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를 하다 보면 철물점과 친해지게 된다.
도시에서는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 곳이지만 시골에서는 면소재지에 나갈 일이 있으면 거의 매번 들르게 된다. 철물점은 농사와 관련된 농기구부터 집을 짓고 유지하고 사람이 생활을 꾸려 나가는데 필요한 온갖 도구와 재료들로 가득 차 있다.
근근이 유지되던 평온한 일상에 이상신호가 오면 바로 이 곳으로 달려오게 된다.
가끔 한갓진 시간에 철물점을 들르게 되면 새삼 벽에 결려 있는 도구들을 살피게 된다.
전쟁에서도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그 많은 무기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힘을 보강하듯이 사람도 자연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맞서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이 많은 도구들의 힘을 빌어 진지를 구축한다.
비바람과 뜨거운 햇빛 그리고 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사방에 벽을 두르고 지붕을 이어 몸체를 만들고
그 안에 물을 들이고 내 보내고 열을 공급하며 우리는 집이란 것을 만든다.
그 최소한의 기능에 편리를 이유로 이러저러한 것을 부착하고 이왕이면 이왕이면 하며 눈을 즐겁게 할 것들이 추가되기 시작하면 집은 자연으로부터의 대피소라는 순수한 의미를 벗어나 표현으로 접어든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보이는 집을, 사람이 공간보다 더 많은 표현을 할 수 있는 집을 좋은 집이라 말한다.
물론 시골에서의 집이란 것의 대부분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 최소한의 기능이 별 탈없이 유지되는 집이 좋은 집이다.
시골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도 잘해요'가 되어야 한다.
물론 도시살이처럼 사람을 불러 해결을 할 수도 있겠지만 비용은 얼추 도시살이에 비하면 곱절이 든다.
시골살이의 수입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 비용을 쉽게 감당해 내기도 어려운 노릇이고 돈을 써가며 시골의 생활을 유지하려 한다면 그것은 시골과는 그다지 어울리는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비싼 인건비를 요구하는 그들의 한탕을 욕하기도 했지만 그들 입장으로 보면 일의 양과 빈도수가 많지 않기에 그러할 수도 있다.
시골 시장의 물가가 서울 대형마트의 그것보다 훨씬 높은 것처럼 이제는 모든 게 규모가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되었고 규모가 되지 않는 곳은 한 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시골은 한 가지 기능을 하는 곳이 여러 군데가 있어 그들 사이의 경쟁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구조와도 거리가 있다.
시골 살이을 일 년, 일 년 더하다 보니 가끔은 "내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구나"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가 있다.
이제는 B급 정도의 목수, 패널 기술자, 시멘트 미장, 상하수 배관공, 전기기술자, 페인트공에다 농기구들이 고장 나면 조금은 들여다볼 정도는 되었다.
했던 일들을 지금 살펴보면 거칠고 투박하긴 하지만 무너지지 않고 기능은 다행히 유지되고 있다.
처음에 시골로 들어와 그런 작업들을 해 나갈 때를 떠올려 보면 아득하다.
도시살이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몸과 마음은 작은 불편함에도 쉽게 지쳐가고 조금씩 이루어 가던 편리함은 남아 있는 불편함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빨리 어떤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바심에 항상 호흡은 바빴고 노동의 강도는 사람을 가위눌리게 하기도 하였다.
얼마 전 마을회관에 마을 사람들과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작년에 마을로 귀농을 해온 이를 만나게 되었다.
불과 일 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사십 대 중반이었던 그 이는 그동안 머리도 하얘지고 오십은 훌쩍 넘어 보였다.
사람 하나가 자연 앞에 홀로 선다는 것은 그렇게 몸과 마음에 많은 소모가 따른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은 우리의 안락한 삶을 위해 콘크리트 안에 숨어 있던 그 많고 많은 기능들을 이제는 직접 마주쳐야 하는 것에 당황하게 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타인에 의존적이었던 나약한 삶을 발견하고는 한 번은 털썩 주저앉게 된다.
이러한 시간들이 아마 '거쳐야 할 시간'일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자연 앞에서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생존을 확보해 가는 이 시간이 앞으로의 시골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이 시간들이 우리가 얘기하는 시골생활의 내용 중에 꽤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제는 철물점 출입이 많이 줄었다.
거쳐야 할 시간의 끝이 저만치 보인다.
그 시간 동안 배운 것에 기대어 남은 시골생활의 하루하루를 채워간다.
시골살이는 편리와 불편 사이의 멋진 타협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