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by space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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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이란 영화가 있었다.

아이가 엄마 손에 이끌려 시골로 올 때,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던 흙길이 있었다.

버스가 지나가면 먼지가 뿌옇게 날렸고, 우리는 그곳이 적막한 오지라고 전달받았다.

시골 풍경을 담은 그 영화는 흙먼지에서 시작되었다.


마을 진입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다.

마을 개천도 4대 강 정비사업같이 축대를 쌓아 물길을 잡고 다리도 만들고 바닥도 깊게 하였다.

이로써 우리 마을도 먼지 나는 길이 없기에 오지 영화의 배경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다.

워낭소리란 영화도 시골이 배경인데 그 영화를 찍은 장소도 같은 지역에 있는 곳이다.

여기보다는 읍에 가까운 지역이니 굳이 오지로 치자면 우리 마을이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영화를 찍을 당시는 흙길이었지만 지금은 우리 마을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제는 아무리 카메라 앵글을 잘 잡아 보아도 오지라 할 수 없게 되었다.

간혹 오지가 그리워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편리함의 끝을 향한 정형화된 삶의 형태에 동의할 수 없어서 일까?

어찌 되었든 이들도 갈수록 힘들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런 감상적인 바람이 있었다.

어느 항구의 선창가에 찌그러진 대폿집이 있다면, 거기서 한잔 해보고 싶었다.

도통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 어귀에서, 불이 들어오는 간판은 없고, 손님은 그다지 많지 않고,

쉰 김치 인심이 넉넉했으면 좋겠고, 먼지 낀 백열등에는 파리끈끈이가 늘어져 있고

장삿속이 덜 밝아 혼자 들어가도 눈치를 주지 않고, 손님이 있건 없건 항상 문을 열어 두고,

겨울철이면 덜컹거리는 창문으로 찬 바람은 들이쳐도 안에는 연탄난로가 꼭 피워져 있어야 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런 대폿집은 이제는 없다.

몇 년에 한 번 다녀갈까 말까 하는 도시 손님들을 위하여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라는 것은 대폿집 주인에게 장사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예전에 도시에 살며 가끔 시골 나들이를 할 때, 해가 갈수록 변해가는 시골의 모습을 보며 허전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서울의 모습을 시간차를 두고 따라가는 지방 중소도시에 이어 시골까지도 변해 간다.

시골은 도시와 대칭될 때 그 매력이 있지만 시골은 이미 도시의 모습을 복사하는 그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 길은 불편함을 더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편리를 위해 끝없이 달려가야 하는 길이다

도시는 편리함을 향해 질주함에도 시골은 다녀가는 이들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라는 것은 적절치 않다.

흔히 말하는 종갓 댁 사람들에게 이조시대의 주거형태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몇십 년 전 어느 날,

광화문의 흙길이 아스팔트로 변하고 종로와 청계천이 뒤를 이었겠다.

전국의 길이 도로가 되고 이제는 시골의 골짜기에 있는 이 마을도 포장을 완료하였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그것'의 절대치는 이제 없다.

그래도 그립다면 조금 더디게 따라오는 쪽을 보며 지나온 시절을 떠올리는 것으로 타협해 얻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다 같이 개발의 길로 들어섰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평준화되듯이 사람 사는 곳이면 앞으로 도시건 시골이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도시는 이제 너무 많이 왔다 싶어 반환점을 돌고 있다.

시골은 굳이 반환점까지 쫓아가지 말고 불편함을 줄이는 적당한 지점에서 멈추어 서도 좋겠다.


타이어에 닿는 도로의 촉감이 보드랍다. 어찌 되었든 좋다. 편안해졌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자꾸만 가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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