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독립국 대한민국을 이해하고 우리는 무엇을 꿈꾸어야 하는가?
이 글을 쓰는 오늘은 3.1 혁명 104주년을 맞이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의 대통령의 인식에서 현재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한 일본에 대해 굴종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대중들 인식 역시 이러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 비중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오늘 대통령 3.1절 기념일 연설에서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는 메시지로 시작했다.
메시지보다 우려되는 것은 현 정권이 보여준 일본과 미국에 대한 굴종적인 군사/외교적 행보는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남들이 만드는 전쟁게임에 들어가서 전쟁터를 제공해 줄지 모르는 위기에 있어 두려워하게 한다.
최소한 독립국가라면 한쪽으로 치우치는 외교는 바람직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전략으로 주변국을 이끌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는 왜 한국사회에서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자국의 이익보다 미국, 일본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미국, 일본, 유럽의 보수세력의 속성과 대한민국의 보수 속성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이러한 보수들의 속성과 비슷한 속성을 의외로 생각보다 먼 땅인 아프리카 사업을 하면서 확인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역사를 보면서 그곳에 자리 잡은 기득권 세력들을 보면 같은 아프리카대중들이 아닌 식민지 지배국을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프리카는 과거 식민지로 많은 약탈이 있던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의 정치 지도자는 대부분 식민지 지배국에서 공부하고 온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국경선이 왜 직선으로 되어 있는지 놀랍지 않은가? 이런 국경선은 서구 여러 나라들이 함께 국경선을 베를린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식민지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나누고 통치하는 것 그러한 규칙으로 식민지 국가 또는 패전국은 모두 분할 통치를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분단상황을 생각해 보면 된다. 한국사회 역사교육에서 이러한 특성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교육에서 조차 식민지 교육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학계, 정계 기득권들은 과거 일본 및 미국 유학파들이 많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대표적인 인물로서 상당수 외국유학파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전략적으로 키워준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한 전략은 교육과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역사를 보면 현재 세계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비록 최초의도는 식민지화 전략에서 미국에서 파견된 선교사 및 교육자 중에서도 우리의 문화를 좀 더 발전적으로 만들고 독립에 기여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과거 대항해시대를 거쳐 유럽이 세계에 여러 식민지를 개척하는 시대에 유럽의 개척자들은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식민지 대상에 대해서는 원거리에 있고 소수의 인원으로 통치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그것은 나누고 통치하는 것이다. 식민지 국가에서는 나누고 통치하는 행위는 줄 세우기의 특징으로 제도화된다. 즉 줄을 세우는 행위도 나누고 통치하는 행위하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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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가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이러한 측면에서는 노예들의 민주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노예들의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상위 계급으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당한다.
이러한 특성은 현재 한국사회 교육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직장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면서도 계급이 나누어진다. 서울대와 그렇지 않은 대학, 서울에 있는 대학과 지방대학교, 또한 사회에서는 사짜돌림 직업, 판사, 변호사, 검사, 의사, 변호사 등 직업이 가장 선호되는 직업이고 시급 노동자는 천대받고 있다. 분명 계급사회로서 업무 강도면에서도 힘든 일과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는 천대받고 적은 돈으로 일을 해야 한다. 끊임없이 계급을 나누어 순서대로 높은 계급에서 억압과 착취를 하면서 사회를 움직이려고 한다. 즉 최상위 계급에서는 자국민을 식민지 노예처럼 만들어 가는 구조가 계급화된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알게 된 계기는 해외사업차 아프리카 르완다를 다녀오면서 르완다 및 주변국가, 그리고 아프리카 대룩의 역사를 알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주로 다녔던 아프리카 르완다는 대량학살(제노사이드)의 비극을 겪었던 곳이다. 그런 대량학살의 원인은 식민지에서 시작되었다. 식민지 시절 르완다에는 벨기에 인들이 와서 후투족과 투시족을 나누어 통치했다. 사실 같은 부족을 생김새로 나눈 것뿐 그들이 실제로 다른 종족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집단에 특혜를 주고 충성스러운 관리자로 만드는 일은 식민지 시스템의 근간이다.
이러한 근대 식민지 기법은 한국사회에도 동일하게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 그것은 종교라는 방식으로도 침투했고, 또한,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친일파와 대중을 분리하여 통치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일제 교육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육시스템에서 학년별 상급생에게 극존칭을 쓰는 습관은 일본식 교육의 계급제도의 영향이고, 학교 석차를 매기는 방식으로 줄 세우기도 그런 특징을 나타낸다.
내가 다니던 대일고등학교는 줄 세우기를 통해 좋은 성적인 학생들을 별도반을 나누어 성한의숙이라는 잘 시설된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특별한 대우를 했다. 이러한 계급을 나누는 방식은 식민지 교육방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러한 문화적 특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집단이 사법진단이다. 판사, 검사, 등 법률집단은 과거 일제 강점기 시대 통치를 위한 법구조를 그대로 현재에 우리 시대에까지 이어왔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법조항을 보면 과거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을 가져왔고 동일한 기능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즉, 사법집단과 사법구조만 놓고 본다면 현재 한국사회는 식민지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유럽사회의 민주주의 철학은 아테네의 민주주의에서 시작된다.
중세유럽의 종교암혹기를 지나서 르네상스를 맞이한 유럽은 과거 찬란한 시대를 동경하게 되었고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을 복원해 낸다.
그 시절 서구의 많은 철학자들이 연구하고 만들어낸 많은 부분이 오늘날 민주주의 시스템을 설계한 기본틀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서구사회는 식민지로 침탈하던 모습과 달리 이들은 자국민에 대한 복지와 정치제도와 같은 구조와 철학은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진다.
즉 이들의 제도는 과거 아테네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투표를 할 수 있는 시민이 주체가 된 제도로 발전시킨 것이다. 물론 근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여성투표가 가능해지고, 흑인투표가 가능하게 되었지만, 근본적인 민주주의 정신 측면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특징은 모두가 평등한 기반에서 역할만 다른 분권화 구조를 만들어 냈다. 분권화의 가장 큰 의미와 특징은 권한을 나누는데 일반 대중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될 만큼 수평적인 권력 구조를 갖추는 데 있다. 즉 아테네 민주주의처럼 시민들이 직접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테네처럼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한 철학자로서 장자크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년 6월 28일 ~ 1778년 7월 2일)는 추첨 방식이 민주주의 본질에 잘 부합된다고 했다.
즉 만인이 동등하고, 선출은 그 어떤 인간적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만큼, 법의 보편성을 해칠 만큼 편파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사회 검사, 판사들의 경우 사법고시 같은 시험을 통해 고생하여 얻은 자리라는 생각에 권력을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한다. 만일 검사, 판사 역할을 루소의 이론처럼 대중들 중 임의로 선출된다고 할 때 그는 권력을 본질에 가깝게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어떤 직위가 권한을 가질 때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직위인 경우 권력을 사유화하기 쉽지만 임의로 선출된 직위인 경우 오히려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임원이나 실무 담당자 모두 동등하고 권한을 나눈 분권화 개념 기업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의 경우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된 계기도 이러한 분권화 사상 기반이라고 한다. 먼저 산업 4.0과 함께 노동 4.0 이 같이 출발하게 하여 상호견제 및 보충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른 관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대표라는 직책, 임원이라는 직책을 계급이 아닌 역할로서 본다는 점이 매우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자동화를 이루고도 직원들은 관리자로 남아서 다른 일을 하고 더욱 효율을 높이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자동화시킨 후 인력 구조조정을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원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점의 차이는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유럽사회의 특징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특권에 대해서도 한국과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유럽사회에서 정치인이란 특권의식 없이 봉사하는 일로 생각한다. 이러한 특징은 정치분야뿐 아니라 기업에도 적용된다. 협동조합 기업이 잘 성장하는 유럽사회 특징의 배경에는 이러한 철학적 기반이 존재하는 것이다.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8522599
이러한 역할론적 사고를 확장해서 생각해 본다면 서구사회에서 일자리에 대한 계급의식이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공무원사회에서 기술직과 행정직에는 격차가 존재한다. 기술직을 아래로 본다. 이러한 개념은 한국사회 오랜 유교적 나쁜 관습에 따른 것으로 현대사회에 맞지 않지만, 조선 600년과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로 인해 더욱 강화되고 고착화되었다.
서구사회에 이민을 간 분들에게 들어본 이야기는 이러한 특징을 극명하게 이야기해 준다.
현실에서 마주친 배관공에게 일을 맡기는 과정도 컨설팅비용을 받고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고 한다.
즉 배관공과 교수 간 월급에 큰 차이가 없으며, 교육기회에 대해서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독일의 경우 대학등록금의 경우 거의 무상에 가깝다고 한다. 이러한 특징은 입학은 입학자격만 충족되면 입학이 되지만 졸업은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진 대학등은 한국사회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대학입학 및 우리가 생각하는 특권을 가질 수 있는 직업에 대해 열어 놓는 이유는 특정계층을 위한 교육과 시험을 통해 주는 자격을 얻는 경우 그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권력에 대해 마치 자신의 권력처럼 사유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추첨하는 행위를 통해 권위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참심제 국가에서는 시민판사제도와 같은 제도로 대중들의 사법참여를 제도화했다. 즉 서구인들에게 판사, 국회의원은 역할만 얻어서 봉사할 뿐 시민으로서 동등한 개념을 가지게 된다.
사실 한국사회 기득권의 속성에 대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일제 잔재로 기득권을 형성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보수는 기득권 권력을 가진 친일 세력이 미군정을 거치면서 기존 일본 자본을 이어가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확장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들의 특징은 일본 종속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심지어 몇 년 전 롯데 후계자 싸움을 보면서 그들은 집에서는 일본말로 소통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사회 보수는 식민지 기반 보수로 한국의 이익이 아닌 식민지 지배국가를 숭배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한국사회는 역사청산이 되어야 비로소 진보 보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식민지 기득권 세력이 주류기 때문이다. 보수뿐 아니라 진보의 경우도 진보역할을 하지 못한다. 정의당이 시대정신도 모르고 진보 역할도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진보라는 개념은 과거보다 변화된 길을 가야 하지만 과거에 대한 역사적 기반이 없는데 진보사상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 역사적 이해과정을 통해 시대정신을 이루고 진보를 이룬다고 한다.
그렇기에 정의당이 말하고 있는 진보적 주제가 호응을 받지 못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현실은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강화된 수직적 계급의식이 일상 속에서 받아들이게 되었고,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왜곡을 불러오게 되었다.
한국사회 대중들은 일본과 북한에 대한 이해관계에 대해 일제강점기 만들어지고 현재도 일본극우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언론인 조선일보의 시각의 영향을 받아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오늘 세종시 어떤 아파트에서는 일장기를 걸어 놓은 세대가 있었고, 소녀상 근처에서 극우 시위대는 일장기를 들고 시위를 하기까지 한다. 너무나 참담한 날이다.
https://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1081746.html
우리는 이제 진보/보수를 떠나서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역사의식에 대한 자각과 우리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젠 진보와 보수로 생각하는 우리 스스로 모두 식민지 의식을 벗어나야 한다.
식민지 의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외세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외세에 의존하는 구조와 틀을 벗어나야 한다. 우리 현재 국내정치 역시 외세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이를 벗어나서 우리 스스로의 주관을 가져야 한다.
유럽사회를 이어온 미국과 유럽사회는 과거 역사의 연장선에서 로마제국 영광과 이슬람에 대한 자격지심과 견제 심리가 여전히 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근대사회 세계 질서를 이루는 국가 간 외교를 보면 과거 식민지를 만들려던 흐름의 연장선에서 상대는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자기들은 연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 역시 남과 북을 제외한 우리 주변국이 우리를 분열시키고 화약고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벗어나서 남북문제에서 유럽연합과 같은 합의에 의한 평화적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이 필요하다. 또한, 미국의 경우도 여러 개의 작은 국가의 연합이다.
무엇보다 우리 시민사회는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전 세계적 역사 속에서 우리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또한 차별적이고 계급을 나누는 언어와 행위를 인식하고 우리 스스로에게 부여된 작은 권위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과 공무원은 우리 스스로의 주관을 가지고 외교와 정치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진정한 독립은 남과 북 평화적 공동체를 이루고 우리 스스로의 외교전략으로 우리가 만드는 세계질서를 펼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