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은 선해요

본성의 문을 여는 수치심

by Hildegart von Bingen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에게 묘하게 마음이 끌린다. 어딘가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나랑 겹쳐 보인다. 그래서 센을 따르는 모습이 이해간다. 인정받기 위해 꾸며내지 않아도, 과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존중이 가능하다는 걸 센 같은 친구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가오나시는 센(치히로)이 열어준 뒷문으로 목욕탕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손님다운 관심과 대접을 받지 못한다. 가오나시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수치심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 감정을 외면하고 타인에게 내민 황금은 누군가의 욕망을 자극할 뿐 내 존재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들은 가오나시가 지닌 황금을 얻기 위해 아부한다. 이제 넘쳐나는 관심은 욕망에서 탐욕으로 바뀐다. 결국 가오나시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재물을 보고 아첨하는 이들을 먹어치운다.


가오나시는 몸집이 커져 무시의 대상에서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센은 처음 가오나시를 만났을 때 필요 이상의 경계를 하지 않았듯, 거대해진 모습 앞에서도 굽신거리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만 정중하다. 센은 물의 신에게 받은 치유의 약을 반 나눠 가오나시 입에 던진다. 가오나시는 울분을 녹이듯 아첨이들을 토해낸다.


우리는 원본이 무시당할 때, 수치심이 느껴지는 원인을 성찰하기보다 무시받지 않기 위한 스펙을 쌓는다. 그러나 센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힘이 있다. 타인이 가진 결핍을 수치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본연의 선함을 회복하게 돕는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꾸미지 않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품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진짜 필요한 건 남들이 탐내는 황금이 아니라,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본연의 선함과 따뜻함이다.


가오나시는 센의 모습을 보고 자기가 닮고 싶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을까? 가오나시는 황금을 탐내지 않고, 절제된 태도로도 존중을 잃지 않는 센의 모습을 보고 잃어버린 본성을 마주했을 거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은 우리가 가치 없다고 믿는 순간을 직격한다’고 말했다. 수치심을 피하거나 억눌러서는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은 가짜 욕망과 진짜 필요를 구별하는 신호다.

수치심을 외적 성공으로 덮으려 하기보다 성찰의 문으로 삼을 때 비로소 본연의 선함에 다가설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성장은 가오나시처럼 자신의 허기를 느끼고, 채웠다가 끝내 토해내고 나서야 가능하다.

따라서 수치심은 감춰야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주하는 순간, 삶이 정직해지고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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