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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_글쓰기

by 최우림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쓴다.

아침 출근해서 삼십 분, 점심 먹고 삼십 분, 이렇게 하면 주중에는 매일 한 시간씩은 시간을 낼 수 있다.

주말에는 새 글을 쓰기보단 주중에 쓴 글을 수정, 보완한다. 주로 토요일 아침, 일요일 새벽이다.

시간으로 치면 주말 이틀 중 한두 시간 정도는 글 쓰는 데에 투자하고 있다.

그렇게 한 주 동안 쓰고 고친 글을 일요일 정오즈음하여 발행한다.

다만, 쓰는 양에 비해 질은 매우 형편없고 허름하여

이와 같은 주제의 글을 써도 되나, 여러 의미에서 '주제 파악'을 좀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언제부터 글을 좀 썼나, 되짚어 봤다.

음, 아마도 초등학교 삼 학년 때다.

열 살, 누가 보면 '무슨 영재 났냐?' 할 수도 있겠으나 진짜 열 살이 맞다.

앞선 몇 편의 글에 쓴 바와 같이 나는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운동을 했다.

그 어떤 과업보다 중요한 게 운동이었으며,

다른 일은 다 내팽개쳐도 운동만큼은 꼼꼼히 예습, 복습하는, 운동에 반쯤 미쳐있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일이 학년 때만 해도 학교 성적은 중하위권이었다.

당장 내일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 해도 교과서 따위 책상 서랍에 고이 넣고 털레털레 집에 왔다.

집에 딱히 말하지도 않았다. 다음 날 빨간 줄이 잔뜩 있는 받아쓰기 공책을 들이밀면 그만이다.

국어, 받아쓰기 시험은 그래도 한글을 읽고 쓰는 데는 무리가 없었기에 아주 엉망진창은 아니었다.

정말 문제는 수학, 과학이다. 수학은 구구단, 과학은 시계 보기.

구구단은 육 단부터 포기했다. 오 단은 오, 십 단위로 딱딱 끊어지니 아주 재밌게 외웠는데

그다음부턴 이상하리 만치 입에 붙질 않았다.

시계 보기, 하…. 역시 난관이다.

시침, 분침 위치를 보고 시각을 쓰는 건 곧잘 했다.

문제는 그 반대였다, 시각을 보고 시침, 분침의 위치를 그려 넣는 시험에는

거의 전멸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시험지에 비가 우수수 내렸다.

정각이 아닌 이상 분침이 돌아감에 따라 시침도 천천히 움직이지 않나.

나는 그걸 몰라 분침 위치는 잘 그려놓고 시침은 정확한 숫자 위에 딱 올려놓았으니,

뭐 부분 점수랄 것도 없는 오답이지, 뭐.

예를 들어, 일곱 시 반이다, 하면 시침이 칠과 팔 사이에 가야 하는데 나는 이를 거부(?)하고

시침을 칠 위에 딱 갖다 그려놨다. 고집이라 해야 하나.

어릴 때부터 어중간하고 어정쩡한 걸 싫어했나 보다.


쪽지 시험이든, 단원 평가를 보든, 아무튼 성적은 절레절레였다.

심지어 초등학교 이 학년 담임 선생님은 수학 교과서에 빨간 글자로

'지도요함'이라 써서 집에 돌려보낸 적도 있었다.

어린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했으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연달아 쉬다, 이게 다 누구 머리를 닮았기 때문이라 했고….

아버지, 어머니 중 어느 한 분은 "뭐…, 그…. 구구단 못 욀 수도 있지…!"라고 했고

어느 한 분은 빈 종이에 구구단 육 단을 줄줄이 쓴 다음 그 원리를 가르치려 시도하였으나,

다시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는…. 아무튼 엉망진창, 난장판이었다.

지금은 구구단 구 단까지 잘 외웁니다. 시계도 잘 봐요.

어린이 여러분, 괜찮아요. 구구단 못 외우고, 시계 못 봐도 이렇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 년은 (나만) 즐겁게 학교생활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삼 학년, 나는 그때 만난 담임 선생님 이름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분은 나를 칭찬했다. 글을 참 잘 쓰는구나,라고.

이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첫 칭찬이라 해도 무방했다.

일기, 독후감상문을 내면 그 밑에 일일이 밑줄 긋고 칭찬의 글을 적어주던 분,

때론 그 글을 소리 내어 읽고 공개적인 칭찬을 해주었던 분.

그분 덕에 나는 아, 나도 잘하는 게 하나 있었구나, 하는 마음 갖게 되었으며

이때를 기점으로 더 열심히 일기 쓰고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썼다.


부모 아닌 다른 어른으로부터 이렇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경험은,

주변 여러 친구에게 응원, 격려, 가끔은 시샘(?) 받는 이와 같은 경험은,

다른 일을 해나감에 있어 아주 큰 자양분이 됐다.

또한 공부에는 관심 없고, 놀고먹고 나가 놀기 좋아하는, 건강하고 힘만 좋은 아이였던 나는,

그 일을 계기로 글도 꽤나 잘 쓰는 아이라는 새 이미지를 갖게 됐다.

그리고 글을 잘 쓴다,라는 이미지는 뭔가 '공부 잘함'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갑자기 공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 같은 걸 받기 시작했고,

모두의 기대와 바람에 충족하기 위해 교과서를 가까이하게 되는 계기로서 작용하기도 했다.

일단 시험을 본다 하면 교과서는 집에 가지고 갔다.

가지고 가서 아주 가끔은 배운 내용을 들여다보기도 했고, 숙제를 했고,

그 와중에 일기는 꼬박꼬박 썼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교내외 소설, 수필, 논술 대회에서 꽤 많은 상을 받아왔고,

고등학교 삼 학년 때는 '논술 특별반'에 들어 입시 준비를 하기도 했다.

물론 대학은 정시로 갔다. 다 낙방했다.

기억하기로는 서너 군데 논술 시험을 봤는데, 일말의 여지도 없이 모두 탈락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란 사람이 잘 쓰는 글과 학교에서 요구하는 글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나는 논리적인 글, 분석적인 글은 잘 못 쓴다.

심지어 어떤 학교는 영어 논술을 봤는데 쓰고 나와서도 뭘 물어봤나, 그래서 뭘 어떻게 썼나,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어 영 꺼림칙했던 경험도 있다.

그 와중에 살짝 기대를 걸어보았으나, 될 리가 없지.


대학 시절에는 전에 글을 좀 썼던 가닥이 있어 학교 과제하는 데에 덕을 많이 봤다.

책, 영화 감상, 논문 읽고 정리, 또는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찬반 논의 등,

결국 글을 써서 내야 하는 과제가 많았기 때문인데 다른 사람 며칠 걸릴 일도

나는 몇 시간 붙잡고 쓰면 됐다. 물론 자료조사를 열심히 했다. 자료 읽고 나름은 오래 고민한다.

처음-중간-마무리 구상을 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는데,

골자가 나오고 나면 이를 글로 써서 정리하는 데는 막힘 없이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 사 년을 공부하고 조금 방황(?)하다,

경기도에 있는 한 장애인복지관에서 첫 경력을 시작한다.

이때 '방황'이라 쓴 이유는, 생각만큼 취업이 쉽지 않아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현장에 나와서도 계속해서 글을 썼다.

그리고 그때에도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써야 할 글을 썼다.

주로 행정서류였다. 참고로 하는 말이만 우리 쪽 일은 서류가 정말 많다.

업무 일지부터 상담 일지, 각종 실시, 결과기안과 지출 서류, 외부 기관의 협조, 연계, 조정이 필요할 때면

공문과 붙임 서류를 꼼꼼히 작성하여 보내야 한다.

처음에는 그 '행정'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꽤나 헤맸지만

그래도 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설, 수필, 논술 등등 '글' 관련 상은 죄다 쓸어 담았고(?)

(대학 논술은 다 떨어졌지만) 대학 사 년 내내 양질의 연구 보고서 따위를 써냈으며,

연애편지는 연습 없이 한 번에, 그 와중에 기승전결 완벽하며

중간중간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류의 글도 곧잘 쓰는 사람 아니었나.

약간의 시행착오와 피 나는 노력 끝에, 입사 서너 달 만에 서류 쓰는 데는 도가 텄다.


그렇게 약간의 자만심에 취해있을 무렵, 때는 스물다섯 살 이년 차 사회복지사 시절이다.

지금의 스승을 만난 것도 그때이다.

(나의 은인이다. 이분을 닮고 싶다. 우리 현장에 이와 같은 어른이 있음에 참 고맙다.)

아무튼, 스승을 통해 나는 처음 사회사업 과정 기록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는 행정 서류와는 전혀 달랐다.

사회사업가로서, 현장에서 당사자를 만나가는 과정에 대한 글,

당사자의 크고 작은 변화, 크고 작은 성취, 크고 작은 기쁨에 대해 세세히 밝혀 적는 글이었고,

당사자를 돕는 사회사업가의 시선, 생각, 고민에 대해 쓰는 성찰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변화, 성취, 기쁨만 적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가운데 겪는 여러 고생과 어려움, 실패와 좌절, 슬픔과 상실에 대해서도 썼다.

그렇게 쓰고 다듬는 과정에서 사회사업가 나는,

자꾸 솟아나는 가시 같은 마음을 꾹 눌러 뭉뚝하게 만들 수 있었으며

사랑으로, 관심으로, 희망과 소망으로 당사자를 살펴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현장에서 사회사업가로 살며 글을 쓴 게, 내년이면 십 년이다.

그간 두 권의 책을 냈고, 서너 권의 책은 공동 저자로서 참여했다.

이 역시 스승의 도움이다. 처음 글을 쓰자, 권유했던 분이었고 여러 동료, 선후배와 함께 쓰며

공부하는 복을 누리게 해 주었으며, 그 글을 모아 책 한 권으로 묶어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그분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와 같은 글이 너무 어렵다.

십 년 즈음하면 도가 터도 진작 텄어야 하는데, 아니,

'도'까진 아니더라도 조금은 익숙하게 술술 써내려 갈 수준은 되어야 하는데,

실력은 늘 생각을 하질 않는다.


사람이라 그렇다.

우리 하는 일이 '사람'을 향한 일이라서, 그 '사람'에 대한 글이라서,

그 일을 나 역시 '사람'이라 그렇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쉽게 쓸 수 없고, 또 쉽게 써선 안 된다 생각한다.

차라리 어려운 게 낫지, 한 사람과 그 사람을 돕는 나에 대해 큰 고민, 걱정하지 않고 쓰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 이상한 게 아니다. 그렇게 쓰면 큰일 난다.

글에 등장하는 그 사람도 중요하고, 그 사람을 돕도 나도 존귀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두렵단 마음이 든다.

나름대로 고민, 걱정, 염려하며 쓴 글임에도, 수십수백 번 새로 쓰고 다시 쓰고 싹 다 갈아엎고 쓴 글임에도,

어느 한구석에 남아있을 차별, 편견, 배제, 혐오가 두렵고

한 사람을 납작평평단순하게 정의하여 그가 가진 다양성과 역동성을

깡그리 밟아 뭉개는 표현이 아직 남아있을 게 두렵다.

나의 좁고 얕음 때문이다. 겁이 나고 부담된다.


그럼 안 쓰면 되지 않냐?라고 할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다.

그래서 안 쓰고 있다.(응?)

몇 달 전부터 나는 사회복지 현장에 대한 글보다는 '나'란 사람에 대해 쓰고 있다.

부담 없이, 겁 내지 않고.

삼 년 전, 블로그를 열어 그곳에 아주 사사로운 글을 쓰고 있긴 한데, '사사'이지 '서사'는 없다.

'서사'라고 써놓고 보니, 좀 거창하긴 하네.

여하튼, 나는 지금 몇 달째 나란 사람의 '서사'를 매주 한 편씩 쓰고 있다.

사랑하고 미워했고, 그럼에도 사랑하는 나에 대해 쓴다.





이와 같은 주제를 고르게 된 데에는 삼 년 전부터 함께하고 있는 한 모임 덕이 크다.

같은 일을 하는 열 사람이 알음알음 모여, 함께 글을 쓰고 쓴 글을 나눠 읽고,

때가 되면 글을 모아 묶어낸다. 그렇다고 글만 쓰는 건 또 아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놀고 함께 먹고, 어디 좋은 데도 가고.

다 큰 어른 아홉열 사람이 그렇게 삼 년을 살고 있다.


우리 모임의 모토가 바로 '자기돌봄'과 '서로돌봄'이다.

모임에서 우리 열 사람은 사회복지 현장에서 다른 사람의 복지를 위해 애를 쓰는 그 마음을

자기 자신을 위해, 서로를 위해 쓰자,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자기돌봄', 그리고 '서로돌봄'


그간 나는 나란 사람 뒤에 '돌봄'이란 말을 붙여 써본 적이 없다.

돌봄의 방향은 바깥에서 나를 향해, 또는 나로부터 바깥을 향해 있었으며 그밖에는 다른 게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돌봄'은 시작과 끝이 같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에게서 끝이 난다.

처음에는 영 이상했다. 나를 돌봐? 누가? 스스로? 서로?

'돌봄'이란 말을 쓰기에는 나는 너무 젊고 건강하고, 나름대로 자기 밥 벌이 하며 잘 사는데?

하지만 잠시 멈춰 생각하니, 아주 그렇지 만도 않았다.

돌봄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나이는 적은데 마음은 나이 든 사람이 있고 반대로, 나이는 많은데 마음은 젊은 사람도 있다.

건강만큼이나 중요한 게 마음 건강, 관계 건강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 건강하다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업(業)을 갖고 돈을 벌고,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온갖 위험으로부터

우리는 스스로 지켜내야 하며, 만일 이미 사건, 사고로부터 상처 입고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면

당장 두 팔 걷고 뛰어들어 치료하고 치유해야 한다.


깨달음 끝에 나는 자기돌봄, 자기살핌에 진심인 사람이 됐다.

그간 나는 나를 꽤나 잘 안다,라고 생각했고 자존감 높은 사람이라 단정 지어왔다.

하지만 나는 나를 절반만큼도 알지 못했으며, 자존감은 '너는 더 잘해야만 해.' '부지런히 움직여.'

'쉴 틈이 어디 있어?'라며 몰아붙인 결과로써 만들어 낸 허상 같은 것이었다.

그럭저럭 잘 해냈기 때문에 성실, 근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쉼은 곧 '게으름'이라 생각하며

매일매일 빈틈없이, 쉴 새 없이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말 잘 듣는 아이에게 부여되는 '칭찬 스티커'처럼 나에게는 '자존감'이란 게 주어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형태의 자존감은 쉽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 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할 때,

때론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널브러져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고 있을 때,

그때마다 자존감은 산산조각 났다. 너는 안 돼, 정신이 이렇게 약해 가지고…. 와 같은 말과 함께.


삼십 년 넘게 나는 나를 지도했고, 점검했고 들들 볶아가며 살아왔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를 알게 된 게 삼십 대 초반이다.

그때부터 나는 나란 사람을 조금 더 둥글둥글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면을 찾고, 귀한 면을 찾고, 귀여운 면을(?) 찾아 자주 칭찬한다.

부족하고 엉성하고 때론 엉망진창일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그냥 '다 그렇지, 뭐.'

'이게 난데 뭐, 어떻게 하겠어.'라고 한다.

진짜 어떻게 하겠나, 이미 이렇게 된 걸, 뭐. 그냥 데리고 살아야지. 나를.


그 과정에서 쓴 게 바로 이 시리즈이다.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 나에 대한 글.

나에 대한 글을 이렇게 써본 적이 그간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쓰는 이 글은 참 재밌다. 부담도 적고, 겁날 일도 없다.

쓰다 보면 처음 계획 대로 시작-중간-끝이 나는 글이 있는 반면

경우에 따라서는 잉? 아니, 왜 이렇게 전개가 되는 거지? 싶은 글도 여럿 있다.

이럴 때는 또다시 '유레카'를 외치게 된다.

맞네, 이게 정말 나였구나! 이런 이유에서 그때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거야, 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쓴 글이 꽤 많이 모였다.

아마 몇 편의 글을 더 쓰고 나면 잠시 문을 닫고 쉴 생각이다.

글감을 모아 다시 이어갈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다른 글을 쓸 수도 있다.


사실, 잠시 쉬다 사회복지사로서의 글을 다시 쓰고 싶단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하, 곤란하네. 정말.

그 과정의 고됨을 이미 몇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당분간 안 씀, 못 씀을 선언했었는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지. 또 쓰고 싶네.

다만 이번에는 조금 쉽게 쓰려한다. 그간에는 우리 현장 사람을 주 독자라고 가정하여 무겁고 어렵게,

어떤 메시지 같은 걸 전달하기 위한 글을 썼던 반면,

다음 글은 우리 현장 사람이 아니어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쓸 생각이다.

물론, 생각만큼 필력이 따라가지 못할 것 같긴 한데, 시도는 해봐야지.




위에 쓴 바와 같이 나는 매일매일 글을 쓴다.

이렇게 굳이 시간을 내어, 덜 놀고 덜 자고, 덜 먹고 글을 쓰긴 쓴다마는

뭐, 돈이 된다거나 밥이 나오거나, 떡이 나오거나(?) 그렇진 않다.

그냥 쓴다. 그냥.

무엇이 되고 싶고 갖고 싶어 쓴다라기보단 하고 싶고, 알고 싶어 쓰는 게 맞다.

글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나를 더 알아가기 위한 수단, 남을 더 살펴보기 위한 수단,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한 수단, 나의 일을 더 잘해나가기 위한 수단.


글을 쓰며 나는 '다음'을 생각한다.

나에게는 작은 꿈이 있다. 지금처럼 읽고 쓰고 나누고, 때가 그 글을 묶어 내는 일을 하고 싶다.

특히 우리 현장의 동료, 선후배와 함께 그 과정을 만들어 가고 싶다.

함께 모여 글을 쓰고, 읽고 서로의 삶과 실천을 위로하고 응원하며

이 힘들고 벅찬 세상에서, 잠시잠깐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면서, 삶의 한 목표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작은 꿈이 아니구나.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 먼 미래, 너무 큰 꿈, 허상 같은 소리 같다마는 그럼에도 나는 매일 글을 쓴다.

이렇게 쓰고 쓰고 쓰다 보면 언젠가 그 꿈에 가닿아 있을 줄로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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