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방

by space bar

눈이 많이 내렸다.

바람이 창문을 때린다.

보이는 모든 것은 얼어붙었다.

겨울이다.


봉화에 처음 내려와 지내던 촌집의 아궁이방이 스친다.

이불 밑으로 손을 쑥 넣으면 전해지던 그 온기가 지금도 느껴진다.

그 따뜻함은 다른 형태의 난방과는 달리 마음 안까지 들어왔다.

낯선 객지에서의 겨울밤은 그렇게 온전할 수 있었다.



겨울의 일상은 오후 네 시경이 되면 장작을 패고 가마솥에 물을 담아 불을 지핀다.

잔 가지에서 시작한 불길이 중간 굵기의 나무들로 옮겨 가다 통으로 넣은 나무들이 탈 즈음이면 가마솥에 물이 펄펄 끓는다.

잠들기 전에 굵은 통나무를 두 개 정도 더 넣어두면 영하 이십 도의 겨울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

가마솥의 끓는 물은 들통으로 옮기면 더할 나위 없는 목욕물이 되어 준다.

아궁이와 열을 오래 담아두는 구들 그리고 가마솥으로 이루어진 우리 조상들의 난방시스템은 멋지다.

거기에다 땔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농한기의 운동부족을 해결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방으로 들어선다.

배어 있는 나무 탄내가 정겹다.

창호지 문이기에 공기는 따뜻하진 않아도 이불 안으로 몸을 넣으면 모든 것이 녹아내린다.

촌집에 처음 들어오며 서툰 솜씨로 발라 놓은 누런 초배지의 주름이 촛불에 도드라진다.

나무 나이테 되어 결마다 지난 시간을 보관한다.

맴돌던 잡념들도 숨을 죽이고 삶의 최소한을 확인하며 머리는 맑아져 간다.

아궁 이방,

거기는 낙원이었고 학교였다.


바람은 울음소리를 닮아가고 겨울밤은 깊어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을 X-RAY로 찍어 보면 결국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 몸을 누이는 것임에도

남과의 소모는 염증 되어 곪아가고, 그치지 않는 욕심은 지방덩어리가 되어 몸의 곳곳에 끼어 선명하다.

더 큰 것, 더 좋은 것, 더 편안한 것을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가지만, 맹목적으로..

어떤 것이 좋은 것인 지는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두 평짜리 아궁 이방에서 누렸던 그 주체할 수 없었던 행복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keyword
이전 23화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