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우리 운동하는 사람(?) 사이에 번져가고 있는,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문화 같은 게 있다.
몸 사진, 일명 '바디 프로필'이다.
지금에야 이를 '유쾌하지 않은'이라 쓰며 꽤 부정적인 입장을 내보이고 있지만
놀랍게도 나는 삼 년 전, '바디 프로필' 열풍에 둥실둥실 편승하여 많은 돈과 시간,
힘과 노력을 들여 그 '잘난' 몸 사진을 한 장 손에 쥔 경험이 있는, 바디 프로필 '유경험자'다.
언젠가 한 번은 이와 같은 제목의 글을 쓰고 싶었다.
경험자이기 때문에 조금은 더 신랄하게, 그리고 반성과 성찰하는 마음으로.
드디어 때가 왔다.
몸 '부심' 복근 '부심' 바디 프로필 '부심'이 모두 걷힌 지금,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 가고 있는 지금, 바로 지금 써야 한다.
바디 프로필의 목적은 몸을 보여주기 위함에 있다.
큰 근육, 선명한 근육, 각 부위가 고루 발달하여 잘 구분되어 있는 근육.
때문에 바디 프로필은 몸을 보여줘야 하는 일, 그쪽 분야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특별특수한 형태의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디 빌딩 선수, 또는 지도자 같은 사람이다.
처음 이 사진의 존재를 알 게 된 때는 약 십 년 전, 처음 중량 운동을 하던 시점이다.
체육관에 들어가면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PT 선생의 몸 사진이 온갖 데에 도배되어 있다.
어떤 곳은 체육관 내부에도 큰 화면을 두어 계속해서, 반복해서 사진을 보게 만든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볼 수밖에 없는 구조.
그리고 그곳에 등장하는 사진은 수위(?)가 상당했다.
경우에 따라 위, 아래 옷을 잘 갖추어 입은 사진이 있는 반면,
남자는 한 장, 여자는 두 장만 입고 있는 사진도 더러 있었으며, 그 와중에 온몸은 번들번들하게 광이 났다.
어떤 사진은, 음…. 그 한 장, 두 장마저 꼼꼼히 입지 않은 탓에
자꾸 눈을 피하게끔 하는, 이런 사진을 대낮에…, 이렇게 봐도 되는 거야? 싶은 부류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극극극극 내향인이며 다른 사람 시선 받는 데에 취미가 없고,
그렇다고 씀씀이가 큰 편도 아니면서 어릴 때부터 카메라 앞에 서면 몸이 비틀리고
동공이 지진나며 어떻게든 도망가려 했던 나란 사람이,
헐벗고 기름 칠한 몸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설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일곱 살 많은 남자친구와 사귈 당시 지나가는 말로
"그런 사진이 있다 던데, 요즘은 일반 사람(?)도 많이 도전하긴 한다더라."라고 한 적은 있다.
그리고 언젠가, 한번 찍어보고 싶어,라고 했다.
듣고 있던 남자친구는 안 돼, 왜 자꾸 보여주려 해? 라며 갑자기 발끈했다. 응?
그는 여자친구인 나를 약간 단속하려 드는 경향이 있었는데,
때문에 '그런 류'의 사진은 결사반대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바디 프로필을 찍고 나면 마치 그 사진을 온갖 데에 붙여놓고
"자자, 여기를 좀 보십시오. 이 몸을 보고 가란 말입니다."라고 할 줄 알았던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냐, 하면 결국 찍진 않았습니다. 그와 만날 때는 말이지요.
사실 그때 나도 꼭 찍고 싶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예요, 정도는 아니었다.
호기심, 아주아주아주 막연한 호기심.
나란 사람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아주아주아주 멀리 있는 일,
그래서 한번 해봐? 싶다가도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하며 금세 마음을 접는 그런 일이었다.
한때 나는 이 중량 운동에 반쯤 미쳐 있었는데
매일 두세 시간씩 운동했고, 체육관에 있는 모든 기구를 다 다뤄보고 난 후에야 집에 갔으며,
나중엔 PT 선생 중 한 명이 "저기…. 내일은 좀 쉬세요."라고 할 만큼 주 칠 일 내내 운동했던 적도 있다.
이제 좀 그만 나오세요, 몸도 쉬어야 합니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는 각종 자료를 읽어가며 이론 공부했고,
운동 영상을 반복 시청하며 꼼꼼히 예습복습했다.
오 년 차 즈음에는 열 번씩 두 번, 총 스무 번의 PT를 받았다.
PT, 즉 개인 지도이다.
회 당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매년 초, 연말정산 환급금을 몽땅 털어 그 비용으로 사용했더랬다.
그래서 열 번씩 나누어 받았다. 올해 열 번, 또 내년에 열 번, 이렇게.
여기에서 잠깐, 이 년에 걸쳐 꽤 큰돈을 들여 PT를 받은 바, 한 가지 팁(?)이 있다.
팁이라 하기에는 너무 작고 하찮지만, 그래도 나는 나름 전략을 두고 이를 적극 활용했다.
나는 가능하면 수업과 수업 사이 기간을 멀리 두는 편을 추천한다.
지금은 다를 수도 있겠으나, 또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으나,
수년 전 첫 PT 선생은 매 회 약속 사이 간격을 아주 짧게 두려 했다.
예를 들어, 월요일 저녁, 수요일 저녁, 금요일 저녁, 이렇게.
처음에는 그냥 그렇게 따라갔었는데,
하다 보니 '이렇게 하다 간, 평생 PT 졸업 못하겠는 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직장인의 현실적인 평일 일과를 잠깐 살펴보자.
월요일 저녁에 수업을 받고 나면 집에 가야 한다. 수업 후 바로 연습?
연습은 무슨, 집에 가서 쉬기 바쁘다.
이미 아홉 시, 열 시인데 빨리 정리하고 누워야지,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요.
자, 그럼 화요일에 개인 운동을 한다? 그게 되면 정말 좋겠지만, 안 될 확률도 크다.
야근을 할 수도 있고 다른 약속이 있을 수도, 퇴근 후 다른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렇게 되면 복습 없이 바로 수요일, 본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수요일은 또 월요일에 배운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하다 끝날 확률이 높다.
월요일에 배운 동작이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수업과 수업 사이 기간을 두어, 개인 연습을 충분히 한 후 다음 PT를 약속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아니, 가슴 운동을 하는데 왜 팔이 아프지?
다리 운동을 하는데 허리는 왜 아프고?
이런 의문이 들면 또다시 공부한다. 자기 몸에 대해, 자기 몸의 기능에 대해,
할 수 있음과 없음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고민하고, 여러 시도 끝에 나름의 답을 내려보고.
요즘 같은 경기 불황에서 이는 매우 '절약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힘 절약, 시간 절약, 돈 절약.
알고 싶은 게 명확하고 똑똑하니, 묻고 대답 듣고 이해하는 데에 힘과 시간을 덜 쓸 수 있다.
감이 있는 상태에서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니 두세 번에 나눠 배울 동작을 한 번에 익힐 수 있고.
이런 전략 덕분에 나는 매 회 몇만 원씩 내야 하는 PT 학교에서 조기 졸업하여,
다른 사람 지도 없이 '어느 정도' 자기 운동, 자기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 이후 PT를 받은 적은 없다. 계속해서 운동했고 연습연구했고,
그래서 지금의 나는 덤벨 몇 종류, 바벨과 원판 몇 종류 만으로도 상하체, 전신을 고루 털 수 있는(?)
취미 운동인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초급 또는 초중급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대망의 2020년.
그 일 년은 시작부터 와장창창이었으나,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다 마무리했던,
모든 지점이 일과 일 외의 일(?)로 꽉 차 있었으며 이에 따라 늘 피곤에 절어 있는 상태이나,
그 와중에 새로운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던, 아무튼 그런 한해였다.
2020년에 한 일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첫 단행본을 쓰기 시작했고, 팔 개월 동안 쉬지 않고 썼고, 그래서 2021년 초 첫 책을 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무사히 마쳤고, 중간에 영어 시험과 졸업 시험을 통과했고,
그래서 그해 8월 졸업했다. 코로나 19 탓에 마지막 학기는 줌 등 실시간, 온라인 매체를 통해 수강했다.
전년도 스포츠지도사 2급 자격증 필기시험 합격 후,
2020년에는 실기, 구술시험 준비하여 아주 아슬아슬하게 합격했다.
참고로 이 시험은 필기, 실기/구술, 실습, 이렇게 세 단계 과정을 모두 거쳐야 하는데,
2019년 필기 합격하고 이직과 함께 실기/구술을 한 해 미뤘다.
그리고 2020년 초, 코로나 19로 실기/구술시험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이 때문에 일 년 안에 마칠 수 있던 과정을, 삼 년 내내 물고 늘어져야 했다.
아무튼 2019년부터 2020년, 그리고 2021년 실기까지 하여, 그 자격증 한 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위 쓴 대로, 그 와중에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나를 보면 자꾸 '브라질 닭'이라 했던, 그 헐벗고 망측한 사진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라며
길길이 날뛰던 그와 헤어지고 나서 일 년 여 만의 일이었다.
짙은 쌍꺼풀에, 긴 속눈썹, 하얗게 맑은 피부, 한 살 어린 그, L.
나와 L은 우리 관계를 애지중지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 뒤에 '씨'를 붙여 호칭했고 결코 말을 놓는 법이 없었다.
말을 놓지 말자,라고 먼저 제안했던 쪽은 나다.
한 살 어린 그를 너무 편히 호명하다 보면 둘이 다툴 상황이 왔을 때 분을 못 이겨 막말을 하고 반말을 하고,
서로 꼭 지켜야 하는 그 '선'을 마구 넘나들 것만 같았기에 내린 선택이다.
선을 넘나들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다.
아무래도, 두 사람 중 조금 더 나이가 많고, 조금 더 성격이 괴팍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 덜 한쪽이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을 테니.
나는 L에게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만큼 그를 아꼈다.
그와 나는 코로나 19 시대, 대(大) 감염병 시대의 사랑을 했더랬다.
쓰고 보니 너무 거창하네.
그냥 뭐, 각자 위생, 건강, 면역 관리 신경 쓰고, 때에 따라 백신 접종하고
사람 많은 곳은 가지 않고, 가게 되면 꼭 마스크 쓰고.
나는 복지 기관, 그는 병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더더욱 노력했다.
그와 나는 가는 곳만 갔다. 그의 집, 그리고 그의 집 근처 체육관.
우리 두 사람은 열심을 내어 운동했다. 함께, 또 각자.
운동 경력 차이가 꽤 많이 났다. 나는 (그 당시) 칠 년, 그는 이삼 년 정도.
알려주는 편은 주로 나였으며, 그는 이를 기쁜 마음으로 배우려 했다.
매일 만나 하는 일은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한 시간 반정도 운동, 그리고 식사 한 끼.
나중엔 코로나 19 확산이 폭발적인 수준으로 늘어났고, 일주일에 딱 한 끼 같이 먹음에도
식당이 아닌 그의 집에 가서 직접 요리하고, 시켜 먹는 방법으로 바꿔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소박하게, 소소하게. 조용하고 고요하게.
자기 삶에 대해, 가족과 친구, 동료에 대해, 크고 작은 소망과 꿈에 대해,
연애와 결혼, 가정을 꾸려가는 일과 나이 들어감에 대해, 살고 싶은 집과 마을,
도전하고 싶은 일과 목표에 대해, 그와 나는 서로 알아야 했고 알아봐야 했고, 묻고 들어야 했다.
더 가까워지고 싶었으니까, 알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묻고 듣고 알게 된 '도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문제의 '사진'이다.
그 주제를 먼저 꺼내 놓은 쪽은 아마도, 나로 기억한다.
언젠가 한 번은, 죽기 전에 한번쯤은, 이라 설명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고요. 언젠간, 그럴 날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나 못지않게 내향적인 L,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날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우리 한번 해볼까요?"라는 말을, 우리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내뱉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매우 놀랍고, 몹시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밌는 경험이다.
그냥,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못할 건 없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그와 함께 하니까.
모든 일의 시작은 돈을 쓰는 데서부터이다. 일단 긁고 나면, 일단 질러놓고 나면 어떻게든 하게 되어있다.
나와 그는 그날부터 온갖 자료를 모아 정리, 공유했고
만날 때마다 지난 한 주간 각자가 새로 알게 된 정보를 나눴다.
우리 두 사람은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 촬영을 한 곳에서 다 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찾아봤고,
그곳 SNS계정을 샅샅이 살펴보며 내부 설비(?)와 분위기, 느낌,
그리고 그간 촬영했던 사진 따위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지향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헐벗지 않을 것, 야릇한 표정과 자세로서 사람을 현혹하려 들지 않을 것,
깔끔할 것, 많은 보정을 하지 않을 것, 몸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낼 것,
굳이 큰돈을 들여, 시간과 힘을 들여 이와 같은 일에 도전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나, 어떤 어필(?) 같은 걸 하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나와 그는 대충 이와 같은 지향으로, 이와 같은 조건을 찾아 스튜디오를 선택했고 맞바로 돈을 입금했다.
시작이다. 그때는 코로나 19가 한참이던 2020년 8월이었으며, 우리에겐 네 달여의 시간이 주어졌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