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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림 Sep 15. 2024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_들어가며

아는 사람은 다 알 테지만, 나는 생각이 많다. 생각이 많고 잦고, 깊고, 길고. 

아마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깨어있는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에 생각을 이어 붙여가며 사는 것 같다. 


새벽 여섯 시 반, 눈을 뜨자마자 그날 계획부터 점검한다. 

아침 끼니는 뭘 먹지? 커피는 캡슐? 시간이 좀 넉넉하네. 그럼 오랜만에 드립으로.

오늘 저녁 날씨를 좀 보자. 꽤 선선하네. 그럼 오늘은 공원에서 러닝을 좀 해야겠어.

보자 보자, 오늘 읽을 책은….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오른 검지를 괜히 몇 번 까딱인다.)

그래, 이 책이 좋을 것 같아출근하자마자 할 일은 이렇고, 오후에는 여기 꼭 전화해야 하고.

맞다, 공문 보낼 일이 있지. 잊지 말자, 공문, 공문.


보다시피 나는 이 '계획'이란 녀석에게 매우 집착하는 사람이다.

모름지기 계획이란 매우 꼼꼼히, 그리고 빽빽하게 구성해야 한다.

시간을 짜임새 있게 쓰고 싶다. 그래서 빈 틈을 보면 견딜 수가 없다. 

출퇴근 시간, 사람 많은 지하철 7호선에 끼어 타면서도 그 이삼 십분 동안 알뜰히 책을 읽는다.

매 끼니때마다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고, 읽다 만 글을 마저 읽으면서 간단히 식사한다. 

아주 가끔, 주로 금요일 저녁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쓰던 글을 찬찬히 읽고 거친 부분을 다듬어 다시 쓰며 

한주의 마무리, 마지막 끼니를 먹을 때도 있다. 밥만 먹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쉽고 아깝다.

주말 아침 늦잠 자고 일어나면 괜히 죄책감이 든다. 

이 귀한 시간을 자는 데에 허비했네, 싶다. 이런 마음이 들 때면 이렇게 위로한다. 

'허비'라고 하지 말자. 주말에나 자지. 언제 자,라고.

그럼에도 주말 늦잠 또는 낮잠이 아직은 아주 편안하진 않다.


반면 이와 반대되는 종류의 생각도 있다. 

거친, 즉흥적인, 온갖 데에 널브러진, 정리되어 있지 않고,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그리고 끝이 나지 않는 생각. 별칭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별별 생각'이다. 

한 가지 주제에 꽂히기라도 정말, 몇 날며칠, 아니 몇 년을 같은 주제를 놓고 계속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일과 업(業)에 대한 생각, '그분은 어떻게 도와야 할까?' '내년 사업은 이렇게 구성하고…' 

'예산을 이렇게 나눠 쓰면… 아, 퇴근하면 일 생각 안 하기로 했는데 또 하고 있네, 그만하자, 그만.' 

하고 싶고, 되고 싶은 모습. 쉽게 말해 가슴 한편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크고 작은 '꿈'에 대한 생각,

'마흔 살 즈음에는 그 일을 꼭 하고 싶어. 근데…. 돈이 있어야 하네, 돈이….' 

쓰고 싶은 글과 아직 끝을 맺지 못한 또 다른 글에 대한 생각, 

(목록을 열어 살펴보고) '흠….' (목록을 눌러 닫음.) '어떡하지…. 나는 왜 이렇게 글을 못 쓸까.'

또 '오늘 그 사람은 무슨 의도로서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옛날옛날, 그 인간은 지금 잘 살고 있나? 

언젠가 복수하고 말 거야.' 같은 생각, 이렇게 나열하고 있으려니 정말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물론 이 놈에 생각 덕을 본 적도 꽤 많다. 

무슨 일을 하든 시작에 앞서 오래 고민궁리하고, 여러 변수에 따른 대응 방법을 어느 정도 마련하고,

신중하고 침착하게 준비하다 보니 '아주' 틀리거나 망하거나, 크게 잘못된 적은 없던 것 같다.

다만, 준비 시간, 예열 시간이 너무 긴 탓에 그간 느린, 더딘, 답답하다, 

통성 없다, 같은 말을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이십 년 넘게 듣고 산다.

뭐, 이에 대해서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므로, 그냥 '그렇구나, 근데 나는 바꿀 마음이 없어.' 하고 만다.

너나 잘해, 너나.




그럼에도 이 많고 많은 생각에는 공통분모라는 게 있다. 

나열하고 착착 정리정렬하면 꽤나 명확하게 드러나는 공통분모, 다름 아닌 바로 '나', 나 '자신'이다.

나는 나란 인간에 대해 주로 생각한다. 

일과 업(業), 크고 작은 꿈, 써야 하는 글과 쓰고 싶은 글, 여러 사람의 말과 그에 담긴 저의 등등,

결국 중심에는 '나'란 사람이 있다.

주체이며 객체로서 나는 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대체로' 사랑했고, 세상 누구보다 증오했던,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나에 대해, 

좋은 나, 싫은 나에 대해, 

알고 있던 나와 아주 새로운 나에 대해, 

나는 여전히 궁금한 게 많고 그래서 더 알아가고 싶다. 


위에 쓴 바와 같이 나는 '대체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런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싫은 나, 미운 나, 꼴도 보고 싶지 않은 나, 못난 나에 대해서도 꽤나 깊이 생각한다.

한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던 적이 있다. 

먼저 운동 전후 꼭 죄는 스포츠 브라에 몸을 욱여넣는 모습이나

침대 밑 먼지를 닦아내기 위해 큰 몸을 고양이처럼 굴곡지게 만들어 그 아래를 쓸어내는 모습,

몸을 그렇게 '관리'하면서도 아주 가끔은 생각 없이 술 한 잔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술에 취해 눈은 반쯤 감겨있고 볼 주변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는 모습 따위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고, 나도 딱히 보고 싶지 않다. 

앞 두 예시는 '우습다'라면 마지막 술 취한 얼굴은 '한심하다'에 가깝기 때문에, 

그래서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위와 같은 설명은 듣는 사람도, 말을 하는 나도 그냥 웃고 마는 농담이고 우스개였다.

정말 밉고 싫은 나, 외면하고 경멸했고 저주했던 나에 대해서는 결코 입 밖으로 내는 법이 없었으며

이렇게 열린 공간에 글을 써서 굳이 알릴 일은 더더욱,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좋은 나로서만 기억되고 싶었기에, 밝고 맑은 면만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 아래 감춰져 있는 깊은 어둠과 두텁게 침전되어 있는 '좋지 않은 나'를 내어 보이는 게 심히 겁이 났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온전히 알아가고 싶다.

아니, 그렇게 함이 옳단 생각을 한다.

나는 지난 삼십사 년간,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삶을 결국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며

나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거부, 거절하고 아, 몰라, 하고 있기보단 더욱 적극적인 나섬과 나댐(?)으로

그 깊고 깊은 나란 사람의 심연을 찾아 내려가는 편이 합당하다 생각한다. 




다행히 나는 서른 살을 기점으로 밉고 싫고 썩 좋지 않은 나와 자주 만나 오래 머물다 온다. 

가끔은 투닥거릴 때도 있지만 대게는 상호 합의 하에 악수하고 각자 자기 갈 길 간다.

나이 들어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지점이다.

몸과 마음의 '힘'이 조금 수그러들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선택, 집중하고 

다른 한쪽은 포기하고 내려놓고 적당히 타협한다. 쉽게 말해 '기력'이 없다. 

기력이 있어야 뭘 하든 말든 할 텐데, 그럴 만한 힘이 없다. 

여하튼, 그리고 나는 이때 아주 다행히 다른 사람 아닌 '나'를 선택했고 다른 데가 아닌 '나'에 집중하며, 

그 외 나머지는 적당히 대충 넘어가고 있다. 

이전 같았으면 진작에 난리 쳤을 텐데, 온갖 데에 다 신경 쓰고 예민하게 굴며

특히 나에 대해서는 더욱 심한 잣대를 들이밀었을 텐데.


뭐, 물론, 가끔 한 번씩 이전 버릇대로 할 때가 있긴 하다.

너는 안 돼(절레절레), 뭐 하고 있냐, 으휴, 이 한심한 인간아,라는 말을,

다른 사람에겐 절대 하지 못할 말을, 세상 하나밖에 없는 나, 귀한 나, 

함께 살고 함께 죽을 나란 존재에게 쏟아붓고 마는 아주 못된 버릇이다.

그렇게 한바탕 하고 나면 잠시잠깐 휴정하고 난 뒤 다시 마음을 바로 한다.

온갖 험한 말로 비난저주하며 미워했음에도, 나는 나를 '사랑한다'라고.


특별한 이유는 없다. 

처음부터 사랑했고 잠시잠깐 미워했고, 그래서 처음 그 마음으로 다시 나를 사랑하는 게, 이유의 전부이다.

더 사랑하고 미워하며 계속해서 사랑하기 위해 나는, 

사랑하고 미워했던, 그리고 사랑하는 나에 대해 길고 짧은 글을 써 내려가려 한다.




글을 마무리 지으려다 문득,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다시 컴퓨터 창을 열고 몇 자 더 적어본다.

다른 사람 말고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또 듣고 싶은 말이 있다.

조금 뜬금없는 소리, 엉뚱한 소리, 그간 나를 향해서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런 류의 문장, 

그렇지만 꼭 해주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을 이렇게 쓴다.

(참고로 맨 정신입니다. 새벽도 아니에요. 매우 온전한 정신으로, 감성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저기… 안녕?

지난 삼십사 년 간 함께 살아주어 고맙다. 우리 남은 삶도 잘 살아보자.

그간 나로 사는 게 쉽진 않았지만, 매번 좋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대체로' 좋았어.

앞으로도 우리 지지고 볶고, 좌충우돌, 우당탕탕, 난리난리 치며 '대체로' 좋은 삶을 만들어보자.

곧 다시 올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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