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보호받고 있다
팟캐스트 ‘지대넓얕’ 실시간 업로드 날을 기다려 찾아듣던 때였다. 이곳에서 소개하는 건 모두 이슈가 되었다. 김도인이 방송에서 명절 선물로 영화 ⟨예스맨⟩을 추천했다. 영화를 찾아본 뒤 앞으로 한 달은 나도 무조건 ‘예스’를 도전하기로 했다. 지대카페에서 어울리던 멤버가 SSI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과정을 함께 들을래? 물었다. YES! 했다. 살면서 생각해본 적 없던 장르였지만 제안을 받았으니 무조건 YES!다.
어드밴스드 오픈워터 교육 과정을 마치고, 사이판에서 해양 실습을 했다. 수심 5m 정도에서 다이빙할 때는 바다 속의 풍경이 아기자기하게 보인다. 아름다운 산호초, 니모, 떼 지어 다니는 물고기의 선율을 감상하며 함께 노니는 일체감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러나 수심 40m에서 느껴진 건 칙칙한 암벽과 산호초, 바닥 없는 바닥이 주는 움찔한 두려움이었다. 그게 호흡의 리듬에 스며든 뒤 남은 건 심연이 끌어당기는 암흑소리, 고요함 속 숨소리, 버디와 교감하며 느낀 안전함이었다. 임상연구에 따르면, 깊은 호흡이나 이완의 순간에 인간은 신경계가 진정되어 압박감 속에서도 심리적 안정을 경험할 수 있다.
처음 수행을 시작했을 때가 수심 5m에서 즐기는 스쿠버다이빙과 같았다. 우주의 은혜를 입은 듯 나무에 인사하고, 세상을 안아주고 싶은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기가 지나고 괴롭고, 치밀하게 나를 아프게 하는 부분들이 드러났다. 암흑이 불러내는 그르렁 소리와 함께 상처를 마주해야 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더 잘하려는 마음이 달라붙어 무의식을 마주할수록 감사와 환희의 순간을 가두고, 우울과 무력의 장력으로 삶은 제자리걸음 치는 듯했다. 기둥 하나 붙잡고 의지하고 싶은데, 분노조차 온전히 내뿜지 못하고 내 눈치를 봤다. 고요한 교감의 장소에서 스스로 교화를 강요했던 거다.
‘억울함과 마주할 때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은 자신의 감정 구성 중 치유되지 않은 부분이다. … 원망을 확실하게 살펴보면, 무지하고 순진하고 천진하며 정신 교육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을 벌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세상은 왜소함 특유의 자만심과 공포심을 최대한 자극해서 우리의 순진함과 왜소함을 이용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 화내도 괜찮다. 무의욕에 빠지느니 화내는 편이 백번 낫다. 분노 속에는 큰 에너지가 들어 있다.’ - 데이비드 호킨스 ⟪놓아버림⟫
수행의 시작은 YES!라고 외치며 세상으로 달려나가는 것처럼 가벼운 기쁨과 해방감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수행이 깊어질수록 내면의 숨겨진 감정과 고통을 발견하게 된다. 칼 융은 ‘자기 그림자를 직면하고 통합할 때 진정한 자기와의 교감과 내면적 성장, 안정감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몸과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았을 때, 용기를 내어 그 자리에 멈추고 방전된 내 안의 감정을 바라보면, 얼굴은 무섭지만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처럼, 그 두려움 끝에 따뜻한 밥과 따뜻한 품이 나를 안아준다.
깊은 바다의 무게감과 내면의 어둠은 나와 세상을 잇는 안정의 숨결이 되어준다. 수심 40m의 암흑이 역설적으로 가장 명징한 평온을 안기 삶의 단단한 밑바닥에서 우리는 진짜 나 자신과 만나며 천천히, 견고하게 회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