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존재하기
영화를 보다 보면 끌리는 캐릭터가 있다.
⟨킹콩⟩, ⟨혹성탈출⟩의 시저, ⟨셰이프오브워터⟩의 양서류인간 등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공격성을 띤 동물이다. 저들이 끌리는 이유는 통제 불능 본능만 있던 곳에서 따뜻한 마음을 읽는 시선을 발견하고, 따뜻함을 느끼고, 따라하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신의를 지키기 때문이다. 그들이 변화하는 이유는 생명을 따뜻하게 대하는 마음을 통해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아서라고 생각한다.
마르틴 부버에 따르면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나’라는 존재의 성격이 규정된다. 그들은 공격성을 숨기지 않는다. 대놓고 공격적이지만, 상황이 바뀌면 대놓고 사랑스러워진다. 일관성있게 솔직하다. 그래서 왜곡되지 않은 바탕에 따뜻함을 채운다. 진심이 드러난다. 이들은 모두 관계를 통해 변화한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때, 진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대놓고 요구하고, 대놓고 부비부비하고, 대놓고 귀찮아한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솔직하다. 배가 고프면 울고, 관심을 받고 싶으면 몸을 부비고, 귀찮으면 자리를 뜬다. 거절도 뚜렷하고 애정 표현도 명확하다.
인생사를 돌아본다. 누군가가 화낼까 봐, 오해할까 봐, 버림받을까 봐 감정을 누르고, 때로는 자신조차 속인다. 착함은 때로, 진심 없는 순응일 수 있다.
감정을 숨기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진다. 자기 자신과도 멀어진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컷은 “거짓 자아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형성되지만, 진짜 자아는 느끼고 반응하고 표현하며 살아 있다.”고 말한다.
잘 느끼고, 잘 반응하고, 잘 표현하며 나에게 정직한다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이런 게 살아 있는 느낌일 거야. 요즘 살아 있는 것 같거든. 나는 대놓고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