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경이 되어 사과밭에 들어서 꽃눈을 따기 시작한 지 삼 개월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에 꽃눈은 꽃봉오리가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되었다.
나의 작업은 사과재배 용어로는 처음에는 적뇌였고 그다음에는 적화 그리고 적과로 변했다.
며칠 전 3차 적과까지 끝내고 나니 사과농사의 전반전은 얼추 마무리되었다.
그냥 열매가 아니고 사과라 이름 지어진 상품을 생산하는 사과나무다 보니
한 그루의 나무 안에서 우열을 따져 끊임없이 솎아내고 크게, 더 크게... 사과를 만들어 낸다.
크기의 세상 논리가 시골 사과밭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이 즈음이 되면 사과농사는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장마와도 겹쳐 잠시 쉬어가는 때가 된다.
다행이다. 3개월간의 돌격 앞으로가 끝날 때쯤이면 사람의 몸과 마음이 바닥을 드러낸다.
새벽부터 해 질 때까지 사과밭에서 머무르던 부지런함은 어디로 가고 무엇 하나 하려 해도 움직이기가 귀찮아진다. 이때가 되면 농사일에 묻혀 보이지 않던 일상의 반복되는 잡사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도착과 결과에 돌진하던 모드가 아직 스위치가 꺼지지 않다 보니 일상의 작은 일들이, 그 과정들이 성가셔진다.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아쉽게도 두 가지 시간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과 일하지 않는 시간.
일하지 않는 시간을 휴식 또는 여가와 같은 다른 단어로 에둘러 말해 보지만 일이 시간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전을 펼쳐 휴식의 낱말 뜻을 보면 좋은 말들이 나오겠지만 실제상황에서는 '일하지 않는 시간'이란 소극적 의미밖에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좀 더 풀어 얘기하면 일을 다시 하기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이 되고 일을 떠나서는 의미를 얻지 못한다.
핸드폰의 여러 개 앱이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실제로는 작동되며 배터리를 소모시키듯이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일은 우리를 소모시킨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각각으로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일을 전제하지 않으면 그 시간을 말하기 힘들어진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우선순위에 따라 시간을 쓰게 된다.
하지만 우선순위라는 말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시간은 흐르지 못하고 숨 가쁘게 요동친다.
우선순위에 앞선 일은 결과를 향해 돌격하고 순위에 밀린 작은 일들은 대접을 못 받고 소홀하게 다뤄진다.
일상을 떠올려 보면 중요치 않은 일이라도 소흘함이 누적되면 결국 우리의 삶은 덜그덕거린다.
시간은 각각으로 평온하게 흐르지 못하고 다른 시간임에도 서로가 우열을 정하고 종속되며 그 시간만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일에 치이다 하루가 끝날 때면 일은 그 날의 삶의 전부가 된다.
이 세상에서 부의 축적은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고
그 축적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삶의 방편을 넘어 신성시되는 단계까지 왔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음을 부인할 수도, 일의 중요함을 외면할 수도 없다.
그래도 가끔은 순위에 밀려 유보된 시간에 눈이 간다.
일하지 않음에 그쳐 있는 나의 멍한 휴식을 바라본다.
버킷리스트와 같은 한풀이보다는 삶의 뒤끝에 그 리스트는 백지였으면 좋겠다.
내 곁에 틈틈이 있는 작은 시간에도 눈을 돌리고,
어떤 시간도 다른 시간의 보상이지 않고,
달리고 쉬고 가 아니고 그냥 걸어가는 시간이고,
그래서 먼 하늘에 석양이 질 때면 오늘 하루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