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받음의 동등성
대부분의 사람은 ‘얻기 위해’ 움직인다.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고,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쓰고, 인정을 받기 위해 성과를 쌓는다. 결핍이 전제된 세계관은 주고받음을 ‘부족한 자원을 서로 빼앗고 나누는 행위’로 해석한다.
그러나 깊은 내면의 어느 지점, 무한한 샘이 있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샘물의 총량을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주는 것은 샘을 더 깊게 뚫고, 받는 것은 샘에서 길어 올린 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들숨이 날숨으로 완성되듯, 관계의 숨결도 주기와 받기의 균형 속에서 살아난다.
이 무한 공급의 순환 속에서 ‘얻기 위한’ 흥정{Bargain=Bar(막다)+Gain(얻다)}은 흐름을 멈추게 한다. 자발적 덤, 예상치 못한 배려, 무형의 가치는 순수한 흐름 속에서 창조된다. 상대가 정한 가치를 인정하고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고민하고, 인정해본 사람의 태도다. 줄 만큼 줄 수 있어야 받을 만큼 받는다.
부교감신경은 안전과 신뢰의 신호가 감지될 때 활성화되고, 몸은 이완 상태에서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데, 누군가에게 줄 때와 받을 때도 이 신경계 반응은 거의 동일하다고 한다. ‘주는 순간’과 ‘받는 순간’ 모두에서 몸과 마음은 풍요를 경험한다.
사람들이 받는 것보다 주는 걸 더 쉽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를 받으면 갚아야 할 빚으로 여기거나 받는 쪽이 주는 쪽보다 낮다고 생각해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받는 순간, 상대의 호의를 인정해야 하고, 그 인정은 곧 자기 가치를 의심하게 한다.
그러나 무한 공급원인 내면공간에서 이런 울림이 느껴진다. 받음은 ‘빚을 지는 것’도,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상대의 공급원을 확장시켜‘주는’ 받음과 동시에 다시 줄 수 있는 가능성이다. 내가 받지 않으면, 상대의 주기는 완성되지 않는다. 모두가 흐름의 완성을 위한 한 축이다.
결핍의 관점에서는 ‘주는 자’가 강자, ‘받는 자’가 약자처럼 보이지만, 풍요의 관점에서는 주는 순간과 받는 순간 모두가 같이 충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