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는 불놀이로 시작한다.
겨울이 지나고 처음 밭에 나와하게 되는 일이 불을 지피는 일이다.
달불놀이와 같은 기원의 의미는 없지만 나무들을 모아 불을 피우다 보면, 솟구치는 불길 앞에서 나도 모르게 한 해 농사가 순조롭기를 바라게 된다. 매캐한 연기와 나무 타는 냄새는 겨우내 잠자던 사과나무와 농부를 깨워 움직일 때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만일 사과농부의 달력이란 것이 있다면 2월에는 바로 이 장면을 달력 그림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주전자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듯이 모닥불에 등을 맡기고 몸의 온도가 올라가기를 기다려 밭으로 나간다. 한 해를 시작한다.
오늘은 동계전정을 하는 날이다.
겨울이 끝을 보이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서는 이월 중순경이면 농사의 첫 일정으로 사과나무의 가지치기를 한다. 낮 기온은 따뜻하기는 해도 아직까지는 아침 녘 일을 시작할 때는 모닥불에 등을 대어야 움츠린 몸을 풀어낼 수가 있다.
모닥불에 불을 쬘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불은 마주하는 것보다는 등으로 쬐는 것이 한결 따뜻하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이 더 푸근해진다.
앞과 달리 뒤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항상 우리로부터 방치되어 있다.
누군가가 바라봐 주어야 하고 토닥임이 있어야 위로받을 수 있는 영역이다.
등이란 것이 아무에게나 내어 줄 수 없기에 등을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안도하게 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전정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뒷짐 지고 불을 등지고 있다.
외로웠던 우리의 등은 오늘 아침 모닥불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얻었다.
혹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오늘은 그이의 등을 가만히 안아주면 어떨까.
사랑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는 문제라기보다는 사랑할 수 없을 때 사랑해 내는 것일 수도 있다.
미소 짓는 얼굴은 누구나 사랑할 수 있지만 얼어붙은 등은 사랑하는 사람만이 끌어안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사랑을 하고, 그러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의 原音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