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해 질 녘이 되니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무리 지어 가고, 혼자 걸어가고, 정든 이와 기대어 걸어간다.
씩씩한 걸음, 각박한 걸음, 어슬렁거리는 걸음, 배 내민 팔자걸음, 종종거리는 잔 걸음
그리고 길바닥을 쓰는 듯한 무거운 걸음들이 창밖으로 지나간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걷는다.
이 시간이면 대부분 집으로 향하겠지만 또 많은 걸음들은 연말 술자리나 정든 그 이를 향해 달려가겠다.
아까 눈에 띄던 그 무거운 걸음은 이제야 갈 곳을 정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아직도 추운 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으려나. 밤이 깊어 가면 반듯했던 걸음들은 줄어들고 흔들리는 걸음들은 늘어나겠지.
시골로 돌아와 그날 광화문에서 봤던 걸음들이 생각난다.
나도 오랜만에 걸음을 걸어 보았다. 나의 걸음은 어떠한 지.. 내가 보았던 걸음 중에 어느 걸음일까.
내 걸음도 밭에서 일하는 사람 치고는 그다지 활발해 보이지는 않는다.
경쾌하지 못한 내 걸음에서 망설임이 묻어 난다.
면소재지는 차로 나가면 8분 거리지만 걸어 보니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시간의 크기가 또 헷갈린다. 8분과 90분,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시간들에서 우열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다.
예전에 동해에서 백복령을 넘어 정선까지 10시간 걸었다가 버스를 타고 35분 만에 동해로 돌아왔을 때의 그 황당함과 겹친다. 물론 10시간의 땀과 35분의 기름이 도달의 결과로만 보면 등가라고 하겠지만 이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바퀴를 굴리며 얻은 것 그리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면소재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응달진 비탈길은 눈이 녹지 않아 제법 미끄럽다.
차를 탔다면 사륜 기어로 당연히 손이 갔겠지만 더듬더듬 찾아보니 나에게는 사륜은 없어지고 이륜구동 기능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허리 들어 직립하며 이륜구동이 되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먼 옛날이겠지만 두 다리로만 걷는 것이 아직도 익숙지 않은 지 휘청거리고 미끄러워 진다.
필요가 없게 된 두 팔은 심심하던 차에 무언 가를 움켜쥘 수 있게 되었고 높이 올라 선 머리는 커지며 멋진 세상을 만들었다.
그건 너무 고마운 일이긴 한데,
그런데 어떤 날은, 감당하지 못할 머리의 무게를 이고 휘청거리며 걷는 그런 날에는,
가늘어진 팔과 다리 그리고 쓸모없이 커져 버린 머리를 바라보다 생각한다.
차라리 나에게 다시,
눈 쌓인 비탈길을 힘차게 치고 올라가는 사륜구동 기능이 있었으면,
들짐승을 향해 질주하는 치타의 굵은 허벅지와 도약하는 앞다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