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육점

by space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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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을 다녀 보면 식육점, 식육식당이란 간판을 자주 보게 된다.

정육점이란 표현에 익숙하다 보니 식육이란 말이 자극적이다. 식인종도 떠오르고.

하지만 군더더기도 없고, 해석할 필요도 없는, 지극히 직접적인 표현인 건 분명하다.

힘들게 살던 시절에는 먹는 것에 관심이 가다 보니 가게 제목도 돌아가지 않고 바로 먹는다는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나 보다.


사람 간의 관계도 가끔은 이런 직접적인 것에 당황스럽고 민망할 때도 있지만 겉으로 아무리 치장을 하더라도

결국 알맹이는 그것이고 언젠가 드러날 것이라면 차라리 내놓고 말을 주고받는 것이 시원할 때가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문명이란 것이 진행될수록 날 것을 감추고 장식한다.

언젠가부터 옷을 입기 시작하고, 이쪽을 말하고자 하면서 저 쪽을 얘기하는 은유가 깊어지고, 예의라는 이름으로 걸러서 말하기에 서로의 속내를 알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소득이 높을수록 사람 사는 집에서는 빨래가 보이지 않게 되고, 주방의 수납공간은 철갑을 둘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밥을 안 먹고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활의 흔적을 드러 낸다는 것이 지극히 반문명적인 것으로 되었고 아파트 베란다에 이불이라도 널을라 치면 부녀회에서 연락이 오는 문명적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보다 조금 앞서 문명을 즐겼던 나라에 사는 이들은 문명의 포장에 가위눌려 해변으로 발가벗고 뛰어간다.


가린다고 드러낸다고 어느 한쪽이 답일까?

야생의 동물 같은 생존의 적나라함, 문명이라 이름 지워진 것의 가식,

그 어느 것도 지나쳐 악취가 나기 시작하면 숨이 쉬어지지가 않는다.

고단함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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