의도적으로 비튼 작품이다. 기존 배틀물에서 중요한 서사적 보상은 기술 습득, 동료애, 적을 공략하는 전략 등이다. 그러나 레제편에서는 전투 속에서 인간성과 감정이 어떻게 붕괴하는지가 중심이다. (성장에 대한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승패는 부차적이며, 중요한 것은 내면의 허무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 파괴하게 되는 관계의 구조다. 화려한 배틀과 극단적 액션 속에 감정과 존재의 붕괴를 심리적으로 탐구하는 서사 구조가 숨어 있다.
결국 레제편의 전투와 폭력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이 아니다. 전투는 감정을 숨기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언어로 작동한다. 피 튀기는 톱날 아래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인간의 마음 한 조각이 남아 있으며, 레제와 덴지의 관계 속에서 그 마음은 더욱 뚜렷하게 빛난다. 소년만화로 포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존 틀을 비튼 작품이다. 화려한 배틀과 액션 속에서 감정과 존재의 붕괴를 묘사하는 심리적 서사가 중심이며, 겉보기와 달리 체인소맨은 인간 심리와 관계의 복잡성을 깊이 있게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