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

농담이 된 상처

by Hildegart von Bingen

아픈 농담

내 인생은 막장드라마와 닮았다. 아파하는 수치심을 보호하기보다 솔직함을 사회적 가면으로 사용하며 담화의 주제로 나를 팔았다. 막장 드라마를 보며 저게 말이 돼? 억지 아니야? 신파를 다 갖다 붙여놨구만, 하는 반응은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아서다. 장애, 불륜, 이혼, 성 중독, 출생의 비밀, 자살 등 비현실적인 키워드가 내 삶을 이루고 있다. 상처가 아물지 않은 가십은, 농담이 되었다. 막장이구만, 하는 반응에 병신처럼 웃었다. 오랫동안 내가 나를 병신 취급하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병신이라는 말, 진담

유치원 다닐 때부터 오빠 손을 끌고 다녔다. 초등학교 내내 오빠와 짝이었다. 애들은 우리를 병신이라 놀렸고, 나는 오빠를 보호했다. 성인이 된 뒤 장애 있는 오빠 얘기는 숨겼다.

수행하면서 ‘나도 몰랐던 나’는 ‘병신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 나를 발견했다. 오빠를 외적으론 보호했으나, 내적으론 병신 취급했다. 수행을 하다 보면 그림자가 거둬지며 진실이 보일 때가 있다. 처음엔 아, 그랬구나! 통곡하고 나면 치유되는 줄 알았다. 그건 풍화작용에 불과하다. 무의식은 지층 같다. 기억과 감정이 다져져 퇴적물이 된다. ‘오빠’와 함께 쌓인 퇴적물을 녹여가면서 오빠에게 의존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 보호받고 싶었다.


풍화작용

호흡을 지긋하게 하다 보면 그림자가 걷히는 것처럼 몸에 든 힘이 빠진다. 저항을 놓아버리면 따뜻한 바람이 분다. 이때 ‘톡’ 하고 뭔가 떠오른다. 이게 시작이다.

명상을 하든, 수행을 하든 처음은 이완이다. 지구에 살면서 중력은 저항을 몸에 각인하고, 관성의 법칙은 우리가 멈추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놓아버림’을 체감하기 어려워한다.

내가 하는 이완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눕는다. 손아귀에 힘주듯 어깨에 힘을 주며 들이쉬고, ‘후-’ 내쉬면서 어깨를 ‘툭’ 떨어뜨린다. 호흡을 계속하며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씩 빼다 보면 가슴 근육 안쪽 소흉근의 감각이 느껴진다. 이쯤 되면 생각이 멈춰 있다(생각을 할 때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이완되면 애도하지 않은 상처가 문을 연다.


지각 변동

상처가 생기면 큰일 나는 것처럼 얼른 치워버리곤 했다. 얼마 전에도 그러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다 보도블록에서 넘어졌는데, 바지는 구멍 났고, 피가 났다. 잠시 통증을 견딘 뒤 일어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똑바로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피식. ‘너 지금 아프잖아. 왜 안 아픈 척 걷고 있어?’ 그러게. 절뚝거리며 걸었다. 안쓰러웠다. 이게 진짜다. 아프면 절뚝거리고, 그 모습은 안쓰럽다.

아픔을 인정하는 게 어려웠다. 내가 외면하는 감정은 왜곡되어 퇴적물이 된다. 지각 변동이 일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애도하면 풍화작용만으로 녹아내린다. 그러나 오래된 감정은 지각 변동을 겪어야 한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이라도 삶에 묻어 나오는 지혜로 태어날 수 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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