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별보는 마라톤
별은 밤에 보지만, 밤새 별 보는 날은 드물다. 추워야 맑은 한반도에서 밤새 별 보는 일은 힘든 일이다. 실내에서 원격으로도 찍을 수 있는 사진을 밤새 촬영할 수는 있어도 밤새 내 손으로 망원경을 붙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침에 집에 운전해서 돌아갈 생각을 한다면 자정 쯤에는 눈을 붙이게 된다. 조금 부지런하면 해뜨기 두 시간 전쯤 일어나서 새벽 동쪽하늘의 천체를 일부 찾아볼 수 있는데, 알다시피 눈을 붙였다 다시 일어나는 것은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전세계 아마추어 천문관측가들이 가장 밤을 많이
새는 날이 봄에 있다. 메시에마라톤을 하는 날이다. 실제 마라톤처럼 뛰지는 않고, 밤새 망원경을 붙들고 씨름한다. 여러 방향에 있는 천체를 찾느라 만들어내는 자세만큼은 씨름에 가깝다.
인류가 망원경으로 하늘을 탐색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메시에라는 사람이 혜성을 탐색하다 보니 혜성하고 헷갈릴 것 같은 천체들이 있어서, 이들을 목록화 하기 시작한 것이 인류 최초의 천체목록이다. 이를 메시에목록이라고 하며, 총 110개가 수록되어 있다. 이후 GC, NGC, IC 등등 수천개의 천체들을 수록한 목록이 뒤이어 만들어졌다. 망원경이 크고 기계로 작동되면서 더 많은, 더 어두운 천체가 발견되었고, 지금은 온갖 목록의 천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데이터로 다룬다. 그럼에도 여전히, 메시에목록은 천문학에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목록이다.
메시에가 당시에 썼던 망원경의 성능이 지금에 비해 많이 안 좋았기에, 현대의 어지간한 작은 망원경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천체들이 메시에목록에 수록되어 있다. 천체관측에 관심을 가져 내 망원경으로 달, 토성, 목성, 금성, 화성을 섭렵하고나서 태양계 밖 천체에 관심을 돌리게 되면 아마추어 천문가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할 수 있겠다. 이 때 관측하기 시작하는 천체들이 메시에목록에 수록된 천체들이다.
메시에목록은 봄철 하룻밤에 다 찾아볼 수 있어서 아마추어천문가들이 이를 시도하는데, 이게 바로 메시에마라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부터 천문인마을에서 시작했는데, 컴퓨터로 자동으로 천체를 찾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일정 배율 이상에서 오로지 손으로 찾는 마라톤을 한다. 보통 메시에목록에 수록된 110개 천체를 모두 찾아본 사람들, 소위 메시에목록 졸업자들이 메시에마라톤을 준비하는데, 필자는 메시에목록 졸업을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2003년, 2004년에 출전했었다. 메시에 천체들이 보였다 말았다를 반복하는 안 좋은 날씨에 메시에마라톤을 제대로 준비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자고 있거나 술을 한 잔 걸치는 중이었고, 나만 망원경 앞에 계속 앉아서 확인하는 끈기로 60~70개 정도로 1등을 했었다. 정작 메시에목록 졸업은 이보다 이후인 2006년 4월에 M30을 찾아보는 것으로 했었다.
최근에는 메시에마라톤을 하는 곳이 한두군데 늘었는데, 2018년 경남 산청 별아띠천문대에서 열린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경남지부 메시에마라톤에도 참가한 적이 있었다. 이 때에는 구경 200mm 망원경으로 참가해서 104개를 찾았다.다음날 일정이 있어서 서울로 이동하느라 시상식에 참석을 안 해서 등수에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후 너무 바빠 참가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올 해 3월 29일에 천문인마을에서 메시에마라톤을 한다는 공지를 보고 바로 신청해 버렸다. 메시에마라톤은 어두운 천체를 찾는데 방해가 되는 달을 피해서 3월 말에 가장 인접한 음력 0일 전후에 해야 한다. 3월 29일이면 꽤 좋은 조건의 날짜다.
메시에마라톤의 순위는 보통 초저녁과 새벽에 결정된다. 메시에목록을 졸업한 사람에게는 한밤중 메시에목록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새벽1시~3시 쯤에는 잠깐 잘 틈이 생긴다. 시야가 탁 트이고 구름이 없다면, 메시에목록의 천체들 중 가장 낮은 표면밝기를 보이는 M74, M33을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초저녁에 가장 밝은 서쪽 하늘에서 잡아낼 수 있느냐, 새벽 시시각각 밝아오는 동쪽하늘에서 M30을 찾을 수 있느냐에 의해 순위가 결정된다. 구경이 큰 망원경이 유리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위치로 찾아갈 수 있을 때의 얘기다. 초저녁과 새벽 싸움은 사전 준비와 당일 컨디션이 결정한다.
메시에마라톤은 밤새 망원경을 붙들고 씨름하는 일이다. 추운 날씨에 한쪽 눈만 계속 쓰니 한쪽 눈에만 눈물이 줄줄 흐른다. 자정쯤 되면 허리도 아파온다. 새벽에는 이슬이 떨어지면서 기록지에 기록하는게 어려워진다. 마라톤이 있는 주는 체력관리도 미리 해 두어야 한다.
올 해는 전날 미리 가서 연습할 시간은 어려울 것 같지만, 오랜만에 한 번 뛴다는 생각으로 예전에 쓰던 성도를 다시 꺼내 두었다. 한 번은 밤에 꺼내서 망원경 광축을 확인해 두어야겠다. 다음 주는 어둠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한 주 내내 썬글라스를 쓰고 지낼 계획이다. 어지간한 천체의 관측은 예전에 좋은 조건에서 보았던 모습들이 사진처럼 기억으로 남아 새로운 관측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았는데, 간만에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