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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림 Nov 03. 2024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_아버지(2)

(1편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아버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에 대해, 받고 싶어 하는 위로와 응원에 대해, 

눈빛과 포옹에 대해,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빠, 그 일 그만하면 안 돼? 나도 돈 벌고 있고. 오토바이 그만 타고, 

조금 안전하고 편한 일했으면 좋겠어. 그간 고생했어. 고마워요. 아빠 덕분이야, 같은 말.


하지만 나는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는 일종의 시위였고 복수였다. 

어린 시절 당신으로부터 입은 모든 상처를 지금에야 되갚아 주고 싶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목숨보다 사랑하는 당신 큰딸이 이렇게 크고 깊은 미움으로 당신에게 복수하고 있었음을, 

아버지는 과연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또 몇 년, 아버지는 긴긴 오토바이 노동을 그만두고 건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됐다. 

첫 직장은 주간 근무, 지금은 격일 근무. 

그 사이 동생은 학교를 졸업했고 여러 사건사고 끝에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 잡아 

자기 할 몫 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스물네 살 첫 취업부터 지금까지, 한 번의 이직이 있었으나 고용 공백 없이 꾸준히 근로하고 있고, 

같은 일을 십 년 넘게 하다 보니 입지와 바탕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아버지가 사장, 대표이던 시절, 어머니는 사장 부인, 대표 아내, 일명 '사모'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작은 회사에서 주 오 일 근무하는 임금 노동자로 살고 있다. 

몇 년 간의 고생 끝에 지금 우리 가족은 그럭저럭 '살 만해' 졌다. 

이 어려운 때에 어른 네 사람 모두 자기 밥값은 하고 산다. 큰돈 쓸 일 없고, 아픈 사람 없고. 

이만하면 감사하다. 차고 넘칠 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부족하진 않다.      



아버지가 더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다 해서, 

가계 경제가 좀 나아졌다 해서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사이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를 포함하여 온 가족이, 당신만큼의 깊은 신앙을 갖고 살길 요구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신앙이란 게 갖고 싶다 해서 갑자기 툭, 하고 손에 쥐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 

시간이 필요하고 과정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이게 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온 마음에 가득한데, 신앙이라. 

아버지의 과거를 아는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치에 맞지 않고 앞뒤가 다르다 생각했다. 

물론 아버지는 함께 산 기간 중 삼분의 이는 차고 넘칠 만큼 큰 사랑으로, 

정말 많은 공을 들여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왔음을 안다. 

하지만 나머지 삼분의 일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자꾸 삼분의 일의 기억, 나를 아프게 했고 울게 했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제발, 아버지 입을 막아 달라 기도했던 그때 그 장면에 멈추어 있었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탈출해야 했다. 도망쳐야 한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그게 서른 살 즈음이다. 같이 사는 게 너무 불편하고 힘이 들어, 

그냥 이 꼴, 저 꼴 안 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아닌 밤 중에 안방에서 들려오는 고성과 집기가 거칠게 달그락거리는 소리, 

쾅 문을 닫고 쿵쿵 분노에 찬 발 딛는 소리에 잠을 깨고 싶지 않았다. 

싸움 이후 각자의 감정을 어떻게 하지 못해 (두 딸 중 말을 잘 들어주는) 나에게만 

할 말, 못 할 말 분간 없이 무작정 쏟아내는 그 말에 매일매일 시들어 가고 있었다. 


본격적인 '출가' 준비는 그로부터 일 년 후, 서른한 살부터였다. 

자리를 살펴봤고, 그간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속전속결'로 구축 아파트 한 칸을 마련했다. 

집을 사고, 집을 샀음을 선포하고, 몇 차례 난리가 났고…. 

그 과정을 모두 받아 적으려면 몇 날 며칠 밤새 써야 한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으며 지난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롭고 짜증나고, 아주 미쳐버리겠다. 

아무튼, 이렇게 나는 어떻게 보면 늦고 어떻게 보면 이른 나이 서른한 살에 '출가'하게 된다.

 

사실 '출가'라고 하지만 방법과 과정만 보면 '가출'과 다름없다. 

아버지, 어머니 생각에는 동생이 먼저 집을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동생은 대학 시절부터 집으로의 탈출을 도모했었으나 자금 문제와 대책 없음 이슈(?)로 인해 

번번이 무산되었으며 지금은 아주 얌전히,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산다. 

나갔으면 동생이 나갔어야 하는데 전혀 예상 밖의 큰딸이, 

결혼도 안 한 큰딸이 갑자기 이렇게 집을 나가 버렸으니, 뭐. 충격이 꽤 컸을 테다.  

그렇다 해서 허락 받고말고, 할 것도 없다. 

대출부터 부동산 계약, 세금 문제, 내부 수리 등등 집 나갈 준비는 진작 끝났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해도 이미 서른 살이 넘은 다 큰 어른인데, 허락받고 말고 할 문제는 더는 아니지 않나. 

다만 '가족'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서로 양보하고 약속하고 합의하는 과정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주말 마다 집에 와서 같이 식사하기, 연락 자주하기. 뭐, 이런 일은 아주 쉽지. 

문제는 신앙 이슈인데, 이 부분은 여전히 조율 중에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쉽게 하면 된다. 

다만 시간이 조금 필요한 일도 있으므로 이는 '노력'하는 수준으로 타협을 봤다. 

그리고 출가 삼 년 동안 그 약속을 대체로 잘 지켜가고 있다.      


     



그렇게 미워했던 아버지를 주말에 한 번씩만 보게 됐다. 

출가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은 별 차이 없었다. 

지난날의 아픔은 어디 가지 않았으며, 출가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를 무수히 서로 주고받았기에 

단둘이 있는 시간은 가능하면 갖지 않으려 했다.  

독립하고 이년 차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아버지의 마른 몸이 눈에 들어왔다. 

굽어 있는 어깨와 거친 얼굴 피부 표면과 주름, 검버섯, 

거칠게 핏줄이 솟은 손등에는 크고 작은 상처 자국이 여럿이다. 

그런 몸을 하고서는, 아버지는 매주 주말이면 집에 올 큰딸을 기다린다. 앞치마를 매고 국자를 들고, 

당신 큰딸과 작은 딸, 아내 먹일 음식을 한 솥 가득하게 만들어 매주 진수성찬을 차려놓는다. 

그러고선 꼭 한마디 한다. 우리 실컷 먹자.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난다. 

나는 웃으면서 아빠, 우리 매주 실컷 먹고 있어, 라고 하면 듣고 있던 아버지는 그냥 멋쩍게 웃고 만다.


매일 저녁 아홉 시 즈음이면 메시지가 온다. '큰딸 퇴근했니?' 꼭 이 시각이다. 

야간 추가근무를 하든, 정시 퇴근 후 운동을 하고 가든, 아무튼 집에 도착하는 때가 이즈음이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목요일 저녁, 또는 금요일 저녁 다시 메시지가 온다. 

'이번 주말에는 몸 보양을 해야 하므로, 문어와 전복을 넣은 해물탕을 준비하겠습니다.'

마침표 뒤엔 세상 활짝 웃고 있는 오리 얼굴이 있다. 

가끔은 선글라스를 쓴 얼굴 이모티콘이 자리하기도 한다. 그럼 나는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우리 아빠, 왜 이렇게 귀여워. 그러고는 재빨리 답장한다. 

'나는 좋아. 이번 주도 잘 먹을게. 고생했어.'라고. 여유가 될 때는 이모티콘도 두어 개 보낸다. 

주로 양팔을 위로 올려 흐늘흐늘(?) 하게 춤을 추는 이모티콘이나, 

'와아아아아' 하며 소리를 지르는 이모티콘으로.


     



아버지는 모든 게 다 서툰 사람이란 생각을, 아주 최근에야 하게 됐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었으므로. 어린 시절 당신 아버지를 보고 배울 게 없었으므로, 

받은 것은 더더욱 없었으므로.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사랑 갈구하는 법도, 

그리고 마음 만큼 되지 않았을 때 이를 완곡히 표현하는 법도, 그에게는 보고 배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이 모든 걸 서툴게 '처리'했다. 그게 그에게는 아는 전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을 던 것 같다. 


물론 '서툴다'라는 게 면죄부가 될 순 없다. 

이는 마치 좋은 의도였어, '사랑'해서 그런 거야, 같은 말과 그 말이 작동하는 원리와도 같다. 

위험하고 무책임하며, 가해자에게는 정당성을, 피해자에게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부여하는 그런 원리. 

다만 나는, 아버지의 그 좋은 취지, 좋은 마음에 대해서는 이제 충분히 알 것만 같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서운하게 했고, 슬프게 했고 분노하게 했었는지, 이 역시 어렴풋이 안다. 

이를 결코 용서라고 할 순 없겠지만.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따로 나와 산 게 벌써 삼 년이다.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돈과 먹고, 입고 씻고 자기 위해 쓰는 돈, 

때가 되면 내야 하는 각종 세금, 그밖에도 끊임없는 '살림' 노동, 

그럼에도 나는 지금 이 삶에 매우 만족한다. 

가족으로부터 그간 엄청난 지원을 받아왔고 이에 대해서는 말로 표현 못할 만큼 고맙고, 

언젠간 보답하고 싶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다시 가족과 '함께' 한집에서 살고 싶진 않다. 

이 글을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보면 몹시 서운해하겠지만, 솔직한 '지금' 마음이 그렇다. 


멀리 살고, 가끔 보니 오히려 좋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조금은 거리를 두고 사는 편이 몇 배, 몇 십 배 낫다. 

물론 아버지는 아니야, 그래도 같이 살아야 해, 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럴 일은 가능한 만들지 않으려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자주 만나 관계하고, 적당히 간섭참견하고, 적당히 불편하게 생각하고, 

적당히 예를 갖춰야 한다. 적당히 돕고, 적당히 도움받고,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사랑 받아야 한다.


이렇게 쓰고 나서 보니, 이게 문제였던 것 같다. 나란 사람의 성향, 극극극극 내'향'인, 

다시 말해 나는 나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속성의 화살표가 밖이 아닌 안을 향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화살표는 한 살, 한 살 나이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안으로, 더 깊은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선을 긋고 높은 벽을 세워 그 안에 나를 두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에서, 침묵과 고요 속에 머물 때만이 편안하고 평안하다. 

그래서 나에게는 '거리'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게 심지어 가족이고 부모, 혈육이라 할지라도 경계를 넘고, 선과 벽을 허물고, 

너무 근거리로 접근하려 들 때면 바로 경보 알람이 뜬다. 잠깐 멈춰,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마

가족인데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사이에 매정하네, 정말, 이런 말이 싫다. 

가족이라 해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 아니, 가족이기 때문에 더더욱.


하지만 아버지는 그 선과 벽, 경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고 싶어 했다. 

가족은 그런 거야, 아빠잖아. 너는 딸이잖아. 

아버지는 '사랑'이란 이름과 그 이유로써 당신 첫째 딸이 쌓은 벽을 허물기 위해, 

선을 부정하고 경계를 지우기 위해 애를 썼다. 

나는 너의 모든 부분을 알고 싶어. 너의 모든 감정과 경험, 생각, 마음, 그 모든 부분에 관여하고 싶어. 

부모잖아. 아빠는 그렇게 해야 해. 너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 사랑하면 그렇게 하는 거야.

방식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하는 편이 조금은 마음 편할 것 같다. 

나는 선을 긋고 벽을 세워 경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다른 사람, 특히 가족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고 아버지는 선, 벽, 경계는 가당치 않은 사람, 

당신 두 팔 안에 두고 꼭 안아 살펴보는 방식으로 가족을 사랑했다. 

우리 두 사람은, 처음부터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사이였다. 

어느 한 사람 편으로 타협하고, 적응하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 커서, 

결국에는 다른 한 사람이 도망쳐 나와야만 되는, 그렇게 해야지만 둘 다 살 수 있는 구조. 

나와 아버지 중 도망쳐 나온 사람은 나다.

그리고 그 덕에 우리 둘 다, 표면적인 관계는 꽤 유쾌하고 원만하고 아름답게, 이어가고 있다. 

둘 다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삼십사 년을 아버지 딸로 산 지금에도, 

아니 아마도 영영 '아버지'란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고 미워하고 또 사랑하며 살아갈 테다. 

과거의 어떤 장면에선 그를 사랑하고 또 다른 장면에선 증오하고 미워하고, 때론 저주하며, 

어느 장면에선 또 그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아버지의 어떤 면은 사랑하고, 어떤 면은 미워하고, 또 다른 면은 사랑하며, 

이런 아버지와 저런 아버지를 나누어 생각하려 한다. 그냥 이게 전부이다. 

아버지란 사람과 함께 사는, 아마도 유일한 방법.      


     



아버지,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 당신. 나는 당신을 향한 마음이 이렇게 복잡하고 다단한데, 

당신은 어떤가요. 아마도,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우리 큰딸, 이라 하겠지요. 

그런데 아빠, 나는 아빠라는 사람을 미워해요. 그리고 그냥, 우리 이렇게 살자. 

여기에서 더 가까워지지 말고, 그렇다고 더 멀어지지 말고. 딱 이렇게.

물론 나, 지금 쓰는 이 글과 그간 해온 지난 생각을 몽땅 다 들어내고 싶어 하게 될지도 몰라. 

울고 불고 땅을 치고 후회할 수도 있어. 그럼 그때 후회할게. 그때 울고 그때 허물어지고 그때 슬퍼할게.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 아버지, 아빠. 우리 주말에 봐요. 

이번 주는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우리 이번 주말에도 실컷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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