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품위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치아바타 빵을 만들었다.
재료가 준비됐다. 밀가루와 소금, 올리브오일, 따뜻한 물, 이스트를 섞는다. 반죽을 폴딩하고, 발효하고, 다시 폴딩하고 발효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과정을 거친다. 온도 습도에 따라 발효 속도가 달라진다. 물의 양이나 이스트 상태에 따라 굽고 나면 공기층이 무겁게 되기도 한다. 재료 비율을 조금씩 조절하면서 그날의 레시피를 찾으면 겉바속촉 치아바타가 완성된다.
‘침묵을 배우는 일’도 이와 닮았다는 걸 느낀다. 처음부터 조용히, 깊이 있게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그렇다. 어릴 때 말실수를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즉각 반응하고, 튀어나오는 대로 말하고, 필터를 끼울 찰나도 없이 가감 없이 표현하고, 기분에 취해 유희를 즐기고 나면 공허한 느낌이 들곤 했다.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성숙하지 못한 나의 말을 돌아본다.
절에 갔을 때 들었던 천수경의 첫 시작이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다. 말로 지은 업을 참회하는 주문이다. 그걸 외울 때마다 수많은 말들을 돌아보게 된다. 말에는 마음의 상태와 영혼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나에게도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혀끝을 치고 나오는 생각을 입천장에 대고 자궁처럼 말을 품는 연습을 시도했다.
침묵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건 ‘묵(默)’이라는 한자 덕분이다. ‘默’은 검을 흑(黑) 자와 개견(犬) 자로 이루어졌다. ‘어둠 속에서 개가 짖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진짜 힘을 가진 사람은 함부로 짓지 않고 고요히 지켜본다. 내면의 힘이 있고, 자신의 힘을 아는 사람은 침묵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침묵이 단순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진실한 대화는 성스러운 관계로 이끈다”고 말했다. 그 진실함은 겉도는 말이 아니라, 내면에서 조용히 숙성된 침묵에서 비롯된다.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시겔 박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말을 하려다 잠시 멈추는 그 순간, 뇌의 전두엽이 활성화되어 감정을 조절하고 더 성숙한 언어를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즉, 침묵은 자기 조절의 능력이자, 뇌를 성장시키는 훈련이다. 대화를 시작할 때 ‘묵(默)’을 떠올리면 내면의 진정성과 통로를 열어준다.
빵 반죽이 발효와 숙성을 거쳐 맛있게 구워지는 것처럼 침묵과 말은 연결되어 순환하며 함께 익어간다. 내 말도 침묵과 기다림 속에서 점점 단단해지고 깊어졌다. 침묵 속에서 단단해진 말은 결국 나를 품위 있게 만든다.
감사하고, 겸손하라. 고요하며, 침묵하라. 마음으로 읊는 나만의 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