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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나무 Jul 07. 2023

한국사회 고착화 된 식민지 노동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왜곡 기원을 찾아서...

한국사회 연장된 식민지 구조화


한국사회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어떤 때는 더럽고 아니꼽고 치사한 일을 당해도 침묵해야 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영화 "다음소희"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여러 노동이 있지만 힘들고 어려운 노동에 대해서는 가장 취약한 계층의 몫으로 돌리고 이를 외주화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험의 외주화라고도 하는 이러한 구조의 확산은 근본적으로 회사의 목적이 이익이지만 그 이익중 자본과 관리자 계층 이익만을 위해 위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즉 외주화 되어 저임금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이익을 나누는 대상이 아닌 부품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한국사회 노동과 경영 문제의 근원에는 식민지 노동과 경제 구조의 연장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한다.



전체주의 통제 방식 식민지 노동


조지오웰 1984와 같은 소설이 세상을 담은 인문학 소설로 보인다면 우리 현실과 연결해 생각해 보자.

소설 속 세계와 우리가 사는 세상 구조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예로서 소설 속 빅브라더는 감시만이 아닌 대중에게 큰 스크린을 통해 대중들에게 분노의 시간을 통해 세뇌시키는 장면은 오늘날 권력과 유착된 언론대중들을 움직일 수 있으며, 대중의 자유를 억압할 힘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 현상을 보여준다. 또한 기득권에 반항하는 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사상검증을 한다.


그것은 주로 색깔론을 활용하는데 사실 논리적으로 말은 안 되어도 색깔을 뒤집어 씌우면 중세 마녀사냥처럼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 여전히 남아있는 국가보안법으로 노동자를 빨갱이로 몰아내는 마녀사냥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906307

어쩌면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북한,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유교적 특징과 사무라이 권력에 의한 복종하는 신념체제는 그 사회를 전체주의 성향 국가로 만들기 용이하다. 따라서 전체주의 특성은 주로 교육분야와 노동분야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 안의 전체주의 성향을 벗어내고 스스로 목소리 내는 개인이 되어야 한다.



일제에 부역하던 자들이 자본을 독점하다


오늘날 한국사회 기득권층의 속성은 식민지성을 가지고 전체주의성을 조장한다고 봐야 한다.

그 이유는 한국사회는 해방 후 한 번도 친일 청산 된 적 없고 그들이 계속적으로 한국사회 제도를 운영하는 살아있는 권력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후 100년이 지났지만 많은 행정, 재정 관료들은 일제강점기 제도와 특성을 그대로 이어 왔으며, 일제 강점기 전쟁 중 조선인들에 대한 노동 인권 착취는 오늘날  노동자들에게도 유효하다.

강제동원 노동자 상

예를 들어 노조 파업과 노조가 경영자에게 권리를 주장하면 빨갱이로 몰린다. 그런데 한국의 자본가들은 본질적 성장에 대한 노력 보다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맥락적 연결도 없는 빨갱이란 의미를 부여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빨갱이 프로파간다로 권력을 이어온 한국사회 천박한 친일 자본 속성과 밀접한 연관이 크다.


한국사회 자본의 근원은 미군정시대 가장 노른자위 명동땅을 하사 받은 영락교회 청년들과 낙랑클럽이화여대 여인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들이 한국사회 주류경제 세력이 되면서 매우 극우적 관점을 가진 경영계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일하면서 일본인들보다 더욱 악랄하게 조선인들을 관리하던 조선인 재산관리인으로서 해방 이후 적산기업을 이어왔고 일제강점기부터 조선인을 착취하던 방식 그대로 사업을 이어오면서 이들의 의식은 뼛속까지 일본제국주의 속에 살고 있거나 현재도 정신적 고향은 일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현재도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침략국가 회사 사용주와 식민지 노동자 관계는 비대칭일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강제노동자 같은 비정상 노동이 일상이었다.

이들에게 대중들은 식민지 피지배층인 것이다. 그러한 증거는 이들이 집권하고 만드는 기득권 위주 정책을 보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온 제도와 의식


일제 강점기 일본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조선인 노동자가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조선인을 일본화하고 이에 불복종하는 조선인들에게는 자유를 속박할 수 있는 사법권력을 통해 억누르고자 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피지배 조선인들의 노동을 강제하고 통치하던 치안유지법과 이들을 기소하고 감옥에 가두는 사법시스템일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에 대한 기본적인 통치수단은 우리 역사 속 많은 사건들을 통해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볼 수 있다.


대중의 자유를 억압할 힘인 국가보안법을 통해 일제강점기 식민지성 유지 수단으로 전체주의 시대였던 군사독재시대 잘 이용되었고, 민주정부를 지나며 거의 사문화되었다가 다시 전체주의 성향을 띠고 있는 검찰 독재시대에 강화되고 있다.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 National Security Act)은 1948년 12월 1일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내에서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일본 제국의 치안유지법과 보안법을 기반으로 하여 제정한 법률이다. 준말로 국보법(國保法)이라고도 한다. 특히 박정희 등에 의한 5.16 군사정변 직후 만들어진 "정당, 사회단체의 주요 간부의 지위에 있는 자로서 국가보안법 제1조에 규정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그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하거나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법률 제6조의 내용이 대한민국 헌법 제6호에 포함되면서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는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다는 비판이 있다.  -위키백과

 

그러나 사실 국가보안법과 같은 제도는 수정하고 폐기시킬 수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우려스럽고 경계할 점은 아직도 많은 사람과 조직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가 연장되어 온 수직적 주종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산업은 여러 분야가 복합적으로 묶이는 세상이 되어 유기적 소통과 협력이 중요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단계가 짧아야 하기에 경영자와 노동자가 동등해야 하고, 수평적으로 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여전히 기업 간의 관계도 대기업 중소기업 간 관계의 주종관계가 여전하다.

이러한 구조에 대해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산업이 과거보다 복잡해지면서 새로운 첨단기업에서 매우 불리한 구조에 놓여 있게 되었다. 우리의 미래를 발목 잡히게 만드는 관점 자체가 어쩌면 큰 폐해가 아닌가 싶다.




왜곡된 식민지 노동언어 및 관념 극복


내가 회사초년생이던 시절, 젊은 실장은 나를 비롯한 어린 직원들에게 조선인은 패야한다는 말하며 마치 군대처럼 기합을 주는 일이 종종 있었다. 사실 기합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식 용어로써 얼차려라는 말로 대체되었듯 1997년 시절만 해도 한국사회 일본 잔재는 우리 기업문화 속에 유령처럼 남아서 우리를 억눌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본인은 조선인이 아닌듯한 우월감을 가진 선배 실장은 그 시절 만연했던 사대주의와 권위의식, 갑질문화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현재도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란 용어 대신 근로라는 용어를 권장하는 이유도 이러한 의식 왜곡과 연관 있다.

노동자는 근면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용어 안에 포함되어 있는 근로자라는 표현에는 노동자 스스로 주체적이지 못하게 하고 상하 관계성을 강조한다.


한국사회를 좀 더 생각해 보면 대기업 중심 자본주의로서 시장독점과 자본독점으로 이어지는 획일화된 기업문화와 함께 우리 일상 속 전체주의가 유지되고 있다.

많이 기업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대기업 중소기업 간 갑을관계라는 상하관계를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라 "까라면 까야지"와 같은 용어도 많이 사용했다. 이런 의식 역시 전시상황에 놓여있던 일본제국주의와 전체주의 특성과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근대사회 산업혁명시기 노동자란 계층은 자본가 계층과 함께 성장하면서 왕정시대를 무너트렸다.

산업문명이 만들어낸 공화정에서 자본가 계층은 노동을 단순 비용처럼 생각하기도 했지만 노동자 계층의 성장은 자본가들에게는 위협이었고, 자본이 아닌 국가중심 공동생산이라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개념도 나왔다.

그러면서 세계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으로 경제시스템이 변동되었다.


즉 ,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제도 역시 따지고 보면 모두 산업화의 형태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이와 무관한 노동자들이 법률상 보장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조차 과거에는 빨갱이 라고 하면서 매도했고 공산주의와 연관시켜서 말을 못 하게 만드는 레드콤플렉스로 매도했었다.

이처럼 여전히 한국사회 노동은 일제 강점기 또는 식민지 시절 노동 형태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다가오는 4차 산업 혁명시대는 모든 노동자들이 분권화된 구조에서 자신의 역할을 중심으로 자발적 협력이 강화되어야 하는 사회가 대두되고 있다.  과거의 수직적 명령중심 생산중심 관점으로는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과거 한국사회 노동과 경영 왜곡을 살펴보고 본질적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그만큼 진실에 다가서는 것은 많은 시대적 왜곡에 맞서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사회 경영자들은 자신의 역량보다 높은 급여를 받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카르텔로 자리를 얻고 과분한 대가를 받지만 이들에게는 경영 능력을 기대하기보다 기계적인 회계 장부상 이익률을 올리는 손쉬운 방법으로 성과를 인정받는다.

문제는 현장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회사 경영을 하면서 혁신이라는 가치를 만들지 못하고 있기에 회사 경쟁력과 산업전반 경쟁력을 떨어 트린다. 따라서 이러한 잘못된 경영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경영참여가 중요하다. 이러한 제도는 기업 발전과 주주가치를 위해서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노동자들만큼 현장을 잘 알고 경험한 사람들은 없을 텐데 한국사회에서는 이들에 대해서는 부품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원인으로 한국사회가  더 이상 성장을 못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동안 한국사회 노사관계에서 야만이 작동하는 이유는 수직관계 즉 식민지 강제 노동에서 비롯된 구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노동자를 건폭이라는 프로파간다로 폭력배로 매도하고 노동자들을 범죄자로 수사하여 살길을 막아버리는 상황을 만들거나 엄청난 손해배상을 통해 살 수 없도록 만들었다.

2023년 5월 1일 노동절에 건설 노동자 양희동 열사의 자살은 1970년 분신한 전태일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 사회 앞날을 위해서 기업의 혁신을 위해서도 식민지 노동관점을 극복하고 노동과 경영이 동등한 동반자로서 미래를 함께 일궈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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