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이는 왜 싼마이가 되었나?

웃음의 위계, 품격의 허용치

by 우주사슴

우리는 종종 “좀 싼마이야”라는 표현을 쓴다.

무언가 촌스럽고, 조악하며, 유치하다는 느낌을 줄 때다.

그런데 이 단어, 사실은 일본어 ‘三枚目(さんまいめ, 산마이메)’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말은 웃기고 인간적인 조연에서 조롱과 저급함의 기호로 바뀐 걸까.


‘三枚目’의 기원 — 종이 세 장에 담긴 위계


‘三枚目’는 일본 전통 연극에서 비롯된 말이다.

과거 가부키나 신파극에서는 공연 포스터에 출연 배우를 종이 장수로 나열했다.

첫 번째 장(一枚目)에는 미남 주인공, 두 번째 장(二枚目)에는 서브 미남 혹은 젊은 엘리트, 그리고

세 번째 장(三枚目)에는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조연이 소개되었다.


여기서 ‘枚(매)’는 종이 장수를 세는 단위였으며, 단순한 순서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성격과 미적 위상까지 암묵적으로 반영한 기호였다. 삼마이메는 허술하고 과장되지만 관객의 웃음과 공감을 끌어내는 존재.

결점 있는 인간의 매력을 전면에 드러내는 역할이었다.


일본의 ‘산마이’ — 인간미의 웃음


지금도 일본 드라마, 만화, 예능에서는 ‘삼마이’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대개 허당이고, 유머러스하며, 감정적으로 서툰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이 없으면 서사는 메말라지고, 인물 간 긴장도 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슬램덩크』의 강백호(사쿠라기 하나미치), 『원피스』의 우솝 등은 모두

결점과 허세, 인간적인 매력을 갖춘 산마이의 계승자들이다.

그들은 결코 하찮은 인물이 아니라, 극의 리듬과 정서를 책임지는 핵심 존재다.


한국의 ‘싼마이’ — 조롱의 언어로 변이된 타자(他者)


하지만 이 단어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발음은 변하고, 뉘앙스도 변질됐다.

‘산마이’는 ‘싼마이’가 되었고, 여기에 한국어 ‘싼(cheap)’이라는 의미가 음성적으로 겹치면서

의미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한국에서의 ‘싼마이’는 이제 단지 웃긴 사람이 아니다.

싸구려 같고, 저급하고, 눈에 띄게 촌스러운 감성을 의미한다.

옷, 음악, 콘텐츠, 사람의 성격에 이르기까지 ‘싼마이’는 품격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여기에는 타인의 정서나 미감에 대한 위계적 평가가 개입된다.

유머는 공감의 매개가 아니라, 조롱과 거리두기의 도구가 되는 셈이다.


‘싼마이’는 왜 혐오가 되었는가 — 웃음의 감정 구조


왜 일본에서는 산마이가 공감의 대상이고,

한국에서는 싼마이가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까?


차이는 ‘웃음’을 받아들이는 감정 구조에 있다.

일본은 허술함과 실수에도 정서적 여지를 남긴다.

산마이는 비웃음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과 애정을 담은 웃음의 주체다.


반면 한국의 ‘싼마이’에는 계급적 심미감과 조소의 태도가 깔려 있다.

“너는 수준 낮아, 너는 유치해”라는 말이 ‘싼마이야’라는 한마디에 농축된다.

즉, 웃음의 방향이 타인을 향한 우월감으로 기울어져 있는 셈이다.


문화적 어원의 재전유 가능성 — B급 감성의 전복


최근에는 ‘싼마이’ 감성을 일부러 소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80~90년대풍 세기말 디자인, B급 정서, 레트로 유머는

‘싼마이’가 다시 스타일과 정체성의 표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신호다.


하지만 여전히 ‘싼마이’라는 말에는 가치 판단과 취향의 위계가 전제된다.

그것은 단지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웃음을 주도하고, 누가 웃음의 대상이 되는가를 묻는 사회적 질문이기도 하다.


웃음의 미학은 타자에 대한 태도다


‘싼마이’와 ‘산마이’는 단어 하나의 차이가 아니다.

그 속에는 문화가 웃음을 통해 타자를 어떻게 대하는가,

결핍과 허술함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깊은 감정 구조가 깔려 있다.


웃음을 허락하는 사회와 웃음을 평가하는 사회.

그 사이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나의 웃음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그리고 그 웃음은, 따뜻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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