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우림 Nov 24. 2024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_바디 프로필과 갑상샘(3)

(1편, 2편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초저녁 밖에 되지 않았으나 나와 L은 이미 방전상태였다.

다음 날 입고 신을 옷과 운동화를 꺼내 정리했고, 다림질했고,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그 와중에 그래도 배가 고프긴 했던 지라 목이 막혀 컥컥 기침을 하면서도 

지금은 줘도 잘 안 먹을 고구마와 닭가슴살을 감탄에 감탄하며 먹었더랬다.

못 믿을 사람도 있겠으나, 그때 먹은 고구마는 꿀맛이었으며 닭가슴살은 아보카도 맛이 났다.

달고 고소했다. 


그렇게 한바탕 먹고 났음에도 여전히 초저녁, 일도, 힘도 없었기에 

빨리 씻고 자자, 했다.

그리고 나는 이때 처음으로 '단수'가 이렇게 무섭구나, 를 알게 됐다. 

해봐야 열 몇 시간 단수였음에도 나는 몹시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물이 쏟아져 나오는 수도꼭지에 몸을 적시면서 그곳에 입을 가져다 대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마셔? 사는 게 뭐 있냐, 한 모금 마신다 해서 큰일 나지 않잖아?

아니야,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야. 조금만 참자. 


입을 꾹 다물고 씻고 나니 바로 다음 관문이다. 

양치를 해야 한다. 이번에는 정말 쉽지 않다.

머리 감고 얼굴과 몸을 씻을 때는 입을 다물 수 있었는데 양치는 아니다.

결국에는 찬물을 입에 잔뜩 머금어야 하는데, 하… 참.

정신 똑똑히 차려야 한다. 자칫 놓는 순간 바로 꿀꺽이야, 정신 차려, 정신.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몸 씻는 데에 참 요란법석이네.


다행이라 해야 하나, 여하튼 나는 단 한 모금 꿀꺽하지 않고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 

물론, 안과 목젖과, 근처에 달려있는 모든 기관을 다 헹굴 기세를 하고서는

평소보다 몇 배 깊은 가글(?)을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결코 그 물을 꿀꺽하진 않았다. 


그날 밤은 참 길었다. 

긴긴밤을 목마름과 배고픔과 약간의 긴장과 설렘, 몇 시간만 있으면 이 통제적인 삶도 끝이 날 테니, 

그땐 먹고 싶던 달고 짜고 맵고 신 음식을 잔뜩 사서 먹을 거야, 같은 희망으로 얕은 잠을 잤다. 

L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L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서로의 손을 잡고,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이와 같은 감정을, 

이와 같은 마음을 소소히 나눴다. 마음만 나눴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매우 사랑했음에도 목마름과 배고픔이라는 원초적인 욕구가 해소되지 않으니 

다른 욕구(?), 아니 욕정(?)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정말 손만 잡고 가만히 누워있다 나중엔 손을 놓고 각자 자리에서 계속 뒤척이다 선잠을 잤다. 




일어나니 밖이 하얗다. 

밤새 눈이 왔다. L은 휴대전화를 만지작대더니, 

이내 자이언티의 '눈이 올까요?'라는 노래를 찾아 틀었다.

이문세의 곡을 리메이크했다,라는 설명과 함께 그는 조용히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새하얀 창밖을 바라보며, 자이언티와 L의 꽤나 잘 어울리는 듀엣을 감상했다. 

(매해 겨울이 되면 이 노래가 자주 들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L과의 시간을 자연히 떠올리게 된다.)


조금 일찍 짐을 정리해서 숙소를 나왔다. 눈이 오니 조금 서두르는 편이 낫다 싶었는데,

역시 길이 미끄러워 가는 중 몇 번이나 몸이 휘청댔다. 아닌가? 눈 때문이 아니라 몸 때문인가?

하여간, 나와 L은 무사히 스튜디오에 도착했고 옷을 갈아입고, 

머리손질과 메이크 업을 한 뒤 약간의 펌핑 후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몸은 준비가 되어 있는데, 얼굴은 아니었다. 어색하고, 어설프고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르겠고.

그래서 처음 몇 분은 꿔다 놓은 보리자루 같은 모양으로 덩그러니 서 있었으며, 

그렇게 있는 자신을 못 견뎌서는, 그냥 도망치고 싶단 생각마저 했다.

날씨가 추웠으니 망정이지, 여름이었으면 그냥 도망쳤다. 

다행히, L의 응원과 사진사의 지도(?)를 통해 조금씩 촬영 환경에 적응했고

몸을 살짝 틀고 얼굴, 특히 눈을 사선 아래에 두는 방식으로, 카메라와의 정면승부를 피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또 한 번 '팁'을 알려주고 싶다. 

바디 프로필 촬영 전, 몸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자세와 표정인데

이게 현장에서 바로 나올 수가 없다.

촬영 전 꼭, 반드시 자세와 표정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연습하고 가길 조언한다. 


여하간, 촬영은 다 합쳐 두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도착부터 준비, 정리하는 시간을 모두 합친 게 두 시간이다. 

이제 정말 끝났구나, 잘 견뎠다, 해냈어, 나와 L은 이날을 위해 그간 해온 노력을 격려했고,

별 탈 없이 도전을 마친 서로를 축하했다. 

우리 밥 먹으러 가요, 나와 L은 손을 잡고 눈 쌓인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나와 L은 진작부터 촬영 직후 먹을 메뉴를 골라놨더랬다. 

후보는 이렇다. 

나는 케이크 한 판을 먹을 거야, 아니면 피자 한 판.

햄버거! 맘스터치 햄버거가 그렇게 맛있데요. 치즈볼이랑 같이, 제로 콜라 말고 그냥 콜라 마실래요.

아니다, 얼마 전에 간짜장에 떡볶이 섞어 먹는 영상을 봤거든요? 

진짜 혈관이 비명 지르는 비주얼인데 먹어보고 싶어요.


정작 나와 L이 향한 곳은 베이커리, 피자, 햄버거 가게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중국집이나 엽기 떡볶이 매장도 아니었다. 

한정식집, 갖은 반찬에 솥밥이 나오는 그런 한정식집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밀이 아닌 쌀이 필요했다.

갓 지은 쌀밥에 두부와 애호박을 잔뜩 넣고 끓은 찌개 한 숟가락, 

쌀밥에 오징어젓갈, 달걀말이, 갖은 마른반찬, 이에 더해 생선 조림이나 

제육볶음 크게 한 젓가락을 얹어 한입 가득 우물우물 먹고 싶었다.

김, 조미 김도 좋고 생김도 좋다. 김이 있어야지, 이런 날엔.

마지막은 사이다, 제로 사이다 말고 진짜 사이다.

나와 L은 바라왔던 대로 돌솥에 나온 쌀밥 한 그릇을 꼼꼼히 먹고,

평소라면 절대 먹지 않을 그냥 사이다를 각각 시켜 시원하게 들이켰다. 

이로써 정말 끝이 난 것이었다.

지난 사 개월 여의 다이어트, 그리고 바디 프로필이라는 도전을 무탈하게 마무리했다. 




당시만 해도 '무탈'이라 생각했다.

지난 몇 개월간 덜 먹고, 무리하게 운동하여 계획보다 더 많은 지방을 걷어냈고, 

근육 양도 어느 정도 유지했으므로, 

그 결과로써 나는 선명하게 아름다운 복근과 광배근, 삼각근과 이삼두박근을 

한껏 자랑하고 있는, 그 잘난 사진 한 장을 손에 쥘 수 있었으므로.


이렇게 몸만 보면, 결과만 보면 매우 '무탈'했다.

하지만 앞서 잠깐 언급했던 대로, 몸 안쪽과 마음, 정신은 아주 무탈하다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촬영이 다 끝났음에도 나는 먹는 양을 크게 늘리지 않았다. 

마른 몸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참고 참고 참다, 가끔 한 번씩 식욕이 폭발하면 다음날은 말 그대로 '죽음'이다.

극단적인 절식과 극단적인 운동으로 전날 먹은 군것질과 그로 인한 잉여 칼로리를 

모두 태워 없애야만 했다. 강박이다. 

몸에 대한 강박, 살 가죽은 얇아야 하고 근육은 크고 근형 잡혀야 하며, 그래서 볼록하고 선명하게

온몸의 근육이 잘 드러나야 하는, 그런 몸을 유지해야 하는 그런 강박.

'선수도 아닌데, 도대체 왜…'라는 마음이 들면서도, '너, 이렇게 가단 정말 큰일 난다' 하면서도

그럼에도 멈출 순 없었다. 나란 사람이 그렇다. 

한번 시작하면 결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는 사람, 

후진 기어를 박살 내어 곧 죽어도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는 사람, 

그렇게 해서 도착하는 곳이 막힌 벽, 또는 천길 낭떠러지임을 알면서도 그냥 앞으로, 앞으로.

큰 벽에 처박혀야지만, 절벽 아래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져야지만 '맞아, 이게 아니었지' 하는 그런 사람.


그 처박힘과 내동댕이쳐짐의 순간을 알게 된 때는 몸의 이상이 확연히 드러나고나서부터였다. 

아이고, 이 미련한 인간아.

한 달에 한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두 달에 한 번 하던 것도 어는 순간부턴 그 기간이 서너 달에 한번, 

그마저도 양이 너무 적어 '했다'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피부와 머리카락 결은 푸석푸석했다. 

잠도 수가 없었는데 가끔 한 번씩 너무 빠른 심장 박동에 가슴을 부여잡고 일어났다.

그 와중에 왼쪽 팔꿈치 주변에 있던 작은 상처는 아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기 물린 자국이었을 텐데, 평소라면 하루이틀 안에 붙어 사라져야 했을 상처였음에도

몇 달이 지났는데 새살이 올라오지 않아 계속 딱지 앉은 상태로 있었다. 


결국 병원에 갔다. 

산부인과, 내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 호르몬 검사를 했다. 

갑상샘 문제였다. 

호르몬 수치로는 갑상샘 기능 저하가 의심되나, 증상은 죄다 항진 쪽이었다. 

먹는 양은 적고 출퇴근에, 매일 같이 하는 운동으로 몸은 이미 곯을 만큼 곯아버린 상태였다.

뇌는 이를 일종의 '비상사태' 정도로 취급한다. 

몸에 어느 정도 지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충분치 않으니 일단 끊을 수 있는 기능부터 끊어냈고 

그중 첫 번째가 생식 능력이라 한다. 그래서 매달 해야 할 월경부터 들쭉날쭉 했던 것이었다. 

다만 목 주변에 멍울 같은 게 없고 호르몬 수치와 증상이 상반되는 점을 보아

약을 먹는다 거나,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

의사는 면역 약화, 컨디션 난조 때 그럴 수 있다, 라며 조금 더 지켜보자, 했다. 


정신이 번쩍 났다. 

가만히 있을 게 아니야, 나를 살려야지. 나와 살아야지.

그때부터 나는 운동만큼이나 먹는 데에 신경을 쓰고 있다. 

가능하면 삼시세끼 다 찾아먹기, 세끼 중 두 끼는 탄수화물을 포함하여 적당히 먹기,

너무 과식하진 말되, 그렇다고 너무 적게 먹진 않기, 

달걀, 두부, 닭, 소, 돼지, 오리 고기 등등 단백질 부족하지 않게 먹기,

과일, 채소 충분히 먹기, 유산균, 오메가 3, 칼슘마그네슘, 각종 비타민 잊지 말고 먹기, 

커피는 하루 한두 잔, 물은 하루 이 리터, 대충 이렇게. 


주중에는 이 규칙대로 산다. 큰 문제없는 한, 이렇게 한다. 

다만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 이틀은 조금 느슨하게 먹는다. 

평일보다 양껏 먹고, 자주 먹고.

다만 철칙은 있다. 평일, 주말 관계없이 지난 삼 년간 절대 먹지 않는 류의 음식이 있는데

라면, 돈가스 등등이다. 

너무 많은 탄수화물, 특히 밀가루, 그리고 기름에 튀긴 음식이다. 

처음에는 참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엄청 먹고 싶다, 그렇지만 참아야 해, 딱히 이런 마음조차 없다.

 

참고로 나는 라면을 몹시 좋아하여 한창 잘 먹을 때는 매주 한 번은 꼭 라면을 먹던 사람이다.

금요일 저녁마다 맥주 캔과 함께 과자 한두 봉지를 와구와구 먹고서는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토요일 낮 한두 시 즈음 일어나서 먹는 게 바로 라면이다. 엄청 매운 라면.

그 라면을 먹고 나서 또 한참 누워있다 잠시 운동 다녀오면 토요일 끝,

바로 사오 년 전만 하더라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하루를 소비했다.

라면 없이 무슨 낙으로 사나, 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라면 없는 삶도 아무렇지 않다.


여하튼, 이와 같은 규칙으로 천천히 먹는 양을 늘려갔고 먹는 음식의 질을 관리하다 보니

천천히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해야 할 것을 했고 왼쪽 팔꿈치에 있던 상처도 아물었으며, 잠도 잘 잤다. 

심장이 마구 뛰는 증상은, 아주 가끔 있긴 한데 그 빈도가 점점 줄어 지금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있다. 


물론 중간에 몇 번 고비가 있긴 했다. 

다시 그때 몸을 갖고 싶어 먹는 양을 은근히 줄이거나, 매일 아침 몸무게를 재고, 

'하, 이렇게 나올 리가 없는데…? 보자, 어제저녁에 뭘 먹었더라…?' 하며 자책했다.

그런데 그렇게 할 때마다 몸은 귀신 같이 안다. 

순식간에 이전 엉망진창일 때로 복귀하여 매달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온몸에 힘이 없어 비척대며, 

온갖 데에 예민 까칠하게 굴어 자신과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고 만다. 

다 영양의 문제였다. 몸과 마음의 영양이 충분치 않을 때 사람은 이렇게 된다. 


고비 때마다 나는 다시 정신을 꼭 붙잡고는 이렇게 되뇄다. 

나를 살려야지, 나와 살아야지.

지금 일이 킬로그램이 중요한 게 아니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삶을 마무리하는 때에, 눈을 감는 때에 '아, 그때 일이 킬로그램만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진 않을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다만, 몸과 마음이 앙상하여 나와 주변 사람을 향한 사랑마저 빼빼 말라 속이 텅 빈 상태로 살았다면, 

나는 그 시간을 분명 후회하고 말 테다. 그건 싫다. 그건 정말 싫다. 

삶에 있어 이것 만큼 중요한 게, 나에게는 없다. 

사랑, 충분한 사랑, 나를 향한 사랑, 외의 사람을 향한 사랑.

그렇다면 더더욱, 몸과 마음의 영양, 몸과 마음의 건강을 살펴야지.

 



몇 달 전, 건강검진을 했다. 

기본 검진에, 위 내시경과 각종 초음파를 추가하여 꽤 큰 비용을 들여 검사했다. 

이때 안 사실인데, 와…. 몸무게가…. 진짜…? 녀석, 어마어마한 걸? 

이는 바디 프로필 때와 비교하면 십 킬로그램 즈음 더 많은 숫자였고

한창 먹고 공부하고 먹고 자고, 를 반복했던 고등학교 이삼 학년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렇게 하다가는 앞자리가 바뀔 수도 있겠어.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이게 크게 불편하지 않다. 

이전 같았으면 정말 몇 날며칠 식음을 전폐했을 텐데, 그냥 신기하고 대단하단(?) 마음이다. 

주변에도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있다. 


아니 글쎄, 엊그제 건강검진을 했거든요? 근데 몸무게가 어른 돼서 잰 몸무게 중 최고 높게 나온 거야!

그렇지 않아도 좀 이상하다 싶었어요. 운동을 하는데, 이상하게 무게 치는 게 수월했어.

이게, 이게 왜 들려? 약간 이런 거지. 역시 이유가 있었네요. 허허.


이렇게 말하고 나면 주변 반응은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하다.

(일단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그래? 근육 양이 늘었나 보다. 지금이 딱 좋아. 


맞다. 나는 지금이 딱 좋다. 

크고 굵은 허벅지 덕에 슬랙스 살 때마다 몇 번을 교환, 반품해야 하지만

그 덕에 맞는 옷을 발견하면 몇 배 더 큰 기쁨이 있다. 찾고 나면 색만 다르게 하여 몇 벌을 산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때 맞는 옷이라 함은, '어느 정도' 맞음이다.

대부분 허리 사이즈와 허벅지 사이즈 간 부조화로 어느 한쪽에 맞춰야 한다. 

나는 주로 허벅지 사이즈에 맞춰 옷을 사기 때문에, 허리는 늘 헐렁하다. 주먹 한 개가 너끈히 들어갈 정도.

그래도 허벅지에 꼭 맞기 때문에 옷이 내려간다거나, 벗겨진다거나 하는, 그런 염려는 할 필요 없다.

물론 옷이 금방 닳아 마음이 아프지만, 내년에 또 사면된다.

특히 허벅지 안쪽이 계속 닿다 보니 닳는 부위는 늘 그쪽이다. 그래도 터진 적은 다행히 없다. 


최근에는 유니섹스나 남성 의류 쪽을 자주 기웃댄다. 역시 여성 의류는 왜 자꾸 작은 옷만 내놓는 걸까.

남성 의류에서 M 또는 L 사이즈를 찾아 입는데, 최근 산 바지는 면이 두툼하고 탄탄하여 아주 마음에 든다. 

역시 두 장을 샀다. 이번 가을, 겨울 자주 꺼내 입을 최애 바지 예약이다.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 놀란 지점은 또 한 군데 있었는데, 바로 갑상샘이다. 

초음파 결과 오른쪽에 0.5mm 정도 되는 결절이 보이긴 하는데, 일단 조금 지켜보자,라고 했다.

정기 검진,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라는 소견. 다행히 갑상샘 호르몬 수치는 매우 정상이다.

전, 산부인과와 내과를 자주 다닐 온통 빨간 글씨였던 검사 결과지를 생각하면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기 검진해서 추적 관찰을 해나가야 할 테지만, 그래도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가고 있음을 

반응과 수치로서 확인하게 되니, 마음은 한결 낫다.


바디 프로필, 해 볼만 한 도전이다.

우리 모두에겐 복근이란 게 있고 복근은 사람마다 모양이 다 다른데- 개수도 다르고 대칭도 다르고, 

생긴 모양도 다르다. 나는 개수는 여섯 개, 대칭은 딱 맞다. 여섯 개가 세 개씩 두줄로 나란하다. 

복근 알(?)의 크기가 나름은 큰 편이고 네모나다.- 사는 동안 한 번쯤은 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가. 아닌가?

그런데 두 번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만에 하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또다시 도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결코, 지난번처럼은 같다. 

먹고, 운동 열심히 하다 삼사 정도만 식단 타이트하게 관리하는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준비 기간은 몇 개월이었지만, 이후 몇 년을 회복하는 데에 써야 했기 때문이다. 


당분간 나는 다이어트 계획이 없다. 

그냥 큰 사람으로 살고 싶다. 

힘들게 키운 몸, 단 한 톨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 쉽게 사라지게 해선 안 된다.

이미 이렇게 된 몸, 더 많은 무게를 이고 지고, 들어 올리면서 큰 사람의 힘을 자랑하고 싶다. 

이 몸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이렇게 큰 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과 돈과 시간을 들였는데,

당연히 자부심 있어야지. 


무게가 는 김에 스쿼트와 데드 리프트 중량을 천천히 올려가고 있다. 

기분 탓일 수도 있긴 한데, 이전보다 확실히 안정적인 느낌이다. 

그리고 자신감이 있다. '지금 몸무게가 이만큼인데, 이 무게 정도는 질 수 있지!' 라며, 

약간은 거들먹(?) 거리게 된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두 종목의 1RM을 갱신하고 싶다.

다만, 너무 무리하진 않을 생각이다. 부상 없이, 기분 좋게.


큰 사람이 큰 일을 한다,라는 말이 있다. 

큰 몸을 한 사람이 큰 일을 한다,라는 말은 방금 만들었다.

나쁘진 않은데? 

나는 이 큰 몸만큼이나 큰 사람이 되어, 큰 일을 하고 싶다. 

나란 사람을 더욱 사랑하는 일, 가끔은 온전치 못할 때도 있겠으나, 그 조차도 나란 사람의 중요한 일부로서 이해하고 알아주고, 가만히 감싸 안아 주는 일, 닦달하지 않고 오래 참고 기다리는 일,

그리고 이와 같은 마음으로, 나 외의 다른 사람을 충분하고 넉넉하게 사랑하는 일,

이게 큰 사람이고, 큰 일이라 생각한다. 


글이 길어졌다. 이만 마무리하고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체육관에 다녀와야겠다.

글을 쓰다 보니 스쿼트를 좀 세게(?) 하고 싶다. 


다음 주 조금 더 큰 사람이 되어, 더 큰 글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이전 10화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_바디 프로필과 갑상샘(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