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 트레일러닝

25년 7월 13일의 와신상담

by 우주사슴

북한산


서울 한복판에 국립공원이 있다는 건, 이 복잡한 도시가 언제든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는 통로를 품고 있다는 뜻이다. 일상의 긴장을 풀어내는 보물 같은 존재다. 북한산국립공원은 그 상징이다. 도심의 끝에서 곧장 숲과 능선, 암벽이 펼쳐지고, 이 산세는 인간의 야심과 안일함을 거울처럼 비춘다. 우리 세대가 누리는 특권이자 다른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혜택이다.


북한산 둘레길 65km



많은 이들이 북한산을 오르는 이유는 백운대 정상이다. 나도 여러 번 그 정상을 밟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정상보다는 ‘순환’을 상상했다. 산을 완전히 둘러가는 65킬로의 둘레길. 지도 위에 그린 단순한 선과는 달리, 그 길은 끝없이 오르내리는 경사와 불규칙한 지면이 이어진다. 흙길, 돌계단, 암반, 좁은 숲길이 교차하고 누적 고도 상승이 평면 거리와는 전혀 다른 무게를 더한다. 정상이 없다고 결코 쉽지 않은 길이 아니라 끊임없이 체력을 소모시키는 도전이었다. (물론 구간별로 즐기면 무리 없는 둘레길의 정의에 부합한다. 둘레길을 트레일런닝으로 환종주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멈춤


결국 27킬로 지점에서 멈췄다. 이 감정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7월 중순의 한국 날씨가 쉽지 않다는 건 사실이지만 코스 대부분이 그늘이었기에 날씨는 핑계가 되지 않는다. ‘여름이라서’ 실패했다는 설명은 정직하지 않다.


패착의 원인은 분명하다.


첫째, 목표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북한산 둘레길 65킬로는 평지가 아니라 산의 옆구리를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길이다. 짧은 언덕이 이어지고, 흙길과 돌계단, 암반이 교차하며 발바닥을 갉아먹는다. 구불구불한 숲길은 리듬을 끊고, 누적 고도 상승량은 지도 위 거리와는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닌다. 그런데도 나는 “이 정도면 되겠다”는 단편적 계산으로 접근했다.
지도는 평면이지만, 현실은 입체적인 고통이었다. 이 오판이 이번 실패의 본질적 이유였다.


둘째, 나의 경험이 나를 속였다.
하프 마라톤을 언제든 달릴 수 있었고 오랜 트레킹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방심하게 했다. 과거의 성취가 사고를 경직시켰고, 익숙한 방식으로 이번에도 통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준비를 생략하게 만든 자신감은 교만이었다. 결국 ‘익숙함의 함정’이 성장을 가로막았다.


Lesson & Learned


이번 실패가 내게 가르쳐 준 건 하나다. 원대한 목표는 멋진 결심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잔혹할 만큼 현실적인 인식과 세밀한 계획, 반복된 준비가 필요하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건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욕망으로 소비하며 실행할 구체성을 무시하는 일이다. 계획 없는 도전은 자만이고, 자만은 늘 실패를 초대한다.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단순하다. 변명하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선택했고, 내가 준비했고, 내가 실패했다.

이 후회가 언젠가 다시 큰 목표를 세울 때 가장 유익한 조언이 되기를 바라면서.


2025년 7월 13일 일요일.

북한산 둘레길을 달렸다가 멈춘 날. 오늘의 교훈이 내일의 실천이 되기를.


PS. 같이 달려주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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