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와노쿠니와의 비교
허구인가, 자화상인가
원피스의 와노쿠니 편은 “모험 만화”라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작가가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해 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의식을 드러낸 정치적 은유의 집약체다. 이는 단지 ‘일본풍’의 배경 설정을 차용했다는 의미를 넘어, 일본의 역사적 기억과 문화적 트라우마를 픽션의 구조 속에 기입해낸 하나의 국가 비평이다.
오다 에이이치로는 와노쿠니를 통해 일본이 외면해온 것들을 허구적 방식으로 형상화한다. 그것은 단지 “풍경의 유사성”이 아니라 “구조의 은유”다. 와노쿠니는 일본의 거울이며, 더 나아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서사적 장치다.
폐쇄성의 유전
사카쿠(鎖国,쇄국) 의 반복과 왜곡 와노쿠니의 고립은 단지 지리적 설정이 아니라, 사상과 권력의 기제다. 외부와의 교류는 철저히 차단되며, 국민은 외국인을 악마화하고, 외부 정보를 '불경'으로 간주한다. 이는 일본 에도 시대의 사카쿠(鎖国) 정책을 거의 직선적으로 반영한다.
17세기부터 250여 년간 지속된 사카쿠는 유럽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방어적 전략이었다. 그러나 와노쿠니에서의 폐쇄는 그보다 훨씬 사적이고 폭력적이다. 오로치와 카이도의 통치는 고립을 통해 외부 개입을 차단하고, 내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일본의 사카쿠가 ‘주권 방어’의 한 형태였다면, 와노쿠니의 고립은 ‘억압 유지’의 장치다.
이는 현대 일본이 겪는 정보 통제, 사회적 침묵 구조, 집단적 망각과 맞닿아 있다. 예컨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정보 은폐, 높은 자살률에 대한 사회적 침묵, 과로사 문제 등은 모두 '구조화된 고통'이 가시화되지 않는 사회의 일면을 드러낸다. 와노쿠니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억압’의 픽션적 확대이자 은유적 압축이다.
권력의 형식
쇼군제와 그 전유 와노쿠니의 권력 구조는 일본의 막부정치를 연상시킨다. 쇼군 오로치는 무사계급의 상징이지만, 작중에서는 더 이상 명예와 무도(武道)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권모술수와 대중선동, 그리고 외세 카이도에게 의존하는 파시즘적 군주에 가깝다. 이는 무사정신의 껍데기만 남은 채 통치의 도구로 전락한 전통의 비극적 형태다. 마치 전통문화가 상업적 이미지로 소비되거나, 정치적 정당성을 가장하는 외피로 동원될 때처럼 말이다.
현대 일본도 비슷한 이중성을 지닌다. 입헌군주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정치 엘리트의 폐쇄성과 세습성, '보이는 대표성'과 '작동하지 않는 참여'는 지속적으로 비판받아 왔다. 자민당 일당 장기집권, 아베 전 총리의 정치적 유산을 둘러싼 기억의 분열은 그 한 단면이다. 와노쿠니의 허구 권력은 일본 정치의 현실과 위선을 반사적으로 비춘다.
역사 기억과 민중의 자리
망각과 각성의 교차로 와노쿠니의 백성은 왜 오랫동안 억압을 받아들이고 살아왔는가? 그들은 기억을 잃었다. 진실은 왜곡되었고, 외부는 악마화되었으며, 고통은 개인의 운명으로 환원되었다. 이 구조는 일본의 전후 역사 기억과 유사하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책임에 대해 끝까지 반성하지 못한 국가다. 역사를 ‘공격받는 자존심’으로 환원하고, 집단적 피해의식으로 재구성한 전후 담론은 와노쿠니 백성의 망각과 자기 부정의 양상과 겹친다. 하지만 희망도 있다. 와노쿠니는 시민의 각성을 그리고, 루피는 민중과 연대하며 통치권을 전복한다. 이는 일본 현대사 속에서도 존재했던 반전운동, 시민사회, 학생운동과 같은 기억된 저항의 메타포다.
절정과 충돌
와노쿠니의 확장성과 피로감 서사적으로 와노쿠니는 『원피스』 내에서 가장 긴, 가장 복잡한 전개다. 수많은 인물, 회상, 복선, 전투, 이념이 복잡하게 얽히며 이야기의 밀도는 정점을 찍는다. 하지만 바로 그 과잉이 독자에게 피로감을 준다. 또한, 해양 모험이라는 본래 세계관에 일본 봉건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적 리얼리즘이 겹치며 세계관의 충돌이 발생한다. 조이보이, 니카 신화와 같은 우주적 서사와 와노쿠니의 지역적 상징주의는 명확히 통합되지 못한 채 병존하며 균열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나는, 원피스의 팬이다.
이 모든 구조적 피로와 충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와노쿠니 편이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였다고 믿는다. 그것은 단지 일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작가가 ‘국가’라는 구조 자체를 질문하려 한 시도였고, 허구를 통해 현실의 무의식을 드러내려 한 서사적 용기였다.
나는 이 실험이 과잉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원피스』라는 작품이 가진 철학적 깊이의 증거임을 믿는다. 루피의 전투보다, 조이보이의 신화보다, 나는 이 세계가 ‘무엇이 정의인가’를 끝까지 질문하려는 그 태도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픽션은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때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원피스』의 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