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천문박물관 국제 심포지엄 초청발표 #1
지난 2024년 11월, 우연한 기회로 상하이천문박물관 국제 심포지엄에 초청받아 다녀왔다. 주제는 "The Future of Astronomy Museum & Planetarium"이었다. 현지 비용은 모두 상하이천문박물관에서 부담하였고, 왕복 항공권은 방문자가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마침 막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어 해외 방문이 자유로운 시점이었고, 연내 소진해야 하는 마일리지가 있어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상하이천문박물관을 방문한 소감은 지난 두 개의 글에 짧게 정리한 바 있다.
2편: 상하이천문박물관 관람 후기
중국 각지에서 온 과학관 관계자들이 많았으나 대부분 영어가 원활하지 않았다. 심포지엄은 중국 사람들의 발표는 중국어로 진행하고 영어 통역이 제공되었으며, 영어 발표는 중국어 통역이 제공되었다. 중국 외 미국, 일본, 태국, 싱가폴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나 혼자였다.
일을 쉬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기관을 대표해 참석할 수는 없었으나, 우리나라의 천문대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발표 초록을 보냈고, 초청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 보냈던 초록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첫째, 지난 약 25년간 대한민국 내 비연구용(대중의 천체관측을 위해 설립된) 천문대의 숫적(양적) 팽창과 성과, 둘째, 천체관측 및 천체투영관의 기술적 변화 양상과 대한민국 현황에 따른 천문대의 미래 역할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글에서는 천문대 얘기를 먼저 서술해 보고자 한다.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약 25년간 우리나라 천문대의 흥망을 관심있게 지켜본 입장에서 정리하였다. 초청발표에서 언급했던 내용에 살을 좀 더 붙였다.
1. 연구용 아닌 대중을 위한 천문대의 설립과 확장
20세기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천체관측을 경험하기 매우 어려웠다. 소형 사립천문대가 수도권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몇 군데 있는 정도였다. 일반 시민들은 양평, 가평, 안성, 여주 등지에 있는 사립천문대에서 작은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교육청에 관련 시설이 있으면 사용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아마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교육청이나 학교에는 천체망원경이 다수 있으나, 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인원이 부족하고 순환보직으로 전문성을 기르기도 쉽기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일부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소수 활동중인데, 이는 천체관측의 경험적 진입장벽에 그 원인이 있다.
21세기가 되자 대전, 영월, 김해 시민천문대가 개관했다. 당시 아마추어 천문가들에게도이 세 곳의 시민천문대에 대한 기대는 상당했다. 수도권 시민들이 방문하기에는 여전히 다소 거리가 있었으나, 세 곳의 시민천문대는 가뭄의 단비처럼 시민들에게 천체관측의 길을 열어주었다.
당시 나에게도 이 세 군대 시민천문개의 개관은 꽤 고무적인 일이었다. 당시 학부생이었던 나는 교수님들께 시민천문대의 향후 긍정적인 전망(천문대의 증가)을 언급하고, 천문학과의 새로운 취업 루트로 예상한다는 생각을 전한 적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다른 대학교였는데, 대중천문학 전공 석사과정을 신설했다.
이후 시민천문대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양적 팽창을 시작했다. 현재는 어림잡아 40~50개의 시민천문대가 전국에 있다. 그 외에도 5개 국립과학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 어린이과학관에도 천체관측 시설이 있다. 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구성한 사립 천문대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늘었다. 그 외 기상/농업 관련 공공기관 소속 천문대, 중고등학교 천문대, 교육청 소속 천문대, 도서관 등을 합치면 100군데에 육박할 것이다. 단순히 천체관측 시설만 있는 것도 대중을 위한 천문대로 인정할 것이냐, 혹은 전문가가 상주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는 것으로 기준을 삼을 것이냐에 따라 수는 달라진다. 정확한 통계가 없고 각 천문대의 프로그램이나 성과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는 않고 있는데, 제대로 조사하려면 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해서 혼자서는 조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시민천문대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부지가 넓지 않고 건물도 크지 않아서,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모든 시민천문대가 천체관측 중심으로 건립되어, 천체관측 시설과 천체투영관을 넣고나니 전시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5개 국립과학관에서도 천체관측 시설과 천체투영관은 훌륭하게 갖추어 놓았으나, 과학관 전시관에 있는 전시 외 천문학 관련 전시는 따로 하고 있지 않다. 전국에 천체관측을 위한 시설이 100군데 육박하는데 비해, 천문학 관련 대표 전시관은 우리나라에 사실상 없는 것이다.
2. 행사 중심 천문 대중화의 성과와 한계
시민천문대의 양적 팽창의 정점으로 "2009년 세계 천문의 해"를 언급해야겠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망원경을 사용한 관측 400년을 기념한 해로 UN이 지정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천체관측 행사가 열렸다. 국립과천과학관이 개관 1년만인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꽤 중요한 시점이었다. 전국의 천문 관련 기관, 협회들이 모두 힘을 합쳐 온갖 행사를 진행했다. 분명 숫자로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그 이후 지금까지도 시민천문대는 늘어나고 있다.
2009년 세계천문의 해 이후, 나는 천문대에서 오랜 기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껴 온 아쉬움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천체관측 경험을 제공하면서, 달, 목성, 토성을 망원경으로 보았을 때 드는 신비감으로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것을 봤다. 그러면 그 다음은 무엇이 있을까? 행사에 참여해서 망원경에 눈을 한 번 대 본 사람들이 그 다음을 원한다면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운영을 하는 천문대는 당시에는 없었다. 2025년인 지금도 예외적인 곳 한두군데를 제외하고는 별반 다르지 않다.
천문학은 우주를 망원경으로 관찰한 새로운 발견을 통해 과학과 인류의 성장을 이끌어온 학문이다. 달, 목성, 토성의 관측은 시민들의 호응도 매우 좋다. 그러나 그 다음단계의 프로그램을 천체관측에서 측면에서 제공하자면,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망원경과 씨름해야 하며, 천체의 운동을 이해해서 관측계획을 수립하는데까지 성공하면 날씨의 운에 성패가 나뉘는 고된 과정을 거친다. 이 모든 과정을 경험자의 인도 없이 혼자서는 지나갈 수 없다. 내가 경험한 천문학은 연구자의 관측도 경험에 상당히 의존하지만, 취미용 관측 뿐 아니라 단순히 망원경에 눈 한 번 대 보는 관측도 경험 의존도가 높다.
분명 천체관측 행사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행사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참여한다. 행사 중심 프로그램은 장점과 한계 모두 뚜렷하다. 그러나 행사 이후 제공할 수 있는 후속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경험적 진입장벽을 녹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관심을 지속하고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는데, 세밀한 기획이 필요한 분야이다. 국제천문연맹에서도 2009년 이후 천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Office of Astronomy Education을 설립하여 활동 중이다.
3. 천체관측 시작의 어려움
그런데 그 행사조차도 과연 만족할만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작은 망원경으로 볼만한 천체의 수는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수준이다. 태양, 달, 목성, 토성, 화성이 끝이다. 물론 이 천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단, 해당 천체를 볼 수 있고, 그 천체의 특징적인 모습이 보이는 때이고, 날씨가 좋고, 망원경의 컨디션이 제대로 관리되었다는 조건을 만족한다면.
태양은 흑점이 거의 없을 때가 있으며, 달을 초저녁에 볼 수 있는 토요일은 한 달에 하루이고, 목성의 대적점은 반대편에 있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을 뿐 아니라 점점 작아지고 있으며, 토성의 고리는 2025년 현재 거의 보이지 않는 시기에 접근하고 있고, 화성은 2년에 한 번 돌아오는 1~2개월 정도 아주 잠깐 기간동안 볼만하다.
예를 들어 목성을 관측한다면, 대적점을 관측할 수 있는 경우에도, 심지어 나는 눈을 대자마자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좋은 관측조건에서도 대부분 사람들이 대적점을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 사진과 달리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목성 표면에 보이는 두 개의 줄무늬 중 하나가 움푹 패인 듯이 얇아지는 지점을 자세히 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데,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옆에서 설명을 한다고 해도 천체망원경으로 목성을 처음 보는 사람은 평균 1분 정도를 관측해야 비로소 알아본다. 그러나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1분을 계속 보지 못하고, 못 봐도 괜찮다며 그냥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때 천체관측의 경험적 장벽을 낮춰보고자 천체망원경 교육과정을 만들어서 운영해본 적이 있다. 일정 기준을 만족하면 망원경을 외부로 대여해 주는 방식이었다. 망원경 대여비용은 구입비용의 1% 수준이었고, 대여기간도 3~4일로 꽤 긴 편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철저히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체관측 기술을 몸에 익히기 위해 과학관을 반복해서 방문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망원경을 거의 끼고 살다시피 했던 내가 미처 몰랐기에 겪은 것이다.
지금 하늘에 떠 있을 천체를 망원경을 통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이만큼 어렵다.
4. 천체관측 관련 기술의 발전
코로나19 유행 이후, 주로 국립과학관 천문대를 중심으로 천체관측의 온라인화를 시도했다. 전국이 온라인화 되는 시기였기에 결과 역시 성공적이었다. 월식, 행성, 달 등 작은 망원경으로 시도하는 관측은 여러모로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고, 소속 과학관의 유튜브 프로그램의 시청자 수에서 상위권을 휩쓸었다.
월면, 행성의 관측화면 중계는 고속카메라의 발전 덕분에 상당히 개선되었다. CMOS Chip의 감도와 해상도, FPS(Frame Per Second)가 개선되면서, 인간의 눈이 구분해 볼 수 있는 약 500Hz 빠르기의 변화도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Chip 성능의 발전 양상이 뚜렷하기 때문에, 이 개선은 앞으로 더 진행될 예정이다. 인터넷으로 중계하는 플랫폼의 화면 주파수가 높지 않기 때문에(유튜브의 경우 60Hz) 발생하는 Frame 손실에 아쉬움이 있지만, 향후 네트워크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것도 점차 나아지리라 본다.
온라인 관측의 장점은 명확하다. 첫째, 야간에 천문대를 방문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지금 하늘에 떠 있는 달, 목성, 토성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둘째, 애써 시간을 내 방문했는데 날씨 때문에 관측에 실패하거나 예약을 취소할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날씨가 안 좋으면 천체관측을 대신해 시청할 컨텐츠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셋째, 눈으로 쉽게 확인하지 못하던 모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목성의 대적점, 토성 고리의 간극, 화성의 극관 등).
물론 단점도 있다. 여러 천체관측가들과의 개인적인 대화에서, 그들은 천체망원경으로 직접 관찰했을 때 느끼는 감동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랜 시간 눈바닥에서 뒹굴며 온갖 천체를 망원경으로 찾아본 입장에서 전적으로 공감한다. 별빛이 망원경을 거쳐 내 눈에 직접 들어오는 것과 디지털기기를 통해 촬영된 것을 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어두운 곳에서 누워 감상하는 은하수, 또렷하게 초점이 떨어지는 대구경 망원경으로 본 구상성단의 수많은 별들, 망원경 속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은하들이 마구 지나가는 처녀자리 은하단, 철저하게 관리한 망원경으로 안정된 대기 조건에서 보는 토성의 고리와 카시니간극과 엔케미니마, 휘몰아치는 듯한 목성의 세부 모습과 수시로 나타나는 목성 위성의 변화, 한 시간에 천 개 이상 떨어지는 사자자리 유성우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그림처럼 남아있다.
그러나 그런 감동을 얻기 위해 들여야 되는 노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실익이 없다. 이제 외부에서 온갖 추위와 싸워가며 별을 보기에는 예전보다 빛 공해도 심하고, 한 번의 최고의 관측을 경험하기 위해 열번, 스무번 관측을 시도하는 열정을, 겨우 별을 한 번 보러 호기심에 찾아온 사람에게 요구할 수 없다.
결국 나는 안방에서 편하게 누워 볼 수 있는 관측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하다고 보고 있다. 인류가 점점 온라인의 가상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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