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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림 Nov 17. 2024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_바디 프로필과 갑상샘(2)

(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글로 배운 바디 프로필은, 일단 '다이어트'라고 했다. 

보정으로 몸의 크기를 키울 수는 있으나 근육의 선명도는 어떻게 만들 수 없다,라는 말을 엄청 들었더랬다. 그렇다면 빼야 한다, 지방을 싹 거둬야지. 

보자, 보자. 이제 네 달 남았으니까 매일 운동하면 어느 정도는 몸이 나올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정말 예상치 못한 일,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었다.


'코로나 19 확산에 의한 체육시설 폐쇄'

기억하기로는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던 기간 중 두 번이나 위 조치가 내려졌다. 

그렇다면 계획이 틀어진다. 


살다 살다, 체육시설 폐쇄는 정말 예상 못한 변수였다. 

그럼 어디에서 운동을 해야 하지? 근육을 키워야 해. 지방도 싹 들어내야 하고. 

당시에만 해도 나는 근력 운동'만' 했더랬다. 

지금 같았으면 '체육관 문을 닫아? 그럼 러닝을 좀 더 하면 되지!' 할고 말 문제였음에도,

삼 년 전의 나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랄 게 없었다. 


폐쇄 기간 동안 나는 주로 집 근처 산을 뛰어 올라갔고

그곳에 마련되어 있는 일명 '산스장'에서 운동했다. 

물론 마음에 들진 않았다. 기구는 부족했고 열악했고, 심지어 경쟁도 상당했다.

나와 같은 사람, 다시 말해 매일 같이 근력 운동을 '해야 하고' 하루이틀 운동을 쉬어야 할 때는.

괜히 더 몸이 거북하고 부대끼는, 그냥 운동에 정신 나간(?) 그런 류의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저녁 일곱 시즈음부턴 인근에 사는 위 정신 나간(?) 부류의 사람 여럿이 다 그 산 중턱으로 모여들었으며

서로 얼굴을 마주칠 때면 괜히 멋쩍은 웃음을 짓고, 대충 인사 나눈 후 눈치껏 자기 운동하다 하산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느 순간부터 불가능해졌다.

야외이긴 했지만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곳은 무조건 폐쇄, 

어느 날부터 산스장 운동기구 주변으로 흰색 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었다. 

진입 금지, 이용 금지 조치였다. 마치 범죄 현장을 보는 듯했다. 

처음 그 광경을 마주했던 때의 좌절감이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다. 

씩씩대며 산길을 올라왔단 말입니다. 산 입구나 중턱 즈음에 써 붙여놓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중간에 포기하고 집에 갔을 것 아닙니까.


산스장 폐쇄 이후부턴 주로 '홈 트레이닝'을 했다. 

맨몸으로 하는 스쿼트, 런지, 푸시 업, 칼로리 소모를 위한 버핏, 

또 집에 이 킬로그램, 오 킬로그램짜리 덤벨이 있어 이를 활용해 저중량, 고반복 운동을 했다. 

쉽게 말해, 낮은 무게로 횟수를 여러 번 하는 운동하는 방법인데, 이때 여러 번이라 하면….

쉽게 말해 그냥 '조져진다'라는 느낌이 들 때까지를 의미한다. 

말이 좀 험했나요. 제 어휘 사전에는 이보다 적확한 단어가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간 나는 적절한 중량으로, 지겹지 않을 정도로 반복하는 방식으로 운동했다.

그렇게 수년을 운동해 온 나로서는 낮은 중량으로 수 십, 수 백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게 

고통 그 자체였다. 지겹고 지루하고 그 와중에 숨이 차서 헐떡대고, 팔다리는 너덜너덜했다. 

운동 '양'에 있어서도, '질'에 있어서도 영 개운치 않고, 시원치 않은 느낌.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꼼꼼히 검열하기 시작했다. 

운동이 부족하니, 먹는 양과 질이라도 관리하자, 이런 의도였다. 그리고 이게 문제의 발단이다.


처음에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지정했고 그다음에는 먹는 양을 설정했다.

밀가루와 튀긴 음식, 제로 이외의 모든 탄산음료, 주류는 당연히 금지 항목이다. 

그리고 나선 하루 세끼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섭취 양을 계산했다. 

쌀밥 대신 고구마와 단호박을 먹고 단백질은 달걀과 닭가슴살, 또는 흰 살 생선. 

소고기, 돼지고기는 부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지방 함량이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하려 했다.

그렇게 줄이고 줄이고, 계속 줄여 나갔다. 

덜 움직였음에도 먹는 양이 주니 확실히 몸무게가 줄었다. 




체육관 폐쇄 조치가 해제되고 나서도 체육관에 오래 머물 순 없었다. 

운동 한 시간하고 대충 씻고, 서둘러 정리하고 나왔다. 

그 와중에 두꺼운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 벗지 않기 위해 운동 중 가능하면 물도 마시지 않았다.

나는 복지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이고 L은 병원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지 애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KF94 마스크를 쓰고 그 여름을 어떻게 보냈으며

체중 감량에 따라 몸이 곯아가고 있는 와중에 어떻게 마스크 쓴 채로 고중량 스쿼트를 했나, 싶다.



시간은 그렇게 지나 대망의 촬영이 한두 달 앞에 당도했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된 후로 최저 몸무게를 매일 갱신하고 있었다. 

몸무게 앞자리는 5에서 4로, 체질량 측정하면 체지방 비율은 15% 수준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더 이상 몸무게, 체질량을 점검하진 않았다. 

딱 보기에도 몸이 잘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몸이 '잘 나온다'란 근육의 선명도를 의미한다. 

팔다리 둘레가 줄고, 복근 알(?) 여섯 개가 또렷이 드러나며 '잉? 여기에도 핏줄이 있었어?' 싶은 부위, 

예를 들어 골반 주변과 어깨에 퍼런 핏줄이 선명하게 만져지는 그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운동 양은 유지하되, 먹는 양이 줄다 보니 자연히 피부가 얇아지고

때문에 그 밑에 숨어있던 뼈와 장기(?), 근육과 핏줄이 보이게 되는 것이었다. 


몸이 가볍긴 하다.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도 허리 부분 조임이나 겹침 없이, 널널하고 편안하다. 

거북하지 않다. 이건 정말 인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이점이다. 

하지만 몸은 점점 망가져 가고 있었다. 

먹는 게 없으니 기운이 없고, 점심 먹고 세네 시 즈음만 돼도 뱃속이 헛헛하다.

'당 떨어진다'라는 말의 실체를, 나는 그때 바로 알았다. 

이전에는 힘들고 피곤하고, 배고프면 '아, 당 떨어지네'라고 했었는데, 아니다. 

정말 당 수치가 간당간당하면, 그냥 핑 돈다. 


몸은 계속해서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긴급 상황이야, 빨리 먹어. 좀 쉬어.

하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촬영은 코앞이고, 지금 멈추면 그간 만들어 온몸이 다 엉망이 되어버릴 것만 같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한번 시작하면 그 이전 상태로 못 돌아가는 병(?), 

일종의 강박 같은 게 있는 사람이라, 일명 '후진 기어를 박살 낸' 사람이라,

골골 대면서도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사람 몸엔 어느 정도 지방이 있어야 한다. 적당히 필요한 지방이다. 

근육 양은 늘고, 지방 양이 줄다 보니, 비율 측면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미치게 되었고

그때부터 호르몬은 들쑥날쑥하기 시작했다. 이는 바로 여성 건강에 직격타가 되었다. 

매달 해야 할 것을 두 달에 한 번 하게 됐고, 더 나아가선 그 기간이 점점 늘어났다.

출혈의 양도, 어느 달은 너무 많고 그다음 달은 너무 적고. 그냥 엉망진창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조금만 더 참자, 이제 정말 코앞이야.'를 되뇌며 운동과 식단을 이어갔다. 

그때의 나는 굉장히 큰 착각을 했더랬다. 

촬영 마치고 나면 금방 적당히 살찐 몸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럼 다 '정상화' 될 테니까. 조금만 더 참아, 이제 와서 포기할 순 없어,라고.


그 사이 한번 더 체육 시설 폐쇄, 이때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아니, 포기? 단념?이라 해야 하나, 촬영 바로 직전의 일이었고 

그때는 운동을 할 만한 기운이 거의 없던 때였기에, 도리어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체육관 가도 무게를 못 칠 텐데, 뭐.


촬영 즈음하여 해야하는 일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의상을 구입해야 한다. 나와 L은 최소한의 비용을 지출하자, 합의했다.

또한 한번 입고 어디 던져놓을 옷이 아닌 촬영하고 나서도 입을 수 있는 종류와 정도(?)로 샀다. 

위, 아래 정장, 위, 아래 속옷, 밑단이 좁은 운동바지, 깔끔한 흰 양말과 운동화, 이렇게 샀다. 

속옷은 근본이라 할 수 있는 CK, 운동바지와 양말, 운동화 역시 근본 나이키.

도합 한 사람 당 이십만 원 안쪽으로 썼다.(아마도?)

참고로 속옷은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아주 일반적인 형태의 위, 아래입니다.

천이 부족해서 끈 같은 걸로 대체했다거나 역시 천이 부족하여 망사 같은 걸로 덧씌운 그런 속옷 아닙니다.


옷은 준비가 됐고, 이제 몸을 준비해야 한다. 

운동과 식단 이외에도 할 게 있다. 

바로 태닝과 왁싱이다. 

태닝은 앞선 글을 통해 썼다시피, 집 근처 합리적인 가격의 숍을 찾아 둘이 합쳐 열 번 정도 이용했다.

나는 날 때부터 좀 까만 편, 누런 편이었기 때문에 색이 금방 나왔으나 L은 나와 상반되게, 

아주 맑고 하얀 피부의 남자였다.

그는 태닝 로션을 듬뿍듬뿍 펴 발라가며 나와 색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고,

기억하기로는 두어 번 '부스터'를 사서 쓰기도 했다.


태닝을 처음 하는 사람 중엔 두드러기 반응을 경험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게 나다. 가려움, 발진 같은 증상 없이, 그냥 온몸이 우둘투둘하게 두드러기가 났다. 

일시적인 현상이라 하긴 했는데, 처음에는 몹시 당황했더랬다. 

이 상태로 촬영을 어떻게 하냐, 싶은 마음에서였다. 신경이 촬영, 촬영에만 집중되어 있던 때다. 

이런 두드러기는 몇 번 더 태닝을 하고 나면 자연히 가라앉는다 했고

정말 그렇게 됐다. 며칠 쉬었다 다시 한번 태닝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피부가 매끈하게 정리됐다.

이후 삼 년 넘게 간헐적 태닝을 하고 있고 단 한 번도 두드러기 나는 일은 없었다. 


피부 색깔은 됐고, 그다음은 모발 관리인데….

L은 촬영 며칠 전에 다운 펌을 했고, 나는 다른 쪽 모발을 다듬었다. 

언더웨어 촬영이 있기 때문에, 촬영하는 쪽과 촬영되는 쪽 모두 당황하지 않게, 난처하지 않게,

나름의 예의로서 왁싱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집 주변, 역시 합리적인 가격으로 알아봤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왁싱 숍이 이렇게 많았어?


왁싱이라, 사실 태닝도 굉장히 큰 용기를 갖고 시도했던 사람에게, 왁싱이라.


촬영 이틀 전, 오후 늦은 시각. 집 근처 어느 주상복합 상가에 있는 왁싱 숍에 갔다.

두근두근, 알 수 없는 기대와 설렘과 불안, 또 괜히 민망하고 '그냥 도망갈까' 싶고.

정말 까딱하면 예약이고 뭐고, 잠수 노쇼(NO Show)할 뻔했다. 

정신을 단단히 부여잡고 숍에 들어섰다. 젊은 여자 사장은 나를 반겼다. 

예약을 했기 때문에 숍에는 다행히 나 혼자였고 기다림 없이 바로 집행이 이뤄졌다.


그는 전문가였다. 나와 나의 일부를 다루는 그의 손은 매우 단호했고, 박력 있었으며 

중간중간 필요와 욕구, 통증 정도를 묻는 그의 언어는 꽤나 다정했다.

통증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사람마다 차이가 좀 있긴 할 테지만 나는 이와 같은 통증에는 조금 둔감한 편이기에, 이 부분은 괜찮았다. 

다만, 민망하고 괜히 부끄럽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여….

그의 질문, 예를 들면 "길이를 이 정도로 맞추면 될까요?"

"(거울을 가져다 대며) 중간 점검 해보세요. 괜찮나요?" 같은 말에 

얼굴이 시뻘게져선 "네…, 허허…."하고 입을 닫아버리고 만 것이었다. 

아무튼, 그와 나는 촬영 당일 모두에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간편히 다듬는 수준으로 합의했고

시간은 삼십 분 정도 소요됐다. 체감은 한 시간 삼십 분즈음 된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댄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그와 나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왁싱 후 관리 방법과 주의 사항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결제 방법을 안내했다. 

나는 계속해서 민망하여 빨리 결제하고 나가려 했는데, 허둥대는 나를, 그는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고선 하는 말이, 

손님,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요. 새치가 참 예쁘게 났네요.

은빛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보이는 게 묘한 매력이 있어요.

결제하던 손이 잠깐 멈췄다. 그래요? 

다른 곳의 모발을 관리하는, 전문가인 그의 눈에 매력적인 새치라니. 

이 '새치'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중학교 다닐 무렵부터 솟아나기 시작하여 

서른 살 즈음에는 이미 앞머리와 뒷머리, 옆머리 곳곳으로 자리를 넓혀가고 있던, 

엄청난 존재감의 녀석이라 할 수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큰 불편감은 없었으며, 

'백발의 몸짱 할머니'를 장래희망으로 생각하는 나이기에, 굳이 염색을 하진 않았다. 

다만, 주변에서 하도 이야길 하니 신경이 좀 쓰이긴 했다. 

여자라면 좀 꾸며야지, 멀쩡하게 생겨서는(?) 왜 그렇게 하고 다녀? 같은 말, 또는 이보다 더한 말.

그런데 별안간, 심지어 모발 전문가로부터 칭찬을 듣고 나니 

다른 사람 말에 더더욱 신경 쓰지 말아야겠단, 결심이 섰다.

아무튼, 그날의 왁싱은 여러 모(毛)로 얻은 바, 깨달은 바가 많은 경험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도 태닝은 합니다만, 왁싱은 못하겠더군요. 얻은 바, 깨달은 바가 많긴 하나

여전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촬영 전날, 나와 L은 각각 큰 배낭 하나 씩을 들쳐 매고 서울 동쪽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그날 저녁과 촬영 당일 오전에 먹을 닭가슴살과 고구마, 촬영 때 입에 물고 있을 사탕,

그리고 촬영 때 입고 신을 옷과 양말, 운동화, 최소한의 짐만 가져가기로 했음에도 모아 놓고 보니 

무게가 꽤 됐다. 


때는 12월 즈음으로 기억한다. 뱃속이 텅 빈 탓에 평년 대비 따뜻했던 겨울이었음에도 몸이 으슬거렸다. 

그 와중에 우리 두 사람은 '단수'를 했다. 

전날 오후부터 물을 마시지 않는 극단의 조치인데, 왜 그렇게까지 했냐,라는 질문에 나는

그땐 뭘 몰랐어요,라고 답하겠다. 

뭘 모르니까, 일단 되는 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하여 최선의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단수를 하면 피부가 근육에 착 달라붙어 조금 더 선명하고 또렷하게 근육 표현이 된다,라는 

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단 한번 해봐야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우린 비전문가이니까, 시중에 널려있는 여러 비법을 종합하여 시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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