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다

by space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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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의 전정을 마치고 전지한 가지들을 사과밭 밖으로 들어내었다.

가지들을 치우고 나니 사과밭이 정돈된 듯하고 이제 한 해 농사의 출발점에 섰다.

지난해에 위로 솟았던 도장지 중에서 전정 과정에서 남겨두었던 가지들을 수평으로 유인하는 일이 남았다.

위로만 솟구치는 가지에는 꽃눈이 오지 않기에 그렇다.

작년에 수평으로 유인해 두었던 가지에는 어느덧 꽃눈이 많이 쏟아 있다.

꽃눈이 왔다는 것은 사과가 매달린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키를 키우고 가지를 굵게 하는 양적인 성장의 기운은 가라앉히고 누운 가지는 이제 결실에 힘을 쏟는다.

성장과 결실 모두 중요하지만 성장에만 몰두하다 보면 결실이란 매듭을 지을 겨를이 없다.

그래서 누워야 했다.

가지의 끝만 하늘을 볼 게 아니고 가지의 몸통이 하늘을 바라보며 가로누워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않게 가지의 곳곳에 숨어 있던 눈들이 꽃눈을 만들어 낸다.


사과밭에서 일을 하다가 나도 가끔 풀밭에 몸을 누인다.

밭일은 당연히 서서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서 있는 시간에는 번번이 내 안에서 사과나무의 도장지처럼 성장 호르몬이 작동한다.

바삐 달리고 숨은 가빠지며 일은 내 삶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삶과 분리되어 완성과 함께 파편 되어 사라진다.

나도 누워야 했다.

내가 의도하는 거기가 아니어도 꽃눈이 피어오를 수 있어야 했다.

키를 더해가는 도장지처럼 높이 올라간 그 끝에 삶의 결실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삶의 곳곳에 놓여 있는 시간들도 꽃눈이 될 수 있도록 나도 누워야 했다.

시간이 내 안에서 천천히 흐를 수 있도록 마음의 경사를 낮춰야 했다.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면 그 '정면'이 낯설다.

면접을 보는 듯하다.

하늘이 너는 누구냐 라고 묻는다.

주위를 둘러봐도 하늘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그 무엇에 기대어 얘기할 수도, 근데요~하며 투정을 부릴 수도 없다.

하늘 앞에서는 나는 나이어야 했다.

지나가는 시간들을 쓰고 버리지 않고 내 안에 담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내 안에 흐르는 시간, 언젠가는 꽃눈이 될 수도 있는 그 시간,

바로 나의 지금을 하늘에 울먹이며 말하지 않고서는 나를 말할 수 없었다.


저 시간을 위한 이 시간 되는 그런 덜컹거림 없이 그 시간대로 이어져 흘러갈 수 있다면 바다를 만날 수 있겠다.

기다리는 것에 대한 완성이 아니라 나를, 내 삶을 완결해 낼 수 있겠다.


오늘도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따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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