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작년 여름, 한참 뜀박질에 미쳐있던 계절.
당시 나는 아침, 저녁으로 집착에 가까울 만큼 일기예보를 자주 검색했다. 비 때문이다.
비가 오면 나가 뛰질 못할 텐데, 어떡하지.
비가 오는 날은 러닝머신에서 천천히 뛰며 들썩이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머신 러닝은 편안하고 안락하다. 그게 문제였다. 그 편안함과 안락함은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편안하고 안락한 데에 익숙해지면 정말 ‘바깥’에서 뛰어야 하는 때 못 뛸 것만 같았다.
단 일이 분도 뛰지 못해 헉헉대던 나는 그즈음에야,
반년을 매일같이 뛴 덕에, 사오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수준에 막 도달했다.
당시 나는 여전히 나를 의심했다.
수개월 간 만든, 뛸 수 있는 팔과 다리, 심장과 폐 기능을 온전히 소유했단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조급함은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저녁, 나의 두 발을 늘 뛰던 집 앞 공원으로 ‘기어이’ 이끌어냈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그날 나는 몸이 젖고 머리가 젖고, 안경과 옷과 운동화가 완전히 젖었다.
그 꼴을 하고 얼렁뚱땅 뛰고 있는 나를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났다.
온 얼굴에 웃음을 띠고서는 그렇게 삼사십 분을 내리뛰었다. 고인 물 앞에서도 피할 마음이 없었다.
일부러 첨벙, 또 첨벙. 이미 이렇게 된 마당에 더욱 거침없이 비를 만끽했다.
몸에 닿는 빗방울의 감촉, 귓가에는 아델의 음악, 더욱 짙어지는 풀과 나무의 냄새.
그날의 러닝은, 그날의 ‘낭만’은 아마 수십 년이 지나서도 선명하게 남아있을 듯하다.
그 일이 있고 몇 달 후, 나는 한 동료와 그날의 경험에 대해 나누게 되었다.
이를 들은 동료는 ‘해금(금기로부터의 해방)’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래 제목과도 같은, 본인 역시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주제라고 했다.
그리고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날 그렇게 웃음이 났던 이유를.
나에게는 스스로 ‘금지’한 기준이 참 많은 것 같다.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못해.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착한 아이, 말 잘 듣는 아이여야 했다.
겁이 많은 성격 탓에, 어른이 ‘하라’ 하면 하고 ‘하지 말라’ 하면 하지 않는 그런 아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운동’을 하며 자란 탓도 있다.
온갖 데에 널려있던 ‘폭력’의 문화, 또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기에,
그래서 더더욱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보이려 했다.
처벌은 두렵고 아프고 슬펐다.
지금 저 앞에 ‘교육’이란 이름과 ‘정신 개조’ 따위 명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계속해서 금기 목록을 적어 내려갔다.
‘교육’ ‘정신개조’ 당할 염려 없이, 누구에게 얻어맞을 일 없이,
서른네 살의 나는 나름대로 자기 삶의 주권을 쥐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수많은 금기 가운데 ‘해방’을 주장하지 못하는 걸까.
여름이 왔다. 올해는 초봄부터 비가 잦다.
그리고 나는 비를 기다린다.
지난 삼십사 년간,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한 채 살아왔던 또 다른 금기를 찾아보려 한다.
그리고 그때 나는, 지난여름의 나를 기억하며 금기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