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에서 나오는 음악에 기대어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이제 한 해 농사의 끝이 보인다.
경쾌한 노래에 앉았던 몸을 일으켜 세웠고 차분한 음악으로 널뛰는 마음을 잡아매었다.
고마운 일이다.
음악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 많은 음악들을 몇 천 원에, 그것도 '좋아요'만 눌러 놓으면 이런 시골에서 듣고 또 들을 수가 있으니 말이다.
사람의 말도 위안이 될 때가 있지만 감정 거리가 먼 경우에는 대부분 공허함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음악은 적막한 산속에서 딱딱해져 가는 마음에 동심원을 그려주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음악을 듣다 보면 "어~ 또 나오네"라는 말이 나온다.
좋아요를 꾹 눌렀던 음악들이지만 듣고 또 듣다 보니 그 음악은 이제 울림이 없다.
익숙의 지뢰를 밟으니 귀는 멀고 벌렁거리던 가슴은 다시 딱딱해져 간다.
일도, 사랑도, 어떤 장소도, 그 무엇도 익숙함의 단계에 이르면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없음에서 있음으로, 있음에서 더 있음으로, 차가움에서 뜨거움으로 진격하던 행군도 멈추어 버린다.
익숙의 시간에 다다르면 그간의 열정은 무엇이었는 지를 뒤돌아 보게 된다.
아직 도착하지 못하였음에 움직여 왔는지,
새로움이나 갈증과 같은 내 안의 영역이 나를 한동안 움직이게 했는지.
아니면 나와 상관없이 내 앞에 놓인 것을 바라볼 줄 알았고 그래서 나는 움직였는지를 생각해 본다.
내 안의 필요가 이유라면, 그것이 충족되면 또 새로운 것을 찾을 수밖에 없다.
나 이외의 모든 것은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대상에 불과했고 거기에서 보내오는 신호는 애초부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낯 섬과 익숙 사이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내 앞의 것을 보고 듣고 한다지만 실은 자신을 보고 있다.
나의 시선을 거두고 내 앞의 것을 다시 바라본다.
나와 관련지어지지 않았던 원래의 너를 본다.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일 년 내내 들었던 그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반복과 축적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