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앉았다.
얘기를 했다.
춥고 덥고,
해가 뜨고 지고,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쌓이고,
공기는 맑고,
호두나무 잎사귀 색이 변해가고 떨어지고를,
농사는 힘들었고,
사과는 다행히 맛있고,
먹고사는 일이 고단하고,
주변에 대해 고맙고, 서운하고를,
삼겹살이 두꺼워서 맛있고,
맛있는 김치는 어디서 얻었고,
음악이 좋고,
배가 부르고,
많이 취하고,
술을 왜 많이 또는 적게 마시고를,
앞에 마주 앉은 네가,
자리에 없는 걔가,
방금 얘기가...
옳고 그르고,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를
말하였고 그 날의 자리는 그렇게 마쳤다.
..............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너는 또 뭘 얘기해야 하나.
아니, 나는 너로부터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을까.
둘러앉은 자리는 주변의 것에 대해 그리고 남에 대해 던지는 '언급'으로 넘쳐난다.
그 언급들은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왜 소중한 시간이 이런 것들로 채워질까.
때론 목소리까지 올라가며 이어지는 나 아닌 것들에 대한 말은 자리가 끝날 무렵이 되면 피로가 몰려온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들을 수 없었고 서로를 교환해 내지 못 했다.
나 아닌 것에 대한 언급은 세상에 넘쳐난다.
남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하다.
자리에 없는 남은 물건과 다를 바 없기에 일방적으로 입을 놀리기에는 좋다.
연설을 잘하는 이가 토론에 약한 걸 왕왕 보게 되는데 말을 던지는 것에만 익숙하기 때문이다.
삶을 초소병같이 경계근무를 서며 보낸다는 것은 아쉽다. 무엇을 위한 선이었기에.
그 선을 넘어 들어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 채 선 밖의 것들을 말하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는 그 사람을 듣고 싶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것을 얘기하는 이가 있는 자리라면 귀퉁이라도 끼어 앉아 있고 싶다.
입에 올리기 쉽고 욕먹을 일도 없는 만만한 대상은 자신이다.
나를 얘기하고 들어주는 자리는 적어도 허허롭지는 않다.
연예인들이 나와서 힐링이니 토크니 하는 프로도 자신에 대해 내레이션을 잘하는 프로가 인기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자리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은 대단한 이념이나 이성적인 것이 지배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가만 들여다보면 우리는 충동이나 감정 같은 것에 의해 추구되는 존재일 따름이다.
정겨운 자리라면 감정의 볼륨을 좀 더 올리자.
세상 걱정, 남 걱정은 그만하고 '나'라는 것도 좀 읽어 주자.
우리는 그러자고 자리에 둘러앉아 있는 것 아닐까.
나를 낭독하는 자리, 아름답지 않나요.
당신의 마음길을 중얼거리고 싶다구요?
그럽시다. 실은 나도 그러고 싶었다구요.
우리 어깨동무하고 걸읍시다.
걷다가 길가에 앉아 또 중얼거립시다.
오늘따라 따뜻한 햇빛을 보니 나는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이에요.
조금만 더 울면 좀 있다가는 웃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 눈물이 기뻐서인지 슬퍼서인지 외로워서인지 외로움이 끝나서인지 잘은 모르지만 하여튼 조금만 울고 싶다고 말하자구요.
우리가 뭐 결론을 내자고 얘기하나요..
당신은 돌아가면 혼자서도 멋진 결정을 해 내고 말 텐데요.
갑자기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구요?
그럼 이유는 좀 있다 듣고 일단 웃자구요.
하하하~
꽤 신나는 여행이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