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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나무 Sep 25. 2020

차별을 배우는 한국 엘리트 집단

변하지 않는 한국 교육과 실패한 교육


어리석은 차별의 경험


어떤 때는 내가 걸어온 길, 내가 살아온 목적 등이 통째로 부정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 경험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 깨닫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대학을 갖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했던 시절에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면서 자신감만 넘쳤다면, 지나면서 세상 속에서 학교에서 보다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겸손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대학교, 대학원 나오면 남들보다 명성을 얻고 지식에서 우위에 선다고 생각했었다.

그 시절 분위기로 인해 나 역시 한동안 자기 계발서를 많이 보았던 경험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나에게 배움 역시 가치보다는 신분 상승과 인정의 욕구였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인사기록에 학위 또는 자격증을 기록할 때에는 괜한 자부심도 생겼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회사에서 경험한 사건을 통해 내가 가진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우리 회사에는 정직원 말고도 기능직, 선로직 등 여러 직급이 존재했다. 여러 차례 조직개편 이후 어느 순간 여러 직급을 통폐합을 하는 일이 있었고, 나를 비롯한 정규직 입사시험을 통해 입사했던 젊은 직원들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시험을 통해 입사했는데, 국장님 빽(찬스)으로 들어온 기능직과 고졸 출신 현장직들이 우리와 같은 직군이 된다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간이 흘러 같은 직군으로 된 나이가 나보다 많으신 형님뻘이지만 직급은 나보다 낮은 분과 일을 하게 되었다. 이분은 과거 여러 사회 경험을 하고 현장직으로 입사하신 분이었다.

그런데,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경험과 실천력이 강한 모습을 보았다. 그때서야 그동안 내가 가졌던 생각이 매우 편협했다고 느끼고 내가 가졌던 편견을 깨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히려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능력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공공기업에서 민영화한 회사의 특징상 마치 골품제도처럼 승진 한계가 있어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 인천 국제공항 비정규직을 정직원으로 전환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내가 과거에 가졌던 편견이 떠올랐다.  그리고, 의사들의 집단적 진료거부를 하면서 그들은 공공 의대 확대 등을 반대하면서 한의학에 대한 의료수가 주는 것을 반대하며, 철저하게 집단이기주의 형식을 띄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대중들에게 공공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면서 나타난 엘리트 의식을 볼 수 있다.

의료 사각지대인 지방의 의료 정원을 늘리는 것조차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수익 감소로 생각하고 있다는 발상이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실제로 군사정권 때부터 누적된 피해의식이 있었지만 그 시절에는 아무런 반발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민이 선출한 권력에 대하여는 환자의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이 내건 문구 또한 무척 한심하다. 고등학교 졸업 시 성적이 좋았던 엘리트들은 자신들과 같은 엘리트들에게 진단받는 것 만해도 국민들은 감사해야 한다는 듯한 메시지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시험부터 전교 1등을 해온 자신들을 믿어 달라고 하는 선민의식과 조금만 찾아봐도 속지 않을 정도의 가짜 뉴스에도 선동당할 만큼 어리숙함을 보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사법고시 통과하고 젊은 나이에 영감님 소리 받는 판검사들이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착각하는 엘리트 판검사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과도 닮아있다.

어떤 면에서는 필자 역시 철없던 시절처럼 여전히 세상에 대해 잘 모를 때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나를 비롯해서 좀 더 배우고 겸손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매우 일반적인 현상인지 모른다. 실제로 심리학 실험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욱더 잘못된 길을 가는 효과가 있는데 "더닝 쿠르거 효과"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아직 지식과 기술이 부족할 때 자신감이 높아지고 오히려 경험과 지식이 쌓일수록 겸손해진다고 한다. 이후 점점 더욱 지식과 경험이 올라가야만 자신감이 다시 오른다고 한다.

더닝 쿠르거 효과는 경험과 배움이 부족한 젊은 의사들, 언론사 틀에 갖혀 기계적 기사를 쓰는 젊은 기자들, 권력에 길들여진 젊은 판검사들 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일 수 있다.

실제로 젊은 엘리트는 고등학교 과정 시험문제만 잘 풀었을 뿐,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판검사가 되고 사람 목숨을 다룬다고 생각하면 아찔할 따름이다.


더닝 쿠르거 효과에서 지식 단계가 낮을수록 우매함과 자신감이 넘친다.




택배 노동자들의 품격 있는 파업  


요즘 언론에서는 의사들의 파업에 대하여 소개를 하면서 의사들 입장에 대하여 비교적 잘 소개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언론이 의사들에 대한 보도태도와 달리 과거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하여는 악의적인 보도 태도를 보였었다.  조중동과 같은 언론은 언제나 노동자 파업에 대하여는 불편함을 가졌던 반면 의사들의 경우 노동조합도 없기에 실제로는 불법휴진이지만 파업이라고 칭해준다.

 

비슷한 시기에 우편 노동자들의 파업은 의사 집단의 불법 휴진과 다른 모습이다. 택배노동자들 파업은 의사 집단의 휴진과는 메시지의 진정성이 다르기에 시민들의 호응이 많이 있었다. 의사들이 환자의 목숨으로 협박을 했다면, 택배노동자는 고객의 배송지연을 사과하고 솔직하게 본인들의 어려움과 파업의 계기를 알려주었다.


젊은 의사들의 대응방식에는 엘리트 의식과 함께 자신들의 국가고시 실기 시험 연장 과정에서도 사전 선발대의 시험 순서가 바뀜에 따라 시험을 집단적으로 보지 않는 속사정을(사전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만든 족보를 뒤에 시험 치는 학생들이 참조하여 시험을 보는 전통이 있다고 함) 마치 의료파업으로 정당화하면서 이젠 먹혀들지 않는 상황에서 시험을 치를 기회가 넘기고도 다시 시험칠 기회를 달라고 하는 철없는 아이의 어리광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는 엘리트라고 칭해주었지만 일반인들은 이번에 그런 어리숙함을 알게 되었고 엘리트 의식이 강한 집단은 생각보다 상식과 멀어져 있고 유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주게 되었다.


이에 비하면 코로나 19로 늘어난 과중한 업무로 목숨을 잃고 있던 택배노동자들의 파업과 그에 따른 사과문은 오히려 시민들의 공감을 얻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어느 싸움에서 진정성을 느끼게 될까? 그것은 당연히 택배노동자들의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택배노동자들의 호소 문자






변화 없는 교육 10년간 후퇴



의사 집단의 집단휴진으로 나타난 의사들의 관점과 한국사회 검사들이 여론재판을 목적으로 언론과 유착된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 엘리트 집단의 속성을 알게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대체로 권력이 집중된 엘리트 전문가 집단이 얼마나 타락했고 엉성하고 유능하지도 않은지 알게 되었다.


이들 권력의 공통점은 언론이 제멋대로 평가하고 규정 해준 상위권 대학 순위에 의해 만들어진 엘리트들이라는 것이고 오로지 고등학교 성적 1등만 추구하던 이들이다. 이들 상위권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 성장을 멈추고 품위도 없고  인문학적 소양도 없는 집단이 되었는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앞에서 택배노동자와 비교했지만 우리는 삶 속의 경험을 통한 배움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세상 물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더닝 쿠르거 효과가 일반적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교육을 통해서 완화시킬 수 있지만 한국사회의 과거부터 이어진 주입식 줄 세우기 교육방식 교육환경을 점점 더 악화시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보수정권 중 전두환 정권에서 유일하게 중고등학교 평준화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학교에 대한 차별화 정책이 지속되어 왔다. 참여정부 시절 그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종교 세력, 사학재단은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했고 결과적으로 사학법 개정이 실패하면서 교육환경 악화는 가속화되었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시절 보수정권 10년간 은 특수목적 고등학교 정책을 통해 학생들을 일찍부터 나뉘고 차별화를 통해서 대학과 사회에서 기업 취업에 이르기까지 경제력과 부모 권력 중심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 문제는 대학교 입시에서는 특목고에 일종의 가점이 작용함에 따라 일반고등학교에 대한 역차별이 존재하게 되었다. 대학교에서는 가점이 없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가점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즉, 특목고는 중학교부터 기득권에 속한 아이들을 분류하는 중간 단계가 된다. 이들은 한 달 300만 원 수준 과외를 통해 과학고를 입학하면, 상위권 대학에서는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등학교 학생들을 우대하면서 결국 기득권 학생들에 대한 상위권 입학 통로가 완성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제도를 보수정권 10년 동안 만들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줄어드는 좋은 일자리에 대하여 기득권층의 자녀들에 대한 특혜를 위한 제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점점 줄어드는 일자리로 사학 등 교육 기득권 계층은 제도를 통해 부유층 자신들의 자녀들에 대한 상위권 대학입시를 구조화했고, 취업 구조 역시 면접을 늘리면서 특혜를 양성화했다.

대기업 취업에서도 면접을 통한 취업은 부모의 배경이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힘 있는 부모의 자녀를 취직시킴으로써 사회 권력층의 힘을 빌리고 편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던 젊은 지식인과 기자들의 역량은 과거 지식인에 비해 오히려 후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불의에는 참을 수 있지만 불이익을 참지 못하는 직장인을 양성했는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은 기성세대의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길들여진 젊은 세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엘리트라고 여겨왔던 이들은 스스로가 진정 엘리트가 맞는지 반문해보라. 거기서 자신이 초라하다는 것을 느낀 사람에게만 본질을 찾아갈 기회가 열릴 것이다.




몇 년 전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본 적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스카이라는 용어는 스카이대(SKY)라는 피라미드 상층부를 인정하는 표현이다. 우리는 서울대, 연대, 고대를 대학교 최상위권으로 인식하는 용어고 이들에게는 좋은 직장과 그에 맞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일반적 생각을 한다.


그러나  스카이대라는 표현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되는 표현이다. 이제 그들을 더 이상 엘리트 집단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고 용어 정의 자체만으로도 빗나간 엘리트 의식을 심어주게 된다.


누구나 사회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학교에서 보다 사회에서 더 많은 배움을 얻는 경험을 한다.

특히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 한국사회 교육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심지어 우리가 고등학교까지 배운 지식을 평가한 점수로 일생을 결정하겠다는 후진적 교육시스템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젊은이라면 현재 교육제도에 순응하지 말고 깨고 나와서 모두가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차별받지 않고 부모의 배경과 무관하게 평등한 사회진출 기회를 가지자고 외쳐야 한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스스로 차별을 극복하는 1968년부터 외쳤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아직도 목소리를 내지 않고 일제강점기부터 누군가 어리석은 사람들이 만든 교육 시스템에 순종하고 있다. 젊음이 있다면 어리석은 피라미드 구조를 부쉬고 박차고 나와서 누구나 차별받지 말게 하자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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