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채워져 있다

나만의 레몬블루쿠폰

by Hildegart von Bingen


나에겐 ‘레몬블루’라는 토스카드가 있다. 퇴사하기 전 그 카드는 ‘쏨’ 카드였다. 20만원을 넣어놓고 한 달 동안 기브앤테이크를 한다. 잔고가 0원이 되면 다음달 월급 때 재충전되기 전까지는 쏘지 않는다.


놀고 있던 그 카드에 민생회복소비쿠폰 지원금 15만원이 채워졌을 때 ‘맛있는’ 생각을 했다. 식재료 사서 밥해먹고, 가끔 맛있는 내추럴커피 마시러 단골카페에 들르는 정도로 고여 있는 중이라 대놓고 ‘소비’하라니 재미를 느끼는 곳에 사용하고 싶었다.


민생회복의 사명감(?)을 지니고 오후 자전거 타는 시간에 소비할 곳을 탐색했다. 새로 생긴 카페가 예뻐 들어가서 낯선 음료를 주문하고 체코빵 뜨르들로를 종류별로 먹어 보고, 지리산팥으로 만드는 팥빙수도 여러 번 먹으러 갔다. 요즘 주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잠깐 나와 사케라또 아포가토도 먹고, 바스크 치즈케이크도 먹었다.


덕분에 떠오르는 게 있으면 먼길을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소비가 조금 자유로워졌지만, 금액을 거의 다 썼을 때 줄어드는 잔고에 초점 맞추는 걸 느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쿠폰을 주면 어떨까?’ 정부의 지원 쿠폰이 소비를 순환시키듯, 나 자신에게 ‘쿠폰’을 발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체크카드에 30만원을 넣어 ‘맛있는’ 쿠폰을 만들었다. 하던 대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쿠폰이었다. 유효기간은 없다. 잔액이 1~2만원 남을 때 다시 30만원을 채운다. 이 ‘쿠폰’은 외부에서 한 번만 주어지고 끝나는 보상이 아니라, 내 의지로 채우고 유지한다. 주도권을 가져오니 유혹에 이끌려 소비하지 않는다. ‘결핍이 채워져야만 안심하는 마음’에서 ‘언제든 다시 채울 수 있다’는 내적 신뢰가 쌓인다.


근원에 닿은 마음도 이와 같다. 삶에서 무언가 줄어들거나 소모되는 경험이 있더라도, 그 바닥에는 언제든 다시 채워줄 수 있는 원천이 있다는 믿음이 자리한다. 영적 수행에서 말하는 ‘근원’은 고정된 양의 에너지가 아니라 흐름 그 자체다. 호흡을 내쉬면 다시 들이마시듯 주고 나면 다시 들어오는 생명의 순환을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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