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로 누운 변기

쓸모를 버리고, 존재

by Hildegart von Bingen

⟪목수일기⟫ 저자 목수 김씨는 아내가 체리를 좋아해 마당에 체리나무를 심고, 담장에 올라가 체리를 딴다. 또 산에 돌아다니며 쓸모 없어진 나무를 가져와 쓸모 있는 뭔가를 만들었다. 나는 이런 사람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체리를 좋아하기도 했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나 같은 나무를 가져와 예술성이든 실용성이든 의미를 부여해주는 목수 김씨가 다정해 보였다. 그래서 ‘목수의 아내’가 닉네임인 적 있다.


누구를 위해 벨은 울리나?

회사 다닐 때 휴대폰을 떨어트려 액정이 부서졌다. 구형이지만 좋아하는 디자인이라 해외에서 다시 주문했다. 배송일이 며칠 걸려 PC 카톡과 내 자리 전화번호로 업무를 진행했다. 밤낮으로 메시지를 남겨놓던 이사님이 회사명으로 빨리 개통하라며 불편해 죽겠단다. 나는 말했다. “휴대폰은 제 편의를 위해 있는 거예요. 다른 사람 편하라고 있는 거 아니에요.” 쓸모는 누구를 위한 편의일까. 나는 편안한가.


쓸모를 없앴기 때문에, 존재가 드러났다.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그 ‘샘(Fountain)’을 봤다. 90도로 변기 각도를 바꾸면서 소변 배출구 쪽 면이 세워지고, 물이 고이는 구조가 됐다. 아, 이래서 ‘샘’이라고 한 거야? 마르셀 뒤샹의 ‘샘’을 통해 오래전부터 쓸모에 매달려 있다는 걸 알았다. 특히 무력감이 밀려올 때 사극에나 나올법한 대감마님이 나타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하며 혀를 끌끌 차는 듯하다. 나는 밥값 못한 몸종처럼 있지도 않은 대감마님의 눈치를 본다.

‘열심히 일해야 인정받을 수 있어.’ ‘돈을 벌어야 쓸모 있어.’ 사랑받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속해지기 위해 쓸모를 원해왔다. 뒤샹은 기성품으로 제작된 사물을 기능이 아닌 관점의 대상으로 전환했다. 나는 어떤 ‘기능’품일까? 그동안 업이 되어준 기능으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면 쓸모없는 존재인가? 아무 역할을 하지 않을 때도 존재 자체로 충분한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오래전 TED에서 ‘코끼리 도구 실험’ 동영상을 봤다. 코끼리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 막대기를 코에 쥐워줬다. 인간은 높은 곳에 열린 나무 열매를 따기 위해 막대기를 이용한다. 코끼리는 막대기를 버렸다. 사람들은 코끼리가 도구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코끼리는 근처에 놓인 다른 ‘도구’를 가져다 놓고 그 위로 올라가 코를 이용해 열매를 따먹었다. 사회는 우리에게 정해진 도구를 주고 그걸 이용하지 못하면 쓸모없다고 단정 짓는다. 그 세상에서 살아남고 싶었다.

우리는 도구를 사용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보다 ‘이 사람은 저 열매를 어떻게 따먹을까’ 궁금해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쓸모는 용도를 다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쓸모 없어진 게 아닌데 갈 곳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존재의 방향을 재설정하려면 저항감이 무기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릴 것인가. 나는 내 방식대로 열매를 따먹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완에 이르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