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병원

by space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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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 다녀온 서울의 큰 병원 두 곳은 증축을 거듭한다.

수요에 따라 공장 라인도 증설하듯이 병원도 그러하다.

아픈 사람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노령인구를 떠올려 보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다.

예전 우스갯소리로, 미국 열흘 다녀오더니 혀 꼬부라진 소리 낸다고 했는데 요즘 내가 그 비슷한 소리를 한다.

서울에 가면 공기 타령을 한다. 유난스럽기는 하나 사실 그렇다.

코가 막히고 재채기가 나고 눈이 따갑고 얼굴이 당기는 듯하고 정신도 멍해진다.

몸이란 것이 환경에 적응하게 되어 있지만 어느 한계치를 넘어서면 탈이 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이제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사회적으로 기형화 된 삶의 구조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감안하면 노령인구에 더하여 아픈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이 나라의 평균적인 젊은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가정을 꾸리기 힘들어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을 키울 자신이 없기에 자식을 가지지 못한다는 얘기는 이 사회구조가 역할을 다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사회는 지속 가능해야 하나, 릴레이 바통을 이어받을 기본단위가 무너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절망하고 있다.

소수만이 미래를 언질 받기에, 그 소수에 들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기가 막힌다, 억울하다. 불공평하다, 견뎌야 한다, 외롭다... 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되는 세상이다.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쌓이기 시작하면 '鬱(울)'이 차이고 몸의 정상적인 순환을 방해한다.

요즘 소통이란 단어가 사회의 건강함을 상징하듯이 순환은 몸과 마음의 온전함을 말한다.

나날이 나빠지는 환경에, 삶의 고단함으로 인한 마음의 병까지 더하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병원 대기실 앞에서 번호표를 뽑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왜 이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흙냄새를 맡으며 돼지감자를 캐다가 마음이 움직였나 보다.

그 날의 햇빛이, 바람이, 떨어지는 낙엽이, 투명한 공기가, 손끝에 전해지는 흙의 촉감이 나의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보다는 주로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병원이다.

불공평과 억울함에 대해서는, 오히려 내가 남에게 그럴지도 모른다고,

나의 병원은 나를 진료해 주었다.


병원을 들를 때면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을 보게 된다.

그가 누구이든지 마음이 그렇다.

입원해야 할 정도면 간단치 않은 병인데,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상심이 크다.


세상의 아픈 모든 이들의 쾌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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