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싼다. 나는 현서를 바라본다. 차가운 공기가 마음에 드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현서의 눈은 카운터 위에 달린 노란색 조명을 쫓는다. 나는 아기띠 속으로 손을 넣어 현서의 등을 만져본다. 다행히 땀이 많이 나지는 않았다.
가방에서 토끼 무늬가 새겨진 천기저귀를 꺼내 현서의 다리를 덮는다. 천이 피부에 닿자 현서는 몸을 뒤척인다. 가슴팍에서 꼬물거리는 얇은 척추가 느껴진다. 제법 단단하다. 현서는 내가 냉기를 가로막은 것이 못마땅한지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마치 툴툴 대는 것 같다. 그러다 이내 가게 안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정신이 뺏긴다.
<어서 오세요. 스타벅스입니다.>
점심식사 시간이라 그런지 카페 안이 부산스럽다. 나는 행인들과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며 계산대 앞에 늘어선 사람들 뒤에 가서 선다. 날카로운 얼굴로 회사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회사원들이 아기에게 눈길을 준다. 현서가 웃어 보이자 그들은 곧장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손을 흔들어 보인다. 현서는 마치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두 손으로 손뼉을 짝, 짝 두 번 친다. 그리고 가까이에 서 있는 앳되어 보이는 여자에게로 손을 뻗는다. 현서의 손가락이 여자의 회색 정장 소매를 건드린다. 나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면서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사과한다.
<에이, 괜찮아요. 몇 살이에요?>
여자가 묻는다.
<이제 11개월이요.>
<아휴. 아직 1살도 안 됐구나. 아빠랑 놀러 나와서 너무 좋겠다. 재밌는 시간 보내 아가야!.>
여자는 허리를 굽혀 현서와 눈을 마주치며 웃어 보인다. 그리고 메뉴를 고르기 위해 카운터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나는 메뉴판에 적힌 음료를 하나하나 소리 내어 현서에게 읽어주며 계산 순서를 기다린다.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현서가 바닥에 떨어뜨린 쿠키 하나를 산다.
주문을 마치고 창가 근처에 있는 1인용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현서는 곧장 유리창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며 놀기 시작한다. 톡. 톡. 톡. 작고 무심한 소리지만, 그 소리가 사랑스러워서 머리가 멍해질 정도다.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현서가 만들어내는 진동에 귀를 기울인다.
전화가 울린다. 선희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현서 이유식 잘 먹었어?>
<응. 150ml 꽉 채워서 먹었어. 이제 토마토도 잘 받아먹네.>
<다행이다. 지금은 뭐 하고 있어?>
<그냥 혼자 잘 놀고 있어. 잠깐만.>
나는 전화를 스피커폰 모드로 바꾸고, 창 밖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는 현서의 볼 가까이에 가져다 댄다.
<현서야. 엄마 목소리 들어봐.>
아기가 킁, 하고 소리를 낸다.
<현서야! 엄마야! 현서 맘마 잘 먹었어? 이제 토마토도 잘 먹고! 지인짜 대단하다 현서!>
두 톤 정도 올라간 목소리로 선희가 말한다. 결혼 전이나 신혼 때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다. 현서에게 말을 걸 때 면 선희는 다른 목소리가 된다. 하지만 하나도 어색하거나 우스꽝스럽지 않다. 마치 그게 그녀의 진짜 목소리였던 것처럼 느껴진다.
현서가 작게 읍, 빠,라고 내뱉는다.
<어머머. 현서가 대답하나 봐?>
선희는 큰 소리로 외치고는 웃음을 터뜨린다. 선희의 웃음이 전화기를 넘어 커피 향을 타고 퍼져 나간다. 현서가 엄마를 따라 웃는다. 웃음이라기보다는 기침에 가까울 정도로 짧고 날카로운 소리다. 하지만 상쾌하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82번 고객님. 커피 나왔습니다.>
나는 다시 전화기를 통화 모드로 바꾸어 들고 몸을 일으킨다.
<뭐야. 카페 갔어? 집 앞에 거기 테이블 세븐 에어컨 잘 안 틀어줘서 더운데… 현서 괜찮아?>
선희가 묻는다. 어느샌가 그녀는 원래의 낮은 목소리로 돌아와 있다.
<응… 그래서 더울 것 같아서 스타벅스 왔어.>
<스타벅스? 어디에 있는?>
<양재역 근처에 있는 거기.>
<거기까지 갔다고? 이 더위에? 왜?>
나는 커피를 받아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하지만 선희의 물음에 바로 대답을 하지는 못한다.
<양재역 왜 갔냐니깐?>
선희가 재차 묻는다. 이제 그녀도 현서도 웃고 있지 않다. 선희의 음성이 미세하게 떨린다.
<사진 찍으려고.>
나는 대답을 하고 만다.
<사진? 무슨 사진?>
선희의 목소리가 커진다. 나는 회사 복도에 기대 서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을 선희를 상상한다. 엄지손톱을 앞니로 뜯고 있을 것이고, 제자리걸음을 하듯이 두 발을 번갈아가며 까딱거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복도를 오가는 교사들과 학생들을 피해 교직원용 화장실로 자리를 옮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모습을 떠올릴수록, 나는 더욱더 말을 고르기가 힘들어진다.
<아니. 사진 찍을 게 대체 뭐 있다고? 설마 현서 사진 찍으러…>
선희가 말을 멈춘다. 그녀가 숨을 참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녀는 몇 분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니, 몇 초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온몸으로 침묵을 견딘다. 현서가 앞에 놓인 커피잔을 잡기 위해 팔을 내민다. 나는 핸드폰을 들지 않은 쪽 손을 뻗어, 유리잔을 현서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민다. 현서가 짧게 투정을 내뱉는다.
<당신 정말…>
선희가 말한다. 생경한 목소리다. 마치 낯선 사람 같다. 선희는 울음을 삼키고 있다. 아마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얼굴을 천장을 향해 들어 올리고 있을 것이다. 울음을 참을 일이 있을 때면 선희는 언제나 고개를 들고 눈물을 견뎠다.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고, 첫아기가 뱃속에서 열 주를 못 채웠을 때도 그랬다.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고, 몇 분 후에 그녀는 다시 교실로 돌아가 학생들을 마주해야 한다.
<당신은 진짜… 개새끼다 개새끼.>
그녀는 음절 하나하나를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뻗어나가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져서 오래된 먼지처럼 가라앉는다. 나는 그녀가 흘린 낱말들을 긁어모아 두 손에 모아 든다.
햇볕의 방향이 바뀌어 햇살이 현서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나는 자세를 돌려 등으로 햇살을 막는다.
<씨발새끼…>
선희의 단어가 귀에 도착하고, 곧이어 전화가 끊긴다. 선희의 입술에서 나온 욕이 어색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 같다. 말없이 연구실을 그만두었을 때도, 그만둔 이유를 말했을 때도,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였을 때도, 선희는 그저 울 뿐 화를 내지 않았다.
전화 앱이 꺼지면서 핸드폰 화면이 배경화면으로 바뀐다. 카시트에서 잠들어있는 현서의 옆에서 선희가 밝게 웃고 있다. 산후조리원을 나설 때 찍었던 사진이다. 그날은 오전 내내 카시트의 굴곡진 곳에 천을 덧대면서 보냈다. 작게 태어난 아기라 카시트를 불편해할 것이라는 걱정과 달리, 현서는 카시트에 등을 대는 순간 바로 잠들어버렸다. 나는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온도를 맞추고, 아주 천천히 차를 몰았다.
집으로 가는 동안 선희는 핸드폰으로 조리원에서 찍었던 현서의 사진을 정리했다. 그러다 잠깐 4거리에서 차가 멈추었을 때 내가 찍은 사진이 그대로 나와 선희의 핸드폰 배경화면이 되었다. 현서는 잠들어 있고, 선희는 노곤한 미소를 지으며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둘을 태우고 집으로 가는 중이다. 사진을 크게 확대해 보면, 선희의 갈색 눈동자에 비친 나의 오른쪽 뒷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현서가 짜증을 낸다. 다시 온 힘을 다해 상반신을 커피가 든 유리잔을 향해 뻗는다. 나는 가방에서 치발기를 꺼내 현서의 손에 쥐어주려고 하지만, 현서는 단호하게 내팽개친다.
<안 돼 현서야. 유리잔은 위험해.>
아기가 알아들을 리 없다. 오히려 현서는 더 강하게 팔을 버둥거리기 시작한다. 점점 입술 끝이 밑으로 처지고, 검은색 속눈썹을 따라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자, 현서야. 이 거 봐 봐. 아빠랑 하늘 봐 볼 까?>
나는 현서의 눈앞에 집게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시계 방향으로 흔들어 보인다. 그러다 현서의 시선이 내 손에 머무는 바로 그 순간,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킨다. 자연스럽게 현서의 눈이 천장을 향한다. 이제 나는 그대로 손을 천장을 향해 뻗어 보인다.
<현서야. 저게 뭘까? 저기 동그란 거 보이지?>
나는 카페 천장에 있는 큼지막한 원형 조명을 따라 손으로 원을 그려 보인다.
<동그라미다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도옹 그라미이이. 현서야 재밌는 이야기 해줄까? 자, 들어봐. 옛날 옛날에 하늘나라에 동그라미가 살았어요.>
나는 말이 빨라지지 않게 신경 쓰며, 현서의 반응을 살핀다. 그리고 손바닥을 접었다 폈다 하며 형광등 불빛을 가렸다 보였다 한다.
<하늘나라의 동그라미는 깜빡깜빡거려요. 현서야. 깜빡깜빡. 깜빡깜빡.>
현서가 눈가에 눈물을 그대로 머금은 채로 웃기 시작한다. 까르르 웃는 건 아니지만, 두 볼이 볼록해지고, 입꼬리도 올라간다. 나도 미소를 짓는다.
<자. 이번에는 다른 거 보러 가볼까? 옛날 옛날에, 네모 네모도 살았어요.>
나는 이제 천장으로 뻗은 손을 움직여 가게 정 중앙에 매달려 있는 정사각형 시스템 에어컨을 가리킨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에어컨 테두리를 따라 네모를 그린다.
<네모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나와요. 슈우웅. 슈우웅.>
나는 손가락을 빠르게 살랑 거리며 손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마치 바람에 날리는 연처럼. 그러다 팔을 흔들며 손을 천천히 내려 현서의 코 끝을 간지럽힌다. 현서는 내 손 끝과 천장을 번갈아 본다. 그러다 비로소 까르르하고 웃음을 내뱉고는, 기분 좋은 기지개를 켠다. 속눈썹 끝에 눈물 이슬이 맺혀 있다가, 현서의 미소에 맞추어 아래로 떨어진다.
현서가 위를 보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서가 건강하게 태어났을 때, 나는 어린이가 된 현서와 천문대에 가는 상상을 했었다. 현서가 망원경에 눈을 가져다 대면, 나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맨 눈으로 밤하늘을 봐보라고 권할 것이다. 현서가 어린이 과학잡지에서 본 내용들을 말하면, 나는 거기에 덧붙여 별자리에 사이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이제 나는 현서와 함께 천문대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내년이 되면 나는 여전히 땅 위에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겠지만, 현서는 내가 바라보는 별과 별 사이를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틈이 날 때마다 현서와 하늘과 천장을 바라본다. 현서가 하늘과 별에 익숙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천장에서 동그라미를 찾고, 네모를 찾고, 세모를 찾는다. 밖에 나가서는 구름을 본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이른 시간에 뜬 별이나, 횡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인공위성을 구경한다. 현서는 아직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않지만, 하늘만큼은 같이 바라보아 준다.
갑자기 주위가 시끄러워진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도 시간을 확인한다. 1시다. 나는 주위가 한적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고는 카페를 나선다.
오후가 되니 거리가 더 뜨거워졌다. 나는 해를 등지고, 가급적 늘어선 가게의 차양 그늘 밑으로 파고들며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현서의 손에는 미리 새우깡 모양 떡뻥을 쥐어준다. 현서는 과자를 단숨에 얼굴로 가져가지만, 입에 넣는 것에는 실패한다. 손가락에서 빠진 과자가 아기띠에 걸리고, 나는 그것을 들어 조심스럽게 현서의 입술에 가져다 댄다.
오렌지색 간판이 인상적인 멋들어진 베이커리를 끼고 돌자, 조금 전에 봐 두었던 사진관이 눈에 들어온다. 세련된 느낌의 글자 모양 네온사인 간판을 달고 있음에도 어딘가 낡은 인상을 주는 가게다. <명선 사진관>이라는 상호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한 셀프 사진관이 레트로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사진관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관’이라는 낱말은 오래된 느낌을 준다.
나는 유리문에 달려 있던 ‘점심시간’ 팻말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후, 문을 열고 사진관 안으로 들어간다. 생각보다 훨씬 공간이 좁다. 방이라기보다는 짧은 복도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구조다. 출입문 맞은편에 흰색 시트 배경이 깔려 있는 촬영공간이 있고, 건물 외벽 쪽 유리문 옆 공간에 작업용 컴퓨터가 놓여 있다. 벽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가족사진과 프로필 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그중 몇몇은 조금 색이 바래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신뢰감과 안정감을 준다.
<어서 오세요.>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나른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일어난다. 낮잠을 청하던 중이었는지 두 눈이 붉다. 남자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는 기지개를 켠다. 걸치고 있던 후드티가 위로 딸려 올라가며 살집이 있는 배가 살짝 드러난다.
<아기 여권 사진 찍으러 왔는데요.>
남자는 그제야 아기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현서를 보고 눈썹을 으쓱거린다.
<아. 아기 여권 사진이요? 네. 가능하죠. 이 쪽으로 오셔서 잠시 앉아 계세요.>
남자는 나를 가게 안 쪽에 있는 2인용 소파로 안내한다. 그는 밝은 녹색 계열의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지만, 머리에는 흰머리가 성성하고 미간과 이마에는 주름이 선명하다. 중년이라기에는 민망하고, 장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나이처럼 보인다. 남자는 나른한 움직임으로 꺼져있던 조명을 켜고, 삼각대의 위치를 낮춘다. 그러면서 나지막이 ‘여권 사진이라…’ 라며 혼잣말을 한다.
나는 현서의 반응을 살핀다. 현서는 나이가 있는 남자를 보면 영락없이 울음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진관이 주는 묘한 고요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여념이 없다.
<아기가 물건 잡고 서 있을 수 있어요?>
남자가 흰색 시트지 뒤에서 커다란 토스터기를 연상시키는 흰색 구조물을 들고 나오며 묻는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남자는 다행이라고 말하며 갖고 온 구조물을 촬영 위치 중간에 내려놓는다.
<자. 여기 안에 세워 주시면 됩니다.>
나는 아기띠를 풀고 현서를 한쪽 팔 위에 앉힌 채로 남자가 가져다 놓은 구조물로 다가간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무게감이 느껴지고, 얇은 틈처럼 보였던 부분도 제법 널찍하다. 나는 아기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하며 틈 속에 현서를 내려놓는다. 현서는 오래간만에 발이 땅에 닿은 것이 기쁜 듯 아랫니 두 개가 환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활짝 웃어 보인다. 그리고 두 팔로 구조물을 잡은 채로 두 눈을 반짝인다.
<자. 거기 서 계시다가, 신호를 드리면 제가 있는 쪽으로 살짝 빠지세요.>
남자가 카메라 화면을 들여다보며 신중하게 손을 움직인다. 그러다 ‘지금’이라고 낮게 외치고, 나는 그의 신호에 맞추어 두 걸음 뒷걸음질을 친다. 셔터음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오케이. 됐습니다. 아기 안아주셔도 됩니다.>
남자는 카메라를 들어 올려 화면을 눈 가까이에 가져간 다음 촬영 결과물들을 확인한다. 준비부터 촬영까지,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내가 현서를 안아 들고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남자는 컴퓨터 앞으로 가서 현서의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고 있다.
<이리 오셔서 한 번 봐보세요… 아, 그전에.>
남자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쑥스럽다는 듯 책상 위에 올려 둔 카메라 렌즈를 만지작 거리며 말한다.
<촬영이 너무 쉽게 끝나서 말이죠. 그렇다고 돈을 안 받는 건 좀 그렇고. 아버님도 앉아보세요, 제가 서비스로 아버님 여권 사진도 같이 찍어 드릴 테니까.>
나는 감사하지만 괜찮다며 손을 내젓는다.
<그러지 말고. 한 장 찍으세요. 어차피 여권 만드시려면 따로 찍으셔야 할 텐데.>
<저는 여권 쓸 일 없을 것 같아서… 괜찮아요.>
대답하자마자 후회가 밀려온다. 별 다른 이유도 없이 말끝이 길어지는 것이 최근에 생긴 나쁜 습관이다.
<아기랑 같이 안 가요?>
남자가 묻는다.
<사정이 있어서요.>
나는 가볍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단어를 선명하게 발음한다.
남자는 흐음, 하고 알 수 없는 신음을 내뱉는다. 하지만 더 이상 권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현서의 사진을 편집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부지런히 마우스를 움직인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나는 소파에 앉아 현서의 손에 과자를 쥐어주고, 아기용 물컵의 빨대를 물려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있는 현서의 얼굴을 바라본다. 남자는 현서의 왼쪽 볼에 있는 모기 물린 자국을 지우고, 침독으로 빨개진 현서의 오른쪽 턱의 명도를 높인다. 그리고 채 빠져나가지 못한 채 화면 끝자락에 남아있는 내 티셔츠를 프레임 바깥으로 빼낸다.
<사람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가급적 가족 여행은 꼭 같이 가세요. 혼자 남는 것도 습관입니다.>
남자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마땅한 대답을 고르지 못한다. 여전히 남자의 두 눈은 자신의 작업물에 고정되어 있고, 그의 손가락은 바쁘게 마우스를 움직인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나가던 게 어느 순간 1주가 되고, 한 달이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아차 싶어서 ‘나도 같이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이미 지 엄마랑 유학 갈 준비를 마친 뒤였어요.>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는 상황이 신기한지, 현서는 과자를 오물거리는 입을 멈춘 채, 남자를 바라본다. 나 역시 그의 등을 본다.
<그렇게 나간 지가 벌써 5년 째네요. 그렇다고 신문 사회면에 나오는 것처럼 사이가 안 좋고 그런 건 아니에요. 방학 때만 되면 한국 들어와서 같이 바다도 가고, 캠핑도 가고 그러고 있죠.>
그제야 남자는 나와 현서를 향해 몸을 돌리고는 가까이 와서 보라며 손짓을 한다. 나는 남자의 뒤에 서서 현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권 사진을 확인한다. 티 없이 맑은 얼굴이다. 나는 보정사진과 함께 원본사진도 받고 싶다고 말한다. ‘아무럼요. 당연하죠.’ 남자가 웃으며 말한다. 남자의 눈이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부드러워져 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더 피곤해 보인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를 못했어요. 올 해에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다음 달에 제가 캐나다로 가야 하는데… 딸내미가 올해 고등학교 입시가 있다고 해서, 그냥 내년 여름에 만나기로 했어요.>
<네…>
속이 메스꺼워진다. 마치 밤을 새우고 커피를 연달아 두 어 잔 들이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속으로 계속 같은 말을 되뇐다. ‘참아야 돼. 참아야 돼. 참아야 돼.’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내뱉는다.
<저기 사장님. 가능하시다면 그냥 올해 안에 캐나다 한 번 다녀오세요.>
<올해 안에?>
<네. 요즘 교통이 좋아져서 며칠이면 다녀오잖아요.>
남자는 재밌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에이. 저도 바쁜 사람입니다. 뭐, 생각은 해볼게요.>
그는 내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진 듯 콧노래를 부른다. 나는 그에게 사진은 내일 찾으러 오겠다고 말한다. 남자는 알겠다고 한다. 나는 남자의 배웅을 받으며 사진관을 나선다. 어느새 남자의 눈에서는 졸음기가 사라져 있다.
사진관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조금 전에 마셨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근처 전봇대 밑에 모두 게워낸다.
**
빌라 앞에 선희의 오래된 하얀색 아반떼가 주차되어 있다. 퇴근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자동차를 가리키며 ‘엄마차다 엄마차’라고 작게 말한다. 현서도 자동차 운전석에 달린 작은 토끼 인형을 알아보고 미소를 짓는다.
나는 현서가 흥미를 잃을 때까지 자동차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현서는 골목 화단에 자리를 잡은 길고양이 가족을 구경하고, 나는 선희와 나눌 말들을 생각한다. 이내 날이 어두워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빛이 흩뿌려진 저녁 하늘은 검다기보다는 오히려 하얗다. 빨간빛을 깜박거리는 인공위성이 하늘을 남북으로 가로지른다. 나는 건물 사이로 인공위성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다.
<현서야. 저거는 인공위성이라는 거야. 빨간색 별 같은 거야. 아주 아주 멀리 있는 거야.>
현서는 나를 따라 고개를 치켜들었다가 이내 근처 미용실의 화려한 입간판에 시선을 뺏긴다. 그러다 돌연 짜증을 낸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어느덧 이유식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집은 바깥보다 더 어둑하다.
<나 왔어.>
나는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집안으로 들어간다. 불이 모두 꺼져 있다. 현관과 가장 먼 자리에 있는 옷방에서만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온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선희야 현서 왔어.>
나는 신발을 벗으며 다시 한번 선희를 부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이내 소리가 이어진다. 서랍장 여닫는 소리 사이사이에 선희의 옅은 한숨이 박혀있다.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식탁 위에 내려 두고 아기띠를 푼다. 현서의 양말을 벗기고, 양말자국이 난 현서의 발목을 손으로 잠깐 주무른다. 그리고 현서를 한쪽 팔에 올려 안고는, 옷방으로 간다.
현서는 선희의 등이 보일 때부터 함박웃음이다. 엄마의 모습이 드러나자 현서가 ‘꺅’ 하고 짧고 경쾌한 비명을 지른다. 선희가 뒤를 돌아본다. 선희도 현서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선희는 이불을 정리하던 중이다. 들고 있던 홑겹이불을 바닥에 내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서 현서를 받아 든다.
<현서야. 잘 놀다 왔어? 재밌었어? 오늘 뭐 하고 놀았어요? 엄마가 우유 줄게. 우리 우유 먹고 또 놀자.>
선희는 현서를 받아 안고는 나를 지나친다.
<너는, 저녁 먹었어?>
내 물음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현서와 함께 자리를 뜬다. 나는 옷방에 남아 이불을 갠다.
<여름 이불 서랍에 넣지 말고 놔둬. 밤에 갖다 버릴 거니깐.>
선희가 우유를 타며 말한다.
나는 이유를 물으려다 입을 다문다. 덮을 일이 없으니 버리는 편이 맞긴 하다. 이제 지구에는 더 이상 8월이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와 현서와 선희가 보냈던 오늘 저녁은, 우리가 맞을 수 있는 마지막 8월 29일이다.
선희는 식탁 위에 있는 노란색 알조명만 켠 채로 현서에게 이유식을 먹인다. 토마토가 혀 끝을 스치자 현서가 부르르 몸을 떤다. 그래도 맛이 나쁘지는 않은지 선희가 내민 실리콘 숟가락 끝을 아기새처럼 꽉 깨문다.
<유아식 같은 건 준비 해준대?>
선희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은 채로 묻는다.
<2년 치 정도는 준비될 거래. 현서 말고 다른 아기도 한 명 있고…>
<어느 나라?>
<미국이겠지.>
선희는 대답 없이 손을 움직인다. 숟가락을 내려두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차피 몇 번 먹이지도 못 할 거. 밥은 당신이 먹여.>
그리고 다시 옷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선희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현서에게 소고기토마토죽을 먹인다. 현서가 음식을 삼킬 때마다 나도 같이 침을 삼키면서…
**
정규직 전환을 위해 쫓기듯 투고한 논문이었다. 단순한 관측 사실의 나열이었고, 퍼블리시가 된다고 해도 아무도 보지 않을, 그저 그런 연구였다. 그래서 논문을 보았다며 버클리에 교수직을 얻은 영태에게 전화가 온 순간에 오히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영태는 피상적인 인사 몇 마디를 건네고는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이번에 투고한 논문 말인데, 혹시 다른데도 발표한 적 있어?>
<아니, 급하게 낸 거라 없는데? 근데 네가 어떻게 알아? 혹시 피어 리뷰가 너한테 갔니?>
영태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영태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는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몇 주 뒤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연달아 네다섯 통이 와서 전화를 걸었더니 영태였다. 미 국방부에서 내 논문의 발표를 금했다는 내용이었다.
**
저녁 식사를 마친 현서를 안아들고 곧장 화장실로 향한다. 옷과 기저귀를 벗기고 유아용 욕조에 앉힌다. 따뜻한 물을 틀자, 현서가 반사적으로 샤워기 헤드에 손을 가져다 댄다. 실오라기처럼 뽑혀 나오는 물줄기가 신기한 모양이리라. 현서가 흐르는 물에 정신을 뺏겨있는 틈을 타서 재빨리 머리를 감긴다.
밖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화장실 거울을 통해, 75L짜리 쓰레기봉투에 물건을 집어넣고 있는 선희를 본다. 선희는 이불을 집어넣고, 산후조리원에서 자신이 만들었던 종이 모빌과 초점책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매번 버리려고 벼르기만 했던 오래된 내 전공책들을 그 위에 얹는다.
<버려도 되지?>
선희의 물음에 나는 ‘응’이라고 덤덤하게 답한다. 실제로 별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애초에 천문학을 전공으로 택했던 것도, 마침 학과 행정처로부터 그쪽으로 장학금이 융통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충 몇 년 버티면서 졸업하고 취업을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관성으로 대학원까지 가게 되고, 어느새 업으로 삼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좋은 연구자였냐면 별로 그렇지 않았다. 한창 연애할 때, 선희는 내가 ‘어디에 있건 애매하고, 언제나 어색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뭐든 무 자르 듯 끊어내고 매듭짓지 못하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문제는 일을 할 때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내가 낸 논문들은, 나 자신이 보기에도 항상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열정을 갖고 임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신답지 않게 왜 그렇게 결정을 빨리 내린 건지 모르겠어.>
모든 것을 말했을 때, 선희는 이 말만 남기고 두 시간 동안 울기만 했다. 그러면서 횡설수설했다. 가족들은 어떡하지? 정말 방법이 없는 거야? 우리 현서는 어떡해? 현서 불쌍해서 어떡해? 차라리 안 낳았으면 좋았을 걸. 현서가 안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애초에 결혼을 안 했더라면. 애초에 당신을 안 만났더라면. 그러면 다른 사람들처럼 마지막까지 모르고 있다가 편하게 죽을 수 있었을 텐데…
논문 발표가 금지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내가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느꼈던 사소한 위화감의 정체를 알았다.
<얼마나 남았는데?>
내가 묻자, 영태는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러면 바로 다음 달에 있는 국내 포럼에서 모든 데이터를 풀겠다고 말했다. 영태는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또다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나는 이번에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내년 7월 15일 새벽 2시.>
구체적인 날짜를 알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여름방학 즈음이네.>
<여름방학 즈음이지.>
내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하자, 영태는 잠깐 기다려 보라며 내 말을 가로막은 뒤, 천천히 뒷말을 덧붙였다.
<미국에서 충돌 한 달 전에 탈출용 우주선을 쏠 거야. 공표하는 건 그 뒤다.>
<우주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너도 태울 수 있게 해 주겠대. 두 명.>
나는 나이 제한이 있냐고 물었고, 영태는 너무 많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며칠 내로 집으로 사람이 갈 거야. 자세한 설명은 그때 들어.>
선희에게 말을 한 것은 모든 절차가 끝난 뒤였다.
<절대 안 탈 거야. 나도, 현서도.>
선희가 말했다.
**
8시가 넘은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집 안의 불을 모두 끈다. 나는 현서를 안고 아기방으로 들어간다. 선희가 미리 틀어둔 자장가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나는 현서를 범퍼침대 중간에 눕히고, 그 옆에 앉는다. 현서가 버둥댄다. 현서의 시선은 문 밖을 향하고 있다. 심통이 나있다. 한창 재밌게 놀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장난감을 치워버린 아빠가 야속한 모양이다.
<현서야 현서야. 이 것 봐봐. 아빠랑 하늘 보자.>
나는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킨다. 다이소에서 사 온 2000원짜리 스티커로 만든 오리온자리와 물병자리, 사자자리와 그 위에 그려놓은 쌍둥이자리를 손가락으로 훑는다.
<현서야 저거는 별이야 별. 반짝반짝 하지. 반짝반짝. 깜빡깜빡.>
나는 검지 손가락을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며, 현서에게 별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부분은 내가 지어낸 이야기다. 낮에 갔던 카페와, 캐나다에 사는 딸을 둔 사진관 아저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언제나 엄마가 나온다. 항상 현서가 사자와 전갈을 물리치고 선희를 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점점 현서의 목과 허벅지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현서는 내 왼쪽 손바닥을 베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현서의 눈동자만이 반짝인다. 현서는 입을 조금 벌린 채, 숨을 고르게 쉬면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 현서의 머릿속에서 무슨 영상이 재생되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음에도 현서는 잠들지 않는다. 내가 손을 내리자, 현서가 내 손을 잡고 위로 뻗는다. 나는 다시 손가락으로 별자리를 따라 그리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번에는 옛날이야기다. 나는 태교여행으로 갔던 부산에 대해 설명하고, 결혼식날 한복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진땀을 흘렸던 이야기를 한다. 해삼, 양고기, 미더덕과 같이 선희가 먹지 못하는 음식들에 대해 말한다.
문이 열리고, 선희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현서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는다. 나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는 난생처음 갔던 스키장에 대해 말한다. 선희와 첫 데이트로 갔던 냉면집의 비빔냉면에 대해 묘사한다. ‘그때 만두도 먹었던가?’ 내가 묻지만 선희는 대답하지 않는다.
현서는 잠들지 않고 야광 스티커로 만든 별을 바라본다. 나는 들고 있는 팔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별자리를 따라 그린다. 선희는 그런 나를 지나 현서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나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샌가 내용은 중요하지 않아 진다. 나는 떠오르는 낱말들을 나열한다. 현서가 잠들 때까지 끊기지 않고 채우는 것. 오직 그것에만 집중한다. 현서가 별과 별 사이를 보며 그 사이를 나의 목소리로 채울 수 있도록. 그래서 방열복과 우주 소음 때문에 선희의 손과 자장가가 닿지 못할 때, 현서가 유리 너머로 보이는 별을 보며 조금이라도 편안함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 잠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