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밭 위에 햇빛을 피할 농막을 하나 만들었다.
능금조합에서 물건을 쌓을 때 쓰는 빠레트를 얻어 거기에 기초하여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이었다.
농막을 만든 곳은 오전 나절에는 뒷산이 그늘을 만들어 주지만 점심 무렵부터는 햇빛이 들이쳐 잠시 쉴 때도
햇빛으로부터 도망치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쉴 때마다 사과밭 아래 호두나무 그늘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름 숙원사업이었는데 만들고 보니 휴식이 휴식답다.
늦은 오후에 비스듬히 들이치는 햇빛을 막기 위해 판재를 몇 개 대고 거기에다 '멀리 보다'라고 써보았다.
저녁 7시쯤 농막에 앉으면 첩첩 히 먼산과 그 너머로 해 지는 모습이 보인다.
멀리 보이기에 멀리 보다고 이름 지었지만 그렇게 써붙이고 나니 먼 산뿐만 아니라 내 삶의 남은 시간들도 멀리 보인다.
제일 가까운 산은 오십 대 끄트머리, 그다음은 육십 대, 칠십 대 그리고 팔십 대는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소백산 능선에 걸쳐 있다.
그 나이가 되면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서 무엇을 의욕하고 있을까.
남은 시간 동안에는 한 세상 살아내느라 흐트러졌던 몸과 마음을 온전함으로 다스리고 있으면 좋겠다.
나에게로 돌아가 내 안에서 자족할 줄 알고 나의 경계와 시선과 이익을 때로는 뒤로 물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의도와 결과를 혼돈해서 내뱉는 세상의 말들에 나까지 보태지 말고 의도를 자인할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
유불리에 덜 민첩하게 움직이고 필요로 말을 지어내지도 않으면 좋겠다.
적어도 가난하고 옹색한 마음이 나의 남은 시간들을 점령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렇게 먼산 고갯마루를 하나씩 넘어가며 삶을 마무리하는 그 길에는
있어야 할 것들로 돌아가는 복귀(復歸)의 발자국이 있기를 바란다.
오늘 해는 구름을 거두고 홀로 붉고 선명하게 지고 있다.
따뜻하고 맑게, 온전한 모습이 되어 먼산 너머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