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민족, 원조 철가방이다.
고물상에서 구해 실제로 들어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짜장면 넣고 막 뛰어 보고 싶었다.
철가방은 마당 수돗가의 수납장이 되었다
투표함이 보일 때쯤이면 정치인의 입에서 가장 아름다운 얘기를 듣는다.
가끔 참회의 눈물도 보게 된다.
당사자는 꼭 부인과 함께 저 앞에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투표용지를 넣는다.
자신을 기표하지 않는 멋진 정치인은 어디 없을 까?
꽃병 아니, 소주병 받힘 대가 되었다.
철가방도 두 가지가 있다.
수돗가의 철가방은 깊이가 깊어 요리접시를 넣을 수 있다.
실내의 철가방은 깊이가 깊지 않다.
짜장면과 짬뽕만 넣는 용도다.
옆의 구호가 적혀있는 액자는 알루미늄 창틀이다.
구호는 대부분 그리 되었으면 하는 것을 적게 되어 있다. 현재 착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적어 놓으면 지역 기관장이 수여한 표창장같이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착하지 않았던 순간도 저 구호를 붙여 놓았다는 것만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구호는 차카게에 열 시 미를 추가하였다.
초등학교 책상이다. 위에는 장동건도 쓰여있고 '민정이 미워'도 쓰여 있다.
두 개만 해도 충분할 텐데 도시에서의 크기에 대한 지향을 버리지 못해 네 개씩이나 두었다.
촌집의 식탁이 되었다.
탁자로 보이는 것은 가운데 구멍을 뚫어 개수대를 얹어 싱크대가 되었다.
고물상에서 오천 원 주고 산 대야, 구멍을 뚫어 물이 흐르도록 했다.
개수대의 기본인, 그릇을 실내에서 씻고 그 물이 하수구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기능에 충실하였다.
만들고 나서 많이 흐뭇해했던 기억이 있다.
화장실의 세면대도 같은 형식으로 만들었는데 이걸 본 마을 사람들에게서 얻은 나의 별명은
'대야 공장 하다 망한 사람"이 되었다.
초등학교 과학실험실의 탁자와 운동장에서 쓰던 벤치이다.
찾아오는 이들과 소주 한잔 하고 커피도 마시는 가든(?) 테이블이 되었다.
시골에서의 첫 베이스캠프였다.
2년 여 비어서 쾌쾌한 냄새 풍기다가 도시에서 온 중늙은이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물론 시골에서는 청년이다.
사람이 이상한 지라 촌집이 많이 피곤해했다.
그래도 잘 견뎌 주었다.
한 남자에게 마음의 고향집이 되었다.
떠난 지는 이제 좀 되었지만 반성할 때 한 번씩 찾아온다.
마지막으로, 혼자 걷는 이 남자는
다리가 다행히 튼튼하여
봉화의 농부로 재활용되었다.
쓰고 보니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서 불 켜진 후 화면으로 흘러가는 무슨 자막 같다.
촌집에서 처음 생활해 보며 필요한 집기들을 만들고 물건들을 고물상에서 구해 다른 용도로 사용해 보고 하던 그 시간은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막연하게 살아오던 삶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도 있었고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라는 의문도 가져 볼 수 있었다.
촌집에서 간절했던 기능이 충족되었을 때의 기쁨은 무척이나 컸다.
양곡리 촌집에서 머무르는 시간 동안,
나는 도시에서 막연하게 사 들였던 물건들에서 나는 그 비린내를
코 끝에서 겨우 지워버릴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