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덧셈

by space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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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하루를 더하고

삼십여 일의 묶음을 열한 번을 더하니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렀다.

한해의 끝날이 되면

이 모든 덧셈을 합해 '1'이라 하고

지나온 세월에 익숙하게 더한다.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로 자릿수를 옮겨가며 숫자가 바뀌는 것이

옛날 택시에 달려 있던 요금미터기 같다.

택시요금이나 이 덧셈이나 가슴이 덜컹거리기는 매 한 가지다.


해가 바뀔 때마다 하는 '더하기 1'

일 년 동안의 작은 덧셈들을 떠올리면 1이란 숫자가 간단치는 않다.

어찌 되었던 우리는 예외 없이 와인 빈티지 같은 몇 년 산 라벨을 달고

이맘때가 되면 나이를 먹는다.

이삼십 대까지는 나이 1~2년 차를 크게 느끼다가 중년의 나이를 넘어서며 덤덤해진다.

새로운 것을 겪을 나이가 지나서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과 지혜, 양심, 너그러움, 현명함.. 과 같이 쌓여가야 할 것들의 관계가 비례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 아무 관련이 없음을 알아가게 된다.


나이는 절대치보다 상대치가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몇 살 위, 아래 하는 얘기이다.

십 년 단위로 나이가 바뀔 때는 절대치가 부각된다.

흔히 말하는 학년이 올라갈 때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이 더해온 세월의 연장선에서 움직이기보다는

이미 학습된 내용을 따라 하며 그 연령대의 행동요령에 점령되고 만다.

겉늙어간다.


우리네들의 삶에는 나이가 많이 들어와 있다.

자신을 의식할수록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듯이 나이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 간의 관계를 일렬종대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몇 살 먹은 누구만 남아 있다.

그런 자리는 대부분 위아래의 구조 유지에 신경을 쓰고 의미 없는 의전이 시간을 채운다.

매년 미터기 올라가듯이 더해지는 나이가 소중한 자리의 주제가, 골격이 된다는 것은 아쉽다.


우리는 각자의 진도에 맞춰 나이 들어간다.

돌림노래같이 일찍 노래 부르는 이 있고 뒤에서 노래 부르는 이도 있다.

자신이 불러야 할 부분을 놓치지 말고 노래부를 일이다.

늙은 이가 젊은이 흉내를 낼 필요도 없고 젊은 이가 반대의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생각이 진부하지 않아 젊어 보이고 나이에 비해 생각의 폭이 넓고 신중해서 나이 들어 보이고 하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자신의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다.

나이 들었기에 가르치려 하거나 반대로 나이를 불필요하게 건너뛰려 하는 것이나 나이가 주제라는 면에서는 상하 간에 죄질이 같다.

건너뛰려 한다면 반대의 경우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그 건너 뜀을 바라보기 편하고 이해도 된다.

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적절한 호칭이 준비되었다면 그다음 진도를 나갈 일이다. 호칭에 갇혀 병정놀이 할 일은 아니다.

사람 간에 그 보다 소중한 일들이 많이 있다.


망년회 자리가 되면 갈수록 나이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바란다고 행복이 찾아오지 않듯이 나이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젊어지거나 더 점잖아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이란 하루를 눈 뜨면 맞이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나이를 맞이하는 날은 아마 없을 것 같다.

나이는 고속도로에 보이는 어디 몇 km 하는 표지판같이

인생행로에서 어디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가에 대한 식별 신호이다.

장거리 빙상경기에서 몇 바퀴 남아 있는 지를 알려 주는 종소리이다.

그 지점에서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알려준다.

나이의 기능은 거기까지가 아름답다.


가끔은 젊은 날 머리를 쥐어짜도 알 수 없던 것들이

문득 내 어깨를 툭 치며 와 닿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꼭 하늘을 한번 바라보게 된다.

감사한 일이다.

나이 들며 누리는 작은 기쁨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나이에 잠깐 동안만 맞는 얘기이다.

다른 지점을 통과하는 이들과 나눌 일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얘기가 있다.

거쳐야 할 시간들을 용감하게 횡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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