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에서 화수분 되기

관계와 존재

by Hildegart von Bingen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 ‘밑 빠진 독’ 하나쯤 가지고 산다. 부족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살거나, 감정에 끌려다니기도 하고, 채워지지 않는 인정 욕구, 사랑을 받아도 허전한 마음, 삶 어딘가 구멍 뚫린 듯 공허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나를 고치려 하고, 명상을 하고, 워크숍을 다녀봐도 왜 채워지지 않을까?


‘밑 빠진 독’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전래동화 ‘콩쥐팥쥐’다. 물을 채워도 계속 새어나가니 주저앉아 우는 콩쥐에게 두꺼비가 나타나듯, 귀인이 나를 도와 깨진 부분을 메워주는 방식도 있겠으나, 물을 채우기 위해 독이 필요할 뿐이다. ‘깨진’ 독에 초점이 맞춰지면 물을 채우는 것보다 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사고가 치우칠 수 있다.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는 스님의 화두에 그들(?)은 연못 속에 독을 던져 담가버린다. 물을 채우라고 하니 물이라는 조건 안에 들어가버렸다. 물이 목적이면 물을 찾으면 되기 때문에 이건 존재의 환경 자체를 바꾸는 방식이다. 깨진 독이라는 한계가 사라진다.


심리학자 커트 루인은 ‘행동은 개인과 환경의 함수’라고 말했다.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성격과, 지금 놓인 환경이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라는 의미다. 개인을 고치려는 노력이 효과적이지 않을 때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변화의 열쇠가 될 수 있다. 결핍을 고치려는 의지보다, 내가 원하는 환경에 노출되는 경험 반복이 더 강력하다.

신경과학에서는 인간의 두뇌가 거울 뉴런 시스템을 통해 주변 환경과 감정적으로 동기화된다는 연구들이 있다. 안정된 환경에 나를 두는 것만으로도, 신경계가 그 리듬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읽고 훈련을 반복해도 자신을 비난하는 환경 속에 있다면 소용이 없다. 하지만 자기 존재가 존중되는 분위기, 실수를 허용하는 창조적 공간, 그리고 삶의 가치를 긍정하는 관계 속에 들어가면, 성장하려는 동기는 안전하다는 느낌 속에서 동력을 얻는다.


나에게 구멍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밖에서 나의 스승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요즘 하루에 6시간씩 책을 읽으며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질문에 이미 답이 있다면서, 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내 안에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독이라는 경계마저 무효화할 수 있다면, 물 또한 외부의 연못에서 찾지 않고, 내면 존재 자체가 물이 되어 나를 감싸는 환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관점의 전환이 일어났다. 밑 빠진 독에서 새어나가는 것과 반대로, 내 존재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내면의 화수분 자체라면? 지금 이 순간에 머물라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흐름을 느끼고, 깊은 내면 상태와 연결되는 이런 내면 변화 덕분에 내 안에 이미 스승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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