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저 딸까?
아니면 몇 개만 남겨 둘까?
......
올해 햇사과로 아오리를 수확하던 날이다.
속도전을 치르며 사과를 따다가 급부 레이크 밟듯이 몇 개 안 남은 사과 앞에 멈춰 선다.
어떻게 할까...?
그래도 사과나무에 사과 몇 개 매달려 있는 여운은 있어야지.
사과나무를 바라보는 마음도 풍요롭고 말이야.
그래야 아는 이들과 사과를 따 먹는 재미라도 느낄 수 있지.
거기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사과나무를 탈탈 털어 발가벗기는 것도 좀 거시기 하구.
여운, 재미.., 가당치도 않은 소리!
그리구 뭐가 거시기하다는 거야?
농사를 업으로 하는 이답게 일은 일로 접근해야지, 웬 뜬금없는 감정 놀음??
한 해동안 피부가 염전이 될 정도로 새벽부터 땀 흘리며 지은 농사인데 박박 긁어서 내다 팔아야지.
결국은 사과나무에 마지막 잎새 마냥 사과 몇 개씩 남게 되었다.
나는 그러기로 하였다.
선택하였다.
어린 시절 마당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높은 장대로 감을 따던 내가 아버지께 물었다.
아빠! 제일 위에 있는 감은 어떻게 해요?
"남겨 둬라. 새도 묵으야지"
까치가 쪼아 먹다 남은 감이 겨울 되어 나무에 쪼글쪼글 얼어붙어 있는 광경이 아스라하다.
그 겨울 냄새가 지금도 코끝을 오고 간다.
삶은 치열하다.
우리네들의 삶의 대부분을 점령하는 일이란 것은 더 그러하다.
아마 대가를 구하는 일이기에 그러하리라.
거기에는 더해지는 것만 환영받을 뿐, 감해지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은 틀린 것이라 한다.
살아가며 약간의 마이너스를 택하는 것을 무엇이라 할까?
물론 종국에 덧셈이 될지 뺄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단기간으로는 뺄셈이다.
여유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멋도 아니고
헛지랄... 제일 와 닿기는 하지만 물기 베인 마음을 이렇게 말하려니 서글프고...
조금 안 맞는 것 같긴 해도 낭만 밖에 안 떠오른다.
옛날 우리 부모세대에는 이런 약간의 뺄셈을 즐기는 멋 부리는 이들에게 '데카당하다'라고 했다.
일본식 발음이지만 원뜻은 쇠퇴, 퇴폐를 말하는 decadent이다.
그러면 사과 한 두 알 남기는 것이 그것에 해당이 될까?
그 낭만을 농사를 짓는 이로서 누려도 되는 일일까? 아니, 농사를 떠나서 일이란 것과 어울릴까?
익숙한 표현이지만 막상 낭만이 뭐지라는 생가가에 국어사전을 집어 든다.
낭만 : 현실보다 공상의 세계를 즐기며, 매우 정서적 이상적으로 인생을 대하는 일
어이쿠, 이거 함부로 쓰면 안 되는 말일세.
살아 볼 만큼 살아본 나이에서 보면, 이건 한 마디로 돈 안 된다.
이러다 밥 굶지...
낭만의 뜻을 새삼 새겨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치열한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신형철이란 이의 [몰락의 에티카]라는 평론집 제목이 문득 떠오른다.
몰락해서는 안 되는,
뺄셈과 소모를 용납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래서
예술이란 이름으로 몰락의 에티카에서 밤새 울다
돌아온다.
우리의 그 찬란한 삶으로.
어떤 이는 몰락의 에티카를 삶으로 끌어들인다.
그 먼 길을 어찌 끌어안으려고...
길 위의 뿌옜던 먼지는 자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