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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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모금을 한다.

도시의 역전이나 터미널같이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 자주 대하는 모습이다.

모금함을 목에 두르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다며 돈을 기부하기를 청한다.

자기 아닌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의 얼굴이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저 이의 표정과 바쁜 발걸음은 모금함의 종착지를 추측케 한다.

가끔 모금함에 잔돈을 넣기는 하나, 그 돈들이 모여 모금함에 쓰여 있는 단체나 사람에게 전달되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남을 위한다는 설정이 자신의 구걸행위를 모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오늘 내 마음속에도 남과 내가 뒤섞였다.

나를 위한 이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약간의 이타라고 할 만한 것들도 있었다.

내 안에 의도는 없지만 다행히 남에게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 이타,

의도도 있고 1차 수익도 상대에게 가지만 베푸는 기쁨이란 최종 수익에 관심이 있는 이타,

그리고 나를 위한 것임에도 남을 내세우는, 이타의 옷을 빌려 입은 이기가 있었다.


利他와 利己

무엇이 옳고 우월한 것인가, 이타는 선이고 이기는 악일까

문명이 깊어 갈수록 야생의 세계에서 가졌던 우리의 이기는 감추어져 왔다.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 거리는 이빨과 발톱은 미소와 멋진 옷 안에 머무르고 있다.

이기의 유전자는 먼 옛날부터 생존을 위해 우리에게 심어진 프로그램이기에 그것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서로의 이기를, 인간의 그 한계와 불완전함을 같이 용서해야 할 것 같다.


가끔 삶에 지칠 때, 동대문시장을 가곤 했었다.

변형되고 가공되지 않은 이기를,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삶을 위한 몸짓을 만나고 싶었다.

새벽시장에 치열하게 부딪히는 이기를 바라보며 다시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


지독한 이기보다 이타의 옷을 입은 이기의 냄새는 견디기 힘들다.

세상에 옳고 그름에 대한 많은 말들이 오고 가지만 그 또한 상대적인 것이고 보면, 차라리 분명한 것을 도덕이라 하면 어떨까.

뒤섞이지 않은 선명한 이타와 이기는 각각으로 멋지다.

건강한 이기는 상대의 이기를 인정하는 경계선에서 경쟁과 타협이 있고, 이익을 유보하는 아쉬움을 남기지도 않는다. 굳이 이타 뒤에 숨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할 일도 아니고, 더군다나 자신의 손이 미칠 수 있는 영역을 구석구석 살펴 낸 이기는 남의 영역을 그다지 기웃거릴 일이 없고 탐욕으로 진화하지도 않는다.

건강한 이타는 자신이 내미는 손을 바라보지 않고, 나의 기쁨을 예정하지 않고, 나와 관련짓지 않고 상대를 존재로서 바라본다.

나도 인간이기에 너도 그러기를 바라는, 거기에서 완결하는 이타는 돌아옴을 거부한 편도 승차권과 닮아 있다.

우리의 삶도 모금인가.

그러면 이렇게 한번 써 보자.

'나를 위한 모금함'

많이 부끄러운 일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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