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면 덥석 잡기 멈춤

이번 생의 과제, 성(性)

by Hildegart von Bingen

왜 날 좋아하지?

누군가 다가와 당신을 좋아한다,고 어렵게 말을 꺼낸다. 이해할 수 없지만 좋아해주는 게 고마워 내민 손을 잡는다. 좋아한다고 해놓고 버릴까 봐 두려웠다. 온전하게 사랑하기보다 매일이 극적이었다.

넌 예측할 수 없다,던 H는 어느 날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패턴이 보인다,며 안도했다. 결혼을 말하기에 헤어졌다. 결혼을, 두 번씩이나 하고 싶지 않았다. 같이 살고 싶으면 그냥 살면 되지, 왜 굳이?


신랑 스물여덟, 신부 스물여섯

해수는 나에게 고딩과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도도하고, 독립적인 줄 알았겠지, <어린 왕자>의 장미‘과’인 줄 모르고. 그는 어린 왕자‘과’가 아니었고, 결혼 6년째 되던 해 여우 곁으로 떠났다. 나는 세상이 끝난 듯 처량했고, 내 곁에 있어주면 사랑했다. 남자라면 다 좋다,고 떠벌렸고 난 쉬운 여자,라며 당당했다. 오락가락 말로 사랑하고 허무해하다 돌연 차가워졌고, 남자 혐오증이 있냐는 소리를 들었다.

김연수 소설 <세상의 끝 여자 친구>에서 ‘자신이 만난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환상이 보인다’는 글을 읽고 나도 따라 상상했다. 어딘지 모르게 다 닮아있을 것 같아 허탈한 웃음이 났다. 만나는 남자 유형도 습관처럼 익숙함에 끌린다. 내가 그대로면 유형도 고착된다.


수치심의 근원을 찾아서

네댓 살 때 5원을 쥐어 주는 넝마주이 손을 잡고 가다 엄마에게 구출됐다. 열 살 때 뽀뽀하면 100원 준다며 방문을 잠근 하숙생 오빠를 피해 울며 도망가면서도 손에는 동전을 꼭 쥐고 있었다. 대학 때 남자친구가 생겨 사진을 보여주면 너는 남자면 다 좋아하는구나, 엄마는 말했다. 언뜻 보면 돈을 좋아했는가 싶다가도 단지 애정이 고팠다고 결론했다. 난 남자 없이는 못 살아!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남자가 있어도 세상이 허무했다. 가슴의 허기는 누가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랑을 갈애하는 나를 안아주다 보니 내 안의 브레이크를 발견했다.


본격 수행 시작, 새빨갛게 철학하기

속세를 떠나 도 닦겠다고 T에게 이별을 고했다. 익으면 동동 떠오르는 수제비처럼, 수행하며 낯선 의식들이 동동 떠올랐다. 특히 성(性)과 혈액순환을 연결하는 관점은 근원적 존재를 의식하게 했다.

T와의 연애 이후 손 내미는 유형이 변했다. 불안정한 형태임을 알면서 섣불리 만지고 싶지 않았다. 익숙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He를 알아보기 위해 내미는 손이라고 덥석 잡는 나를, 멈추었다.


따뜻한 연인이 되어 줘

남자 없이 6개월, 이라는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고 헸을 때, 알아들을 수 있을까 너만 이상해지지, 그러기에 말았다. 그리고 10개월, 1년, 2년, 남자 없는 시간이 이틀도 길던 나에겐 기특한 일이었다. 난 남자 얘기가 재밌다. 너네들이 아는 그게, 그거랑 다른 이것도 있다고, 근질근질하다. 후성유전학 스위치의 온오프 코드를 발견한 듯 He스토리는 내 인생을 조목조목 기억할 수 있는 정서의 스위치다. 남자랑 새빨갛게 철학하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게 내가 풀어낼 이야기다.

남자, 허무, 외로움, 고통, 죽음에 대한 고뇌로부터 수행의 길로 들어섰다. 몸, 마음, 호흡, 음식을 통해 피, 순환을 감각하고, 소비와 식욕의 딜레마를 내 것으로 감싸 안았다. 혈액순환, 소통, 관계를 통해 사랑의 다른 모습을 발견해 가는 과정, 온전하게 사랑하기 위해 나를 잘 알아가려는, 우당탕탕 자아성찰 실크로드의 여정에 당신이 나의 따뜻한 연인이 돼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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