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러의 종말, 정말?
나는 아직 원시인의 뇌 위주로 산다. 환경이 달라졌음에도 원시 경험으로 위기 상황을 해석하기 때문에 편도체 중심 신경망에 의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김주환 ⟪내면소통⟫은 편안전활, 편도체 안정화와 전전두엽 활성화하는 방법에 앞서 자동반사로 반응하는 편도체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나는 편도체가 자주 활성화되는 방식으로 방어하기 위해 공격성을 표출하곤 해서 나를 이해하기 위해 이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근육에 힘을 주고, 인체의 균형이 깨지게 되는데, 편도체는 위기 상황이 되면 생존 본능으로 두려움과 공포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두려움과 공포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면의 불안감은 ‘분노’라는 공격성으로 나타난다. 분노는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다.
편도체는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을 유발하는 중심축이다. 분노나 짜증, 무기력이나 우울감 등의 부정적 감정은 두려움이 지속될 때 나타나는 좌절감의 표현이다. 모든 부정적 감정의 근원이 두려움이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마음근력의 기반인 전전두피질 신경망 기능은 저하된다. 현대인에게 주어지는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들은 전전두피질 중심의 신경망을 사용해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유튜브 ‘김주환의 내면소통’ 채널에서 김주환 교수는 6가지 기본 감정으로 언급되는 슬픔, 분노, 행복, 놀람, 두려움, 역겨움은 문화적 분류이고, 편도체 활성화에 따른 여러 반응일 뿐이라고 한다. 과학적 기반으로 보면 감정은 사실 하나이고, 통증이 곧 감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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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이 애쓰면, 열리는 문.
오르막길에서 힘이 달린다고 느낄 때 분노 비슷한 감정이 올라온다. 위기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 도망가기 위해 근육의 힘이 필요했다면, 근육에 쥐어짜는 힘이 들어갈 때도 두려움의 반응인 줄 알고 분노하는 듯하다. 근육에 힘이 모인 순간의 스트레스, 그 스트레스를 유발한 두려움, 그동안 두려움의 반사 감정으로 사용한 분노, 이런 식으로 연결되는 게 아닐까.
출퇴근 시간 나는 항상 지하철 계단을 이용한다. 대둔근과 허벅지 근육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걷는다. 어느 날, 피로가 누적된 상태일 때 계단 오르는 게 힘들 때가 있다. 그때는 같은 계단인데도 허벅지에 쥐어짜는 듯한 힘이 들어갈 성싶으면 가슴팍에서 분노가 머무는 차원의 문이 열릴 듯 말 듯한 느낌이 든다.
통각은 경험자아, 통증은 기억자아.
서랍을 닫다가 손가락을 그 사이에 꼈다고 해보자. 통증과 함께 폭탄이 터졌다가 다시 가스먼지와 압력으로 응축하는 이미지처럼, 분노가 가슴팍에서 확 번졌다가 다시 모인다.
통각은 신체가 느끼는 현실 감각이라면, 통증은 사람마다 다르다는데, 사람마다 감정의 성분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서랍에 손가락을 찧은 ‘부주의를 책망하는 나’에게 분노하는 내가 일으키는 감정이 분노라고 생각한다. 생존의 개념으로 해석하자면, 내가 나에게서조차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인 듯하다.
어떤 상황이 나에게 상처가 됐을 때 감정으로 발현되기 전에 통증으로 먼저 느껴질 때가 있다. 나에게 여섯 갈래의 감정 발현 통로가 있다면, 통증이 담긴 감정 관제탑이 외부 상황으로 ‘뭉클’ 하고 움직이면 그것과 연결된 여러 갈래의 감정 발현 통로 중 주로 쓰는 감정 줄기가 발광하듯 요동친다. 나는 주로 슬픔을 사용한다. 카푸치노처럼, 슬픈 거품 밑에 쓰고 진한 분노가 레이어드 되어 있다. 억울한 빛깔을 띠고서.
경로 바꾸기.
누굴 탓할 수 없는 통증은 감정으로 연결되었다 링크가 끊어지는 것까지 관찰이 가능하다. 서랍에 찧은 손가락 통증이 느껴질 때 숨을 막으면서 통증으로 들이쉰다. 통증이 더 커지면서 번진다, 숨을 잠시 멈춘다. 서서히 멈춘 숨을 놓는다. 옅어진다.
그러나 탓하기 쉬운 대상이 근처에 있으면 노력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우리의 근원이 저런 모습으로 잠시 환원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생명이자 삶인 시공간 자체가 배경자아라고 생각하고, 배경자아를 가리는 구름, 경험자아와 기억자아(에고)가 고여 뭉친 구름은 똑똑한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지렁이라고 캐릭터를 부여한다. 그렇게 하면 스토리텔러가 시나리오 쓰는 것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 각본을 바꿀 수 있다. 모든 손가락질이 나에게 돌아오듯, 모든 관찰 또한 나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