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실화입니다.
10년쯤 전, 서울특별시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 앞에는 리베호프라는 꽤 규모가 큰 술집이 있었습니다.
서로 옆구리를 맞대고 있는 두 개의 프랜차이즈 음식점 사이로 난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척 보기에도 개강 모임이나 동아리 총회를 하기에 좋아 보이는 널찍한 공간이 나옵니다. 샹들리에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조명과 붉은색 소파가 인상적인 가게였습니다. 하지만 개강 모임이나 동아리 총회를 하기에는 가격대가 꽤 높았지요. 그래서 특별히 축하할 일이 있거나, 주머니 사정이 좋은 선배들이 많은 때에만 갈 수 있었던 가게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오랜 기간 동안 서울대입구역 주점계의 한 축을 이루던 리베호프는, 어느 날 거대한 프랜차이즈 PC방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2016년, 혹은 2017년 가을 바로 그 PC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정확한 날짜를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제 기억력이 좋지 못한 탓입니다. 삶의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또 그냥 잃어버린 채로 살자는 마음을 갖게 된 이후로는, 정확한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참으로 어렵고도 하찮은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2016년, 혹은 2017년 가을에 저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의 모 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석사를 반쯤 그만둔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반쯤’의 의미는 반쯤 그만둘 마음을 먹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그만둔 상태였지만 가족 및 지인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때 저는 관악구청 뒤로 뻗어 있는 모텔촌 사이에 있는 한 연립주택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낡고 습기가 가득한 방이었지만, 방 안에서 담배를 펴도 뭐라고 하지 않던 관리인 아저씨와, 환기를 포기하는 대신에 단열을 획득한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건물이었습니다.
제 통장에는 조교 일과 단기 과외, 그리고 정읍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호주머니에 찔러준 용돈을 모아 만든 몇십만 원 정도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대로 침대에 누운 채로 핸드폰으로 주식을 하거나 웹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라면을 하나 깔끔하게 빨아 당긴 다음에 자취방을 나섰습니다.
마땅히 갈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 안에서 24시간을 보내는 것은 흡연자인 저에게 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처음에는 학교 중앙도서관에 가서 철학책이나 슬램덩크를 읽었습니다. 그러다 음악감상실에 가서 이름 모를 클래식을 들으며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은 자취방에서 너무 멀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노는 일은 드는 품에 비해 즐거움이 너무도 작았어요. 수지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위로 저는 매일의 출근 장소를 옛날 옛날 리베호프가 있던 자리에 새로 생긴 대형 PC 방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에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출시한 <오버워치>라는 게임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매칭된 6명의 팀원들이, 십여 개 정도 있는 게임 캐릭터 중 하나를 골라서 상대방 팀과 총싸움을 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순전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꽤 쏠쏠한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게임 한 판이 짧게는 3분, 길어도 30분 이내로 끝난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PC방에서 수십 판을 하더라도 그날 집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있었던 그날도, 저는 <오버워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마우스와 키보드를 놀려 상대방 캐릭터를 향해 총을 쏘거나, 지뢰를 던지거나, 망치를 휘둘렀습니다. 혹은 우리 팀 캐릭터를 보호하기 위해 방패를 들거나, 치료를 하거나, 보호막을 설치했습니다. 저는 시간을 쏘고, 미래를 던지고, 어느새 아주 아주 옅어진 인생에 대한 열정을 불쏘시개처럼 휘두르며 게임을 즐겼습니다.
게임에서 지면, 강의에서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다 더 화가 났습니다. 게임에서 이기면, 첫 조교비로 어머니를 모시고 호텔 뷔페에 갔을 때 보다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버워치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기계음이 헤드폰을 타고 귓속으로 흘러들어올 때면,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늪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때때로 무거운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게이밍 의자에 붙어있는 제 엉덩이살을 뜯어낼 만큼 무겁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날도 저는 PC방에서 열심히 <오버워치>를 했습니다. 하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내리 몇 판을 손 쓸 틈도 없이 졌기도 했거니와, 같은 팀으로부터 게임을 못한다며 잔뜩 욕과 잔소리를 얻어먹었기 때문입니다. (왜 게임 못한다는 말은 이토록 화가 나는 것일까요?) 종국에는 ‘이래서 대학은 가겠냐’는 말까지 듣고 혼자서 눈물을 흘릴 뻔하기까지 했습니다. 나름 서울대학교 대학원까지 입학한 사람인데 말입니다.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큰맘 먹고 해가 지기 전에 PC방을 나설 결심을 했습니다. 게임을 종료한 후 바로 컴퓨터에서 로그 아웃 하려다, PC방 컴퓨터 메인 화면에 떠 있는 식음료 메뉴를 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화면 좌상단에 떠 있는 짜파구리 사진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때마침 저녁시간이기도 하고, 또 어차피 집에 가봤자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똑같았기 때문에, PC방 안에서 끼니를 때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마우스를 움직여 짜파구리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현금으로 결제하기’를 클릭했습니다.
몇 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갓 성인이 된 것처럼 보이는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파구리와 단무지를 들고 제 자리로 왔습니다. 저는 키보드를 모니터 밑에 밀어 넣어 공간을 만들고, 받아 든 짜파구리 그릇을 마우스 장패드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에게 만 원짜리를 건네었습니다. 그는 거스름돈을 가져다주겠다며 자리를 뜨더니, 빈 손으로 다시 제게 돌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잔돈이 없어서요. 다른 직원이 편의점으로 바꾸러 갔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저는 그에게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짜파구리를 먹기 위해 젓가락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카운터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혹시, 매미가 왜 우는지 아세요?”
저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어느 가을날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에서 들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대로 얼어붙어 있자, 그는 재차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매미가 여름에 왜 우는지 아시나요?”
그제야 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보았습니다. 그는 작고 마른 체구의 남자였습니다. 당시 고등학생들이 많이 하던 투블록 머리를 하고 있었고, 양 쪽 귀에는 사각형 형태의 검은색 피어싱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떠올려 보아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척이나 짙은 검은색 눈동자를 갖고 있었습니다.
매미가 웃을 수는 없으니 우는 거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하하, 하고 짧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무료한 일상을 달래기 위해 손님에게 농담을 던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니요. 아닙니다.”
그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몹시도 진지한 표정이었습니다. 그의 진지함에 압도되어서 저 역시도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말았습니다.
“여름에 우는 매미는 대부분 수컷입니다.”
그가 높낮이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점점 상황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코 앞에 짜파구리가 있었지만,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우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말 한 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알겠냐는 듯 눈썹을 한 번 으쓱해 보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요.
“하지만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두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상태였고, 체구도 왜소했으며,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치 막다른 골목에서 깡패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이야기가 하나도 재미없었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움직이지 않은 채 눈을 움직여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PC방에는 손님이 제법 많았습니다. 다들 각자의 게임에 몰두해 있었지요. 저는 제가 소리를 내면 그들이 저를 도와줄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았습니다.
“고대의 매미는 아주 아주 작은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짝을 만나는 것은 순전히 운의 몫이었습니다. 우연히 암컷의 눈에 발견된 수컷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었지요.”
짧은 미소가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제 주변으로 서서히 얇은 막 같은 것이 흘러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PC방에 있었지만, 좁은 유리방 안에 있는 것같은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수컷이 큰 소리를 내게 된 것입니다. 그 수컷은 상대적으로 쉽게 짝을 만날 수 있었지요. 그렇게… 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지요.”
그는 무슨 말인지 알겠냐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고,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 여기가 재밌는 부분입니다. 큰 소리로 짝을 부를 수 있게 된 매미는 점점 더 큰소리를 내는 쪽으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매미가 해부학적으로 더 큰 소리를 만들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답니다. 말하자면, 상향평준화가 되어버렸다고나 할까요.”
짜파구리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고, 거스름돈을 바꾸러 간 직원은 기약이 없었습니다.
“결국 현대의 매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서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수컷이 암컷 매미에게 선택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그 순간 유니폼을 입은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을 들고 제게로 왔습니다. 군대 면회 때 봤던 어머니보다 그가 더 반가웠습니다. 그는 제 앞을 지키고 있는 동료를 지나치고 저에게 거스름돈을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감사를 표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짜파구리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저 그곳을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정답은… 운이 좋은 수컷입니다. 재밌지 않나요? 수 만 년 동안의 진화의 결과가, 결국 처음과 똑같다는 것이…”
그는 제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을 끝맺었습니다. 저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PC방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로 기어들어갔습니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어있었습니다. 저는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저는 무언가 기묘한 느낌이 들어서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자취방을 구석구석 둘러보았습니다. 이전과 다를 바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하룻밤 사이에 전혀 가본 적 없는 낯선 장소로 이동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