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첫 장면은 세일즈맨 윌리 노먼이 두 개의 트렁크를 힘겹게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평생을 일한 직장에서 짐 취급을 받고, 주택담보 대출금을 갚고, 전자제품의 할부금을 갚고, 보험금을 납부하고, 온전히 내 집이 되지도 않은 집을 수리하느라 돈을 내고, 새로 산 냉장고의 수리비를 지급한다.
알래스카에서 성공한 형을 동경하지만, 자기 집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 이곳에 머물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자랑스러운 아들에게 죄책감을 느끼지만, 사랑하는 아들이 나 때문에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게 된 걸까 봐 아들을 마주하지 못하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아들에게 망상 속에서 말을 건다.
마지막 장면은 그동안 묶여있던 삶이 풀려난 듯 아무것도 없는 트렁크가 열린 채 하늘에 떠 있다. 주택담보대출금을 다 갚은 집에는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는다.
자유로운 영혼 윌리의 형은 극 중에서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고, 숨통을 트여주려는 캐릭터이지만, 윌리 로먼은 선뜻 나아가지 못한다. 나도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지만 현재 있는 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꿈꾸지만 안주한다.
나는 벤 로먼을 보고 노지에서 자란 채소와 과일을 떠올렸다.
노지에서 자란 식물은 적나라한 환경에 적응하며 성장한다. 산나물처럼 독성이 생기기도 하지만 약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채소 같은 경우 씹을 때 채소와 채소 사이에 공기층이 느껴지는 부피감이 있다. 수분 함량이 하우스채소보다 적지만 그 자리를 영양분이 채운다. 과거와 현재의 채소 미네랄 함량의 차이처럼, 노지와 하우스재배 채소도 양분의 차이가 난다. 인간으로 말하자면 노지 과일과 채소는 생기가 있다.
하우스에서 자라고 싶은 나는 비바람에 날아간 하우스를 동경하면서도 내던져진 환경에 힘겹게 적응하며 뻣뻣해지고 있다. 하지만 시련은 안락한 과거에 미련을 남긴다. 자라고 싶은 대로 자란 노지 식물처럼 자연에 흠뻑 젖고 싶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안락한 의지처를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매일이 고래 싸움 구경에 새우 등 터지는 투쟁이다. 고래 근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하염없이 가볍다. 어느 날은 이대로도 좋다가, 어느 날은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을까 의심한다.
비프 로먼은 자신이 1달러짜리 인생이라고 아버지에게 고함을 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기대를 건 촉망받는 풋볼선수가 아니라 낙제하고, 무능력한 1달러짜리 인생.
비프는 1달러짜리 인생을 벗어나려는 삶이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다고 외친다. 그런데 나와 비프는 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지.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데.
해상도 높은 삶을 살고 싶고, 또렷하고 싶은 내 소망과 다르게 점점 희미해진다. 표정도 착한 얼굴처럼 변하고, 인생 전체가 아닌 현재 조건 안에서만 적응하면 된다는 듯 정형화되고 있다. 시야는 좁아지고, 사물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희미해진 것처럼 느껴진 걸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렇게 하자.
죽지 않고 죽는 법,
세일즈맨의 트렁크를 열고, 한 발 뒤로 물러서. 삶의 무게가 허상임을 인정할 것. 나를 먼저 기분좋게 할 것. 또렷하게 살 것,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찬 표정으로 그냥 살 것, 자연 속을 달리고, 책에 흠뻑 취할 것, 먹고 싶은게 떠오르면 당장 먹을 것. 떠오르는 대로 기분 좋게 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